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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울 Feb 29. 2024

Ep 4. 독감 진료비가 50만 원이라고요?

부모님과의 우당탕탕 여행기

싱가포르에 도착한 후 얼마 간은 괜찮았지만, 곧 열이 펄펄 끓어 밖을 돌아다닐 수 없는 지경이 됐다. 25도 정도의 따뜻한 날씨에도 나는 기모 스타킹을 신고 얇은 기모가 든 외투를 입고 숙소 침대에 누웠다. 뜨거운 열기에 몸이 후끈했다가, 곧 열이 식으면 오한에 몸이 덜덜 떨렸다. 혹시 몰라 가져온 비상약은 모두 떨어졌고, 결국 호텔 직원 분께 문의해 괜찮은 종합병원을 찾았다. 1년에 한 번 감기에 걸릴까 말까 하는 내가 하필 싱가포르에서 열감기라니. 헛웃음이 났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아침이 되었고, 부모님과 함께 그랩을 타고 종합병원에 갔다. 예약 없이 온 환자는 응급실로 가라는 말에 잠시 병원 입구에서 대기했다. 간호사님께 고열과 기침, 가래 등의 증상을 설명하고 열을 쟀다. 열이 많이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38.5도로 아직 높은 상태였다. 신상정보를 작성한 후 독감일지도 모르니 병원 안으로 입장하지 말고 잠시 옆 의자에 대기하라는 답변을 받았다. 안타깝게도 한국인 직원은 없었다. 오랜만에 영어로 말하고 설명을 들으려니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잠시 후, 환자 진료실로 안내를 받았다. 환자가 1명씩 들어갈 수 있는 방이 여럿 있었다. 각 방은 가벽으로 구분되어 있었고 각 방은 하늘색 커튼으로 닫혀있어 환자들은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환자 베드에 누워있으니 훈훈한 중국인 의사 분이 오셨다. 혈압 재는 도구를 팔목에 채워주고는 이것저것 묻고 돌아갔다. 진료실에는 인도계 분들이 많으셨는데, 그 와중에 중국인 의사 분을 만나니 새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베드에 누워 의사 선생님을 기다리는데, 간호사님이 틀어주신 선풍기가 달달 떨리며 돌아가고 있었다. 한기가 훅 느껴져 선풍기를 끄고 다리 옆에 놓여있던 부직포 담요를 다리에 덮었다. 20분쯤 기다렸을까? 인도인 의사 분이 오셨다. 인도식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리스닝이 어려워 여러 번 질문을 했고, 거듭된 질문에 조금 짜증스러워 보이긴 했지만 의사 선생님은 침착하게 끝까지 답변을 해주셨다. 조금씩 핀트가 어긋나긴 했지만 어찌어찌 소통은 되었다. 대충 알아듣기만 하면 됐지, 뭐. 증상이 심상치 않다며 독감 검사와 코로나 검사를 권하셨는데, 검사 결과 나는 A형 독감이었다. 싱가포르에서 A형 독감 진단이라니 새로운 경험이었다.




검진이 완료되고 타미플루를 포함해 5개의 약을 받았다. 하나하나 천천히 설명을 듣고, 의사 소견서와 보험 청구용 서류를 부탁드렸다. 받은 서류를 꼼꼼히 살펴보고 금액을 확인하는데 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최종 청구 금액은 504 싱달러. 한화로 약 50만 원이었다. 비쌀 줄은 알았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잊지 않고 여행용 보험에 가입한 과거의 나 자신을 무한히 칭찬하며 값을 지불했다. 보험이 아니었다면 끙끙 앓으며 병원 따위 가지 않겠다 버텼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지출 상세 항목을 살펴보니 코로나와 독감 검사 비용, 그리고 일회용 베드 시트와 부직포 덮개 비용까지도 포함이었다. 아, 일회용인 줄 알았다면 사용하지 말 걸 후회했다. 10분 정도 내 다리 위에 얹혔다는 이유로 그 큰 쓰레기가 버려질 걸 생각하니 너무 아까웠다.


어쨌거나 50만 원이라는 비싼 값을 치르고 오전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야 했지만,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경험을 하나 만들었다. 게다가 50만 원짜리 약은 그 값을 톡톡히 했다. 약을 먹고 나니 신기하게도 열이 조금 내렸고, 컨디션이 조금 나아져서 마리나 베이 샌즈 근처를 한 바퀴 돌 수 있었다. 꾀죄죄한 나와는 달리, 날씨는 청명했고 바람은 선선했다. 거리마다 생기 있는 나무와 풀이 우거진 공원이 펼쳐져 있고, 오른쪽은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이 보이는 물가가 보였다.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는 깨끗한 거리와 선선한 날씨가 더해져 여유롭게 거리를 만끽할 수 있었다. '커피 한잔을 테이크아웃해 공원에서 마시며 멍 때리면 정말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몸 컨디션이 그리 좋지 않아 아쉬움을 뒤로하고 돌아섰다. 또 언젠가 여행 올 날을 기약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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