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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울 Dec 16. 2023

사람의 얼굴이 모두 다른 이유

영화 <소울메이트>를 보고

*영화 <소울메이트>의 내용을 일부 담고 있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나는 배우 김다미님이 출연한 작품을 정말 많이 봤다. 작품을 보는 안목이 좋아 유명한 작품이 많아서인지, 혹은 내가 이 배우의 연기를 좋아해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단순히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드라마 <그 해, 우리는>을 정말 좋아하는데, 적당히 이기적인 보통의 직장인을 현실적이고 섬세하게 연기해줘서 깊게 빠져 보았던 기억이 있다. 한번 본 영화나 드라마는 재탕하지 않는 나인데, 여러번 이 드라마를 정주행했던 걸 보면 흡입력있는 배우들의 연기 덕이 아닐까 싶다. 물론 연출과 극본의 힘도 상당했지만.


덕분에 이후로 김다미님이 나오는 작품을 눈여겨 보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소울메이트>였다. 이 영화를 알게 된 건, 성수동에서 진행된 사진 전시회 때문이었다. 마케팅에 관심이 많아서 약속이 있을 때면 그 지역에서 진행하는 팝업스토어를 찾아보는데, 마침 성수동에서  사진 전시회를 진행한다는 소식이 들려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했다. 영화를 정식으로 개봉하기 전이었고 큰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스틸컷을 보며 이 장면은 어떤 장면일까 상상해보는 게 재미있었다. 더구나 스틸컷이 여름 냄새를 가득 머금고 있는 청량한 사진이 너무나 내 스타일이라 더욱 눈길이 갔다. 전시회 2층에는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향수를 판매하고 있었는데, 영화와 향수를 연결시킨 것이 내게는 신선하고 인상적이었다. 좋은 향기는 때때로 나를 어느 시절의 어떤 장소로 이끌곤 하니까. 이 향수는 나를 어떤 시간과 공간으로 이끌어 줄까 궁금했다.


사진 전시회를 다녀온 후 바빠서 한동안 이 영화의 존재에 대해 잊고 살다가,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다시금 의 예고편을 보게 됐다. 이후 홀린 듯 결제를 하고, 부모님이 외출하신 어느 날 드디어 이 영화를 오롯이 즐길 수 있었다. 워낙 청춘물을 많이 보았던 터라 ‘대충 절친인 두 여자가 같은 남자를 사랑하게 되면서 갈등이 생기는’ 그런 스토리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웬걸 내 뻔한 상상을 매번 빗겨나가면서 더욱 몰입하게 되더라.




이 영화는 미소와 하은의 관계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우정인 듯 사랑인 듯 미묘한 두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 보는 것도 작품을 즐기는 좋은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초등학생 때부터 절친이었던 둘은 제주도에서 자라며 거의 모든 생활을 함께할 정도로 절친한 사이다. 그런데 하은에게 남자친구가 생기고, 남자친구가 미소에게도 관심을 갖게 되면서 미소와 하은의 관계가 조금씩 뒤틀린다. 하은은 제주에서 평범한 대학 생활 끝에 부모님이 원하던 교사가 되고, 어릴 적 엄마에게 버려져 홀로 자란 미소는 서울에서 호텔 메이드, 펍 알바 등을 하며 20대를 보낸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둘은 20대 중반에 우연한 계기로 다시 만나지만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지점이 늘어나며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고, 어느 날 묵혀왔던 감정을 터뜨리면서 함께 엉엉 운다.


이 장면을 보며 중학생 때 절친이었던 친구와 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저릿했다. 친구와 나 또한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지점이 하나 둘 쌓이기 시작하면서 관계의 끝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아서. 우리도 언젠가 묵혀뒀던 감정을 터뜨리고 벽을 허물 수 있을까? 아니면 시절 인연으로 이렇게 영영 멀어지는 걸까? 생각하게 만든 장면이었다.


한편 하은은 교사 생활을 하며 큰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 동시에 자신이 좋아했던 미술을 업으로 삼고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머뭇거린다. 그러는 와중에 오랫동안 사귄 남자친구와 결혼을 결심한다. 그러나 결혼식에서 조금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 본인의 사진을 보고 결국 식장을 뛰쳐 나온다. 그 후 자신의 꿈을 찾고 싶다며 제주를 떠나는 하은에게 하은의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의 얼굴이 왜 모두 다른 줄 아니? 각자 다 다르게 살라고. 네 마음 가는 대로 살아라. 그게 진짜로 엄마가 바라는 거다.” 이 대사가 프리랜서로 살기 위해 다양한 방면으로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 진한 위로로 다가왔다. 한번쯤 부모님이 이런 말로 나만의 길을 지지해 주었다면 참 좋았겠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생이 되고, 대학을 졸업하면 직장인으로 사는 것이 정해진 답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회사를 다니는 것이 괴로우면서도 ‘남들도 다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고민을 거듭한 끝에 퇴사를 결심했고, 나는 직장인보다는 프리랜서로 사는 것이 행복하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돈을 많이 벌 수 없을 지언정 나의 행복을 잃고 싶지 않으니까. 여전히 나는 어떤 일로 스스로를 먹여 살릴 수 있을 지 알 수 없지만, 위에 언급한 대사를 들으며 ‘나는 나만의 길을 잘 헤쳐나가고 있다’고 믿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르면 어떠한가, 내가 행복하면 그만인 것을. 나답게 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오히려 더 멋진 것 아닌가? 남들이 개척해 놓은 길이 아닌, 나만의 길을 만들어 나가고 있으니까.




P.S. 엔딩을 보고 나니 궁금해졌다. 둘의 관계는 진한 우정이었을까, 아니면 고도화된 사랑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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