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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anone Jun 16. 2021

독일 건축 회사에 스카우트된 사연 (2)

준비가 덜 된 채로 면접을 보다

졸업 전시를 마무리하였지만 홀가분하지가 않았다. 쉬고 싶지만 지금 쉬면 다시없을 기회를 놓칠 것 같았다. 졸업 시험 직후부터 조금씩 작품집을 준비해왔으나, 여전히 아쉬운 것 투성이다.  Geschäftführer (사장님으로 부르겠다)가 명함과 함께 조만간 전화 달라는 말을 했던지라 마냥 기다리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졸업할 날만 손꼽아 기다렸던 한 살배기 아들과 아내는 다시 밤새 작품집을 붙들고 있는 나로 인해 독박 육아의 연장전에 돌입했다. 당연히 우리 가족에게는 좋은 기회였기에 아내는 응원의 말로 나의 기운을 북돋아 주었지만 분명 지칠 대로 지친 상황이었을 테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졸업 전시 후 휴가를 준비해 두었기에 나에게는 휴가날까지 삼일이 채 남아있지 않았다. 휴가를 다녀오면 회사에 더 이상 신입을 위한 자리는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밀려왔다. 


이메일을 쓴다. ´내가 휴가를 미리 계획해 놓았던지라 2주 정도 후에 나의 작품집을 들고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답변이 바로 도착했다. ´본인들도 휴가를 계획해놓은 상황이기 때문에 한 달 이후에나 시간이 될 것 같다. 괜찮으면 이틀 후에 사무실로 와줄 수 있냐?´는 답장이었다. 

다시 한번 메일을 쓴다. ´작품집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시간을 더 달라´. 사장님이 직접 답장을 보내셨다. ´당신의 졸업 설계는 충분히 검토했다. 지금까지 학업 중에 했던 설계들 간단하게 정리해서 가지고 오면 된다. 질 좋은 작품집을 원하는 게 아니다. 킴에 대해서 알고 싶다. 이틀 후에 봤으면 좋겠다.´


더 이상 꾸물댈 시간이 없다. 나는 밤을 새워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아쉽게도 계획했던 퀄리티는 준비되지 못했다. 인쇄소에 갈 시간도 없고 물론 재본도 하지 못했다. 엉망이다. 내가 바랬던 작품집은 이게 아닌데. 유학생활의 5년을 정성껏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정신없이 끝내야 했다.

 

학교 스튜디오에서 직접 종이를 구해와 출력을 시작했다. 약속시간까지 5시간이 남았는데 이럴 때는 꼭 프린터가 더디 움직인다. 출력이 마무리가 되고 확인을 하니 상태가 엉망이다. 이젠 어찌할 도리가 없다. 사무용 집게로 출력된 종이뭉치를 고정시키고 마음을 진정시킨다. '그래, 내 설계가 마음에 들어 초대를 받은 자리다. 5년간 어떻게 공부해왔는지 내용을 보여주는 게 중요한 거니까, 가자.' 


전차를 타고 회사로 간다. 그날따라 이른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회사에 도착했을 무렵엔 이미 상쾌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으리라 짐작이 된다. 나에 대한 첫인상은 반 포기 상태다.

등이 흠뻑 젖은 상태로 건물 입구에서 HPP Architekt 라 반듯하게 적혀있는 회사 초인종을 누른다. 


Kai Strasse 5, Düsseldorf_ HPP architects (HPP 구 본사 외관 및 내부사진)

