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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anone Jun 09. 2021

독일 건축 회사에 스카우트된 사연 (1)

독일 건축 회사로부터 오퍼를 받다.

 2013년 7월 여름, 졸업 전시 둘째 날이었다. 오전에는 교수님들을 상대로 한 최종 졸업 심사가 있었다. 2년간 함께 고생한 석사 동기들과 샴페인을 한잔씩 나누며 세상 행복하게 수다를 떨고 있었다. 취업 걱정보다는 독일 유학의 최종 목적을 달성한 오늘의 내가 상당히 자랑스러웠다. 차가운 샴페인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니 세상에 이런 행복감도 있구나, 했다. 안 되는 독일말로 학부 1학년 오리엔테이션에서 독일 학생들 앞에서 쭈뼛쭈뼛 인사하던 나, 학부 2학년, 큰 좌절감으로 그만둘까 깊은 고민에 빠졌던 나, 이런저런 사연들로 가득했던 나의 5년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최종 심사에 대한 긴장감 때문이었는지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던 나는 샴페인 두 잔으로 이미 취기가 오르고 있었고, 동기들과 후배들이 인사를 건네 와 수다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이제는 다리에 힘이 풀려 전시장 구석 의자에 앉아서 대놓고 지인들과 지난 준비기간의 노고와 실수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어느 점잖은 캐주얼 차림의 사내 둘이 내 설계 도면과 모델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가끔 전시장에 주변 건축회사에서 둘러보러 온다는 말은 들어왔었지만, 내 일이 아니라는 식으로 흘려들어왔고, 나를 포함한 친한 동기들 또한 졸업 이후에 휴가부터 계획하자는 분위기였다. 그 이후에 포트폴리오를 뿌려(?)서 새롭게 준비하고자 했기 때문에 전시회에서 누군가와 대면을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일단 내가 준비가 안 돼있었기에 기대조차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졸업 작품 _ 2013

마침 후배 중 하나가 설계에 관해 물어와 모델 앞으로 함께 자리를 옮겼다. 아직도 그 사내들은 내 작품 앞에 자리하고 있었고, 작품 설명 집을 한 장 한 장 넘겨보고 있었다.  

나는 후배에게 설계에 대해 가능한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뭐, 지루할 수 있으니까. 일단 나는 어서 친구들과 맥주를 한잔 하고 싶어서 설렁설렁 설명해주고 넘어갔나 보다. 설명을 마치고 웃으며 자리를 뜨려는 데, 사내들 중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신사가 말을 걸어온다.

´이 설계 자네 작품인가?`

`예, 제 작품입니다. 저는 석사 졸업반 김기연이라고 합니다`

사내 둘은  눈길을 주고받고는 다시 한번 그 신사가 말을 이어간다.

`혹시 졸업 후에 계획은 있나?`

`일단은 고생한 가족들과 휴가를 간단하게 다녀올 생각이에요. 저 이거 작업한다고 아내가 한 살배기 아이와 엄청 고생했거든요 하하하`

`이해해. 이해해. 정말 노력을 많이 한 설계인 거 같다네. 우리 둘은 HPP라는 건축회사에서 일하고 있어. 혹시 들어봤나?`



아직 취업전선에 발을 들여놓기 전이었던 나는 그 순간 유명 회사 이름들이 쉬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재치가 넘쳤던 나는 `아 물론이죠`로 아주 자연스럽게 대처한다.

`혹시 졸업 후에 일할 곳은 정해졌나?`

`아니요. 아직은 포트폴리오를 마무리 못했습니다. 휴가 이후에 마무리할까 합니다.`

`알겠네, 혹시 생각 있으면 다음 주안에 혹시 전화 한번 줄 수 있겠나?`

하면서 자신의 명함을 건네주었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 비즈니스 예절에 대해 배운 적이 있던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명함을 받아 꼼꼼히 읽는 척을 한다. 뭐 일단 졸업전신데 취업 오퍼를 받은 것 같아 기분이 괜찮았다. 그중 젊어 보이는 사내가 미소를 띠며, 이 전시장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마음에 드는 작품인 거 같다며 샴페인에 취한 나를 다시 한번 비행기 태워주었다. `관심 가져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깍듯이 인사하고는 그렇게 두 사내와의 짧은 만남을 마무리했다.


