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프리랜서의 삶을 꿈꿨다
첫 번째 회사를 퇴사한 후, 회사는 나와 잘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프리랜서를 꿈꾸며 블로그, 인스타그램 계정을 키우기 시작했다. 계정을 키우는 방법도, SNS를 통해 돈을 버는 방법도 잘 몰랐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유튜브 크리에이터 양성과정을 알게 되었고, 나는 유튜버를 꿈꾸며 홀리듯 등록했다. 프리미어 프로 등의 툴을 이용해 영상을 사부작사부작 만들어 보기 시작했고, 평소 관심 있던 환경 분야의 영상 공모전에 작품을 내 우수상을 받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4개월의 영상 제작 과정을 수료했다. 아쉬운 마음에 함께 수업을 들었던 분들과 단톡방을 만들었고, 각자 유튜브 채널을 운영해 보기로 했다. 동기부여를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채널 콘셉트를 정하고, 업로드한 영상에 대해 피드백을 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흘렀을까, 단톡방의 한 멤버가 좋은 소식을 알려왔다. 영상 제작 방법(프리미어 프로)을 알려주었던 강사 A가 우리와 영상 프로젝트를 함께하고 싶다고 했단다. A와 우리는 바로 미팅을 했다. 어르신들의 일상을 영상으로 담아 판매하는 좋은 취지의 프로젝트라서 멤버들은 흔쾌히 동의했다. 난 이 일을 시작으로 프리랜서로서 돈을 벌 수 있겠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프리랜서로 도약할 기회인 줄 알았지
A는 사업체를 운영하는 CEO였고, 자신의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를 원했다. 우리 역시 순진하게도 없는 사업체를 만드는 것보다 A의 사업체를 이용하는 게 더 편하겠다고 생각했다. 또 프로젝트와 관련해 따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A는 수익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알아서 분배해 주겠노라 구두로 약속했고, 아직 결과물이 없는 상태에서 계약서를 작성하기 애매해 그 부분은 차차 이야기하기로 했다. 혹시 보수가 없더라도 이 경험은 영상 제작 실력을 키우기 위한 투자라고, 그렇게 믿었다. 영상 제작에 앞서 A는 우리에게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의 세팅을 지시했고 우리는 그 일을 나누어 해냈다. 아르바이트생이 주로 하는 그런 일들을.
그렇게 6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는 A의 지시사항에 따라 맡은 바를 해냈다. 샘플 영상 제작을 위해 섭외 요청을 하고, 일정을 조율하고, 직접 지방에 내려가 미팅을 하며 그분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정리했다. A는 본업이 바쁘다는 핑계로 우리에게 드물게 연락을 줬다. 때문에 모든 일정은 매우 느리게 흘러갔고, 우리는 A만 믿고 무한정 대기했다. 업무에 대한 보수는 여전히 없었다. 그럼에도 그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회사에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았고, A를 제외한 다른 분들과의 합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소시오패스에게 취업 사기를 당했다
하지만 첫 미팅으로부터 8개월 뒤, 나는 프로젝트에서 하차하기로 결정했다. 나중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그는 소시오패스의 표본이었다. 영상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의견을 모아서 전달하면, 자기가 리더이고 사장인데 왜 자기 말대로 하지 않느냐며 화를 냈다. 겉으로는 존중하는 듯 말을 하면서도, 점점 우리를 자신이 고용한 아르바이트생 혹은 직원을 대하듯 했다.
어느 순간부터 A는 우리 실력을 빌미로 SNS 관리만 하게끔 지시했고, 영상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우리를 배제시켰다. 아마도 결과물에 대한 저작권 문제를 걱정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늘 이런 말을 덧붙였다. "선생님들 실력이 없어서 일을 시킬 수가 없어요." 영상 결과물이 나왔을 때, 이런 부분은 좀 보완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 "선생님들이 영상에 대해서 잘 몰라서 그런다."며 1시간 동안 일장연설을 늘어놨다.
A는 다른 사람의 말을 빌어 우리 실력을 내려치면서, 자신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 지 어필하기도 했다. 촬영에 함께 참여했던 PD님 B가 "왜 저런 사람들이랑 일하면서 힘들어하느냐"라며 그만두라고 말했는데 "자기는 힘들더라도 여러분과 어떻게든 해내고 싶다"라고 답했다며 지쳐가는 우리를 설득했다. 돌이켜보면 그 말 또한 거짓말인 것 같지만.
또한 우리는 보수가 없는 상태에서 6개월 이상 일을 했고,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기약이 없으니 프리랜서로나마 계약서를 작성했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그러면 자신을 못 믿는 거냐며 화를 냈다. 온갖 미사여구를 덧붙여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말하며 자신을 믿으라 말했다. 삼성전자의 이재용 등 유명인의 에피소드를 말하며 장차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될 거라는 식의 허무맹랑한 말이었다. 구두로 약속했던 말도 계속 바뀌었다. 처음에는 보수를 나누어 준다고 말했다가, 이후에는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냐며 어이없어했다. 너무 당당하게 말하니, 듣는 우리는 말문이 막혔다.
이런 나날이 쌓여 신뢰가 완전히 무너졌고, 나를 시작으로 줄줄이 하차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그의 태도는 싸늘하게 변했고, 뻔뻔하게 블로그와 인스타에 올렸던 제작 파일 원본을 요구했다. 처음에는 주기 싫어 버텼지만 너무 집요하게 연락이 와서 결국 파일을 모두 넘겼다. 내 8개월의 시간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씁쓸했지만 인생 교훈을 배웠다고 생각하며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