5층 건물의 3,4,5층을 회사가 사용한다. 직사각형 모양의 건물 중앙에는 물이 채워진 중정이 있다. 복도를 가득 채운 대리석과 인공 연못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사무실 현관으로 들어서니 비서 아주머니가 환한 미소로 반긴다. 오늘의 약속을 얘기하고 바로 옆 회의실로 안내를 받았다. 사실 이 사무실의 방문은 이날이 처음은 아니다. 몇 해 전 학생 인턴을 모집한다는 교수님의 추천으로 간단하게 면접을 본 적이 있었다. 당시 두 군데의 회사에 지원했었고 HPP와 TMK라는 두 곳에서 동시에 연락이 온 적이 있었다. 당시 경제적으로 부족했던 건축학생이었던지라 더 많은 임금을 약속했던 TMK라는 사무소를 선택했었다. 프로젝트 내용면에서 더 끌렸던 곳은  HPP였음에 정말 큰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한번 거절한 회사에서 (물론 담당자는 다른 사람이었겠지만) 다시 연락을 받아 면접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상당히 놀랍고 기뻤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비서 아주머니께서 타다 주신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킬 때쯤, 전시회에서 마주했던 두 사내가, 아니 사장님과 팀장님이 들어왔다. 말끔한 수트차림의 사장님은 밝고 격식 없는 모습이었고, 민머리에 덩치가 좋은 팀장님은 밝게 웃고 있으나 꽤나 진중한 첫인사이었다.  외국인으로서 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누군가와 대화를 한다는 것은 그 당시의 나로서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다시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셋은 테이블에 둘러앉았고 사장님은 본인과 팀장 그리고 회사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었다. 이어서 졸업 전시의 전체 분위기와 내 설계를 보고 느꼈던 부분을 꽤나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이래저래 해서 당신의 설계 방향과 회사가 가지고 있는 설계 철학 사이에 맞물리는 부분을 보았다. 당신 설계는 물론이거니와 당신 개인에 대해서도 더 알고 싶어 이렇게 초대하게 되었다. 킴, 당신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해 줄 수 있겠습니까?' 

지난밤에 샐 수 없이 가다듬없던 나에 대한 소개를 쏟아냈다. 한국에서 디자인을 공부했으며, 왜 졸업 후에 다시 독일에서 건축이라는 학문을 시작해야 했으며, 학교에서는 무엇을 배웠으며 등등. 자연스럽게 나의 사무용 집개로 엮여있는 작품집을 꺼내어 내밀었고 지난 작업물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그 두 사람은 나의 지난 5년간의 결과물들을 흥미롭고 진지하게 바라봐주었다. 오늘 이 면접을 통해 이 회사에서 일을 할 수 없을지라도 지금의 이 시간으로 나의 유학생활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내가 헛된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분위기도 좋았고 웃으며 마지막 나의 졸업 설계에 대한 설명까지 마무리할수 있었다. 


'설명 고마워요 킴. 우리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요? 일은 언제부터 시작할 수 있어요?'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사실 졸업 후에 두 달여간 쉬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아내도 고생을 많이 했고요. 아이와의 시간도 필요하거든요.' '우리는 킴이 2주 안에 시작했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가능할까요?' '일단 집에서 아내와 상의해봐야겠습니다. 내일 휴가도 떠나야 하고요.' '그래요, 다음 이야기로, 원하는 금액의 연봉 수준을 알려줄 수 있어요?' 너무 급작스러운 전개에 다시 한번 머뭇거리고 있는 나에게 사장님이 말한다. '편하게 이야기해요. 원하는 범위를 얘기하면 우리도 그에 맞게 조정할 수 있어요.' 친구들 사이에서 돌고 있던 건축 회사 신입 초봉에 대한 정보를 익히 들어왔다. 평균치보다 살짝 웃도는 금액을 재시 한다. 'xxx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케이, 그럼 가능하면 일주일 안에 연락 주면 좋겠어요. 이제 팀장님이 사무실을 한번 소개해줄 거예요. 연락 기다릴게요. 저는 다른 회의가 있어서 여기서 인사 나눌게요.' '에...오케이라고요?'


30여 분간의 짧은 면접은 그렇게 끝났다. 팀장님은 모델 실과 회의실을 지나 설계팀, 디자인팀, 인테리어팀을 두루 지나며 후에 함께 일하게 될 팀 동료들에게 나를 소개해주었다. '아.. 나 아직 계약도 안 했는데... 이렇게 인사하고 다녀도 되나?' 싶었다. 


회사앞 라인 강변 전경



팀장님의 배웅을 뒤로하고 사무실의 문을 나서 엘리베이터 앞에 서니 몸에 힘이 풀리며 정신이 몽롱해진다. 

진정시킬 겸 계단을 통해 일층을 향하고 있던 그때. 담당 교수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킴, 잘 지내고 있어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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