머쓱하게 웃으며 친구들 사이로 들어서니 다들 `뭐래?` `누구래?` `어느 회 사래?`나의 하관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나는 그새 회사 이름을 까먹어서 명함을 다시 꺼내어 `H.P.P... Geschäftführer?´하며 천천히 읽어갔다. 나는 그때까지도 Geschäftführer의 뜻을 몰라 비서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나를 둘러싼 동기들의 눈은 일제히 똥그래지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기연, 축하해!` `너 HPP 모르는 거 아니지?` `Dreischeibenhaus 설계한 회산데 알지? 네가 좋아하는 건물이잖아!` 순간 취기인지 뭔지는 내 머릿속에서 찬물을 끼얹듯 사라지고 HPP라는 세 글자가 쿵쿵쿵 머리를 찧어댔다.


Dreischeibenhaus _ HPP architects


주말마다 축구를 하러 차를 타고 뒤셀도르프의 시내를 지나간다. 그때마다 딱 트인 시내 한복판에 우뚝 솟아있는 Dreischeibenhaus. 차를 타고 지날 때마다 느껴왔던 거지만 군더더기 없고 근엄한 자태가 60년이 넘은 세월이 무색하게 여전히 아름답게 느껴졌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세 개의 블록이 만들어내는 크고 작음의 조화가 독일 건축을 한창 알아가고 있던 나의 가슴에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축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바라보는 그 건물은 햇빛을 받아 반짝였고, 더욱 웅장하고 우아하게만 보였다. 석사 1학기 때였나. 문득 `졸업하고 저런 건물 설계하는 회사에 다니고 싶다.`라고 생각하고는 회사도 찾아보지 않고 막연하게 저 건물 설계하는 회사가 나의 목표다 라고만 정해두었더랬다.

건축사 수업을 들으며 조금씩 독일과 유럽의 건물들에 대해 알아가게 되고 그 건물이 독일 현대 건축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알아갈수록 그 이름 모를 (워낙 약자들로 이루어진 회사들이 많다 보니 머릿속에 쉬이 저장이 안 되더라) 회사에 대한 갈망은 점점 커져갔다.

그래... 그 회사구나. HPP. 동기들의 축하 인사로 다시 정신을 차린 나는 한국인 특유의 너스레로 겸손을 떨어본다. `에이, 그냥 명함 하나 준 건데 뭐.`한 친구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조용히 말을 건넨다. `기연아 독일에서는 명함 함부로 주지 않아. 명함을 건네준다는 것은 웬만한 비즈니스 관계가 아니면 흔하지 않아. 거기다가 Geschäftführer 라며.` `응? 어 어 그렇지, 좋네`.


sketch of Dreischeibenhaus 2016

 

동기들은 다시 한번 내 작품으로 우르르 몰려가서 뚫어져라 관찰을 시작한다. 나는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어 Geschäftführer를 찾아본다. `매니징 디렉터` `회사의 우두머리`... 사장님이네. HPP 홈페이지에 접속해본다. 명함을 건네준 사내의 이름을 검색하자, 홈페이지 임원소개란의 가장 꼭대기 8명 중 한 명이다.

아... 그때부터 내가 뭐라고 떠들어댔지? 경박스럽게 웃어댔나? 아... 그 옆에 사내는 누구지? 홈페이지를 뒤적이니... 디자인 팀장이네... 준비 안되고 졸업 후에 여행 갈 생각이나 하고 있는 철없는 유학생이로 보였겠네?

취업은 생각지도 않고 있던 나에게 졸업이라는 자유로움을 만끽할 새도 없이 새로운 긴장감이 휘감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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