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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울 Dec 19. 2023

내밀지 말아요, 너의 구겨진 꿈을

가수 악동뮤지션의 '후라이의 꿈' 을 듣고

내게 강요하지 말아요 / 이건 내 길이 아닌걸

내밀지 말아요 / 너의 구겨진 꿈을

난 차라리 흘러갈래 / 모두 높은 곳을 우러러볼 때 / 난 내 물결을 따라


- 악동뮤지션의 '후라이의 꿈' 中 -




악동뮤지션의 노래 가사는 직관적이어서 그 의미를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단단한 신념을 드러내고 있어 좋다. 특히 ‘후라이의 꿈’은 획일화된 삶을 종용하는 한국 사회에서 눈치보지 않고 ‘나답게 사는 마인드셋’에 도움을 주는 곡인 것 같다. 실제로 악뮤 이찬혁님은 자신만의 독특한 퍼포먼스로 연일 화제를 부르는 ‘정말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광화문 역 근방에 소파와 테이블을 세팅해 놓고 1시간 가량 신문을 보기도 했고, 유리 쇼케이스 안에 들어가 마네킹처럼 서 있다 노래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혹자는 그의 자유로운 행보를 ‘지디병’이라며 비난하지만 나는 그를 열렬하게 응원한다. 사회의 틀을 깨는 사람이 있어야 우리 사회가 우물 안에 고여있지 않고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 인터뷰에서 오빠 찬혁님의 변화에 대한 질문에 동생 수현님은 이렇게 답한 적이 있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가 변화하는 것은 당연하다. 오빠도 그 흐름에 따라 변화했을 뿐이다. 다만 오빠는 대중이 바라는 악동뮤지션의 이미지와 부합하지 않는 것 같아 오랫동안 지금의 모습을 숨기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다. 그로 인해 힘들어 했던 오빠를 계속해서 봐왔기 때문에 오빠의 모습을 비웃고 싶지 않다. 그저 지금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행복해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이 인터뷰를 보며 많이 반성했다. 타인이 나를 바라볼 때 ‘있는 그대로의 나’로 봐주길 바랐으면서도, 나는 타인의 다름을 이렇게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응원했던가?




대학 시절, 6개월 정도 빽다방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당시에 함께 일했던 일잘러 친구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개인 카페 개업을 준비중이라고 했다. 21세로 어린 나이였던 그 친구는 부모님께 대학 등록금을 받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카페를 차리기로 했단다. 고작 2살 많았던 나는 ‘지금 대학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경험이 많은데, 후회하지 않겠느냐’는 어줍잖은 질문을 던졌다. ‘대학에 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분들이 많더라’는 카더라 조언을 꿋꿋이 덧붙이면서.


당시에는 나름 인생 선배의 조언이랍시고 말을 건넸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난 이불킥 감이다. 물론 나는 지금도 20대 초반에 대학에 다니는 것은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학과 과제를 통해 함께 하나의 성과를 내는 일도, 교환학생으로 다른 나라에서의 삶도 경험도, 동아리와 대외활동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생각을 공유할 기회도 모두 가치있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막막한 미래에 대한 생각을 유보하고 교환학생으로 간 독일에서 여행다닐 궁리를 할 때, 그 친구는 어린 나이에 사업에 뛰어들었고 그 카페가 흥했든 흥하지 않았든 오롯이 많은 것들을 견뎌내며 나보다 열 발자국은 앞서 성장했을 것이다. 여기서 어느 한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저 우리는 원하는 바가 달랐고, 그에 따라 다른 경험을 했을 뿐이다.


대학을 졸업한 후 취업과 퇴사를 반복하면서 프리랜서로 살아가기로 결정하기까지 가족을 비롯한 주변인의 많은 조언을 들었다. ‘프리랜서로 먹고 살기 힘들다던데’와 같은 카더라를 비롯해 ‘공무원 도전해보는 건 어떠냐’는 제안도 더러 있었다. 내 주변에는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고, 그랬기 때문에 당연히 어떤 방면으로든 취업이 답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체질에 잘 맞지 않았으면서도 경제적으로 불안하다는 이유로 잠시 프리랜서를 꿈꾸다 꾸역꾸역 다시 취업을 했다. 졸업 직후부터 5-6년 간 먼 길을 돌고 돌아 결국 프리랜서로 살아가기 위해 마음을 먹은 지금, 비로소 카페에서 만났던 친구가 대단했음을 실감한다. 나를 비롯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아이에게 조언을 쏟아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나이에 자신이 바라왔던 일을 강단있게 해나간 그 아이가 새삼 멋져 보인다.




30세가 되어 결혼하는 지인이 많아지면서 자주 듣게 되는 말이 있다. ‘30세가 넘어가면 좋은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거나 ‘35세가 넘으면 아이를 갖기 힘들다’. 심지어는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는 여자들은 히스테릭하다’는 다소 고루한 말도 가끔 들려온다. 이러한 말들이 귓가에 맴돌며 ‘지금 아니면 너 결혼 못해!’라고 꾸짖는 것 같아, 왠지 아무나라도 붙잡고 결혼해야 할 것처럼 조급해지기도 한다.


난 결혼 계획도, 안정적인 직장도 없는 30대 여자다. 그래서인지 부쩍 정제된 한국 사회가 갑갑하다. 어떤 틀을 벗어나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리 달갑지 않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나를 '30대 백수인 솔로 여자'라며 안타까운 시선을 보낼 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시선은 늘 사회 전반에 깔려있다. 주류에서 비주류가 되었을 때 비로소 피부로 느껴질 뿐. 만일 결혼을 염두에 둔 연애를 하고 있고,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고 있다면 나는 지금보다 행복할까?


영화 <소울메이트>에서 마음에 남은 대사가 있다. "사람의 얼굴이 모두 다른 이유가 뭔지 아니? 다 다르게 살라고." 그저 남들이 뭐라든 눈치보지 않고 나답게 살고 싶다. 그 누구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내가 가고싶은 길을 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더 단단해져야겠지만, 타인의 다름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 더 따뜻하고 너그러워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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