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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anone Jul 16. 2021

독일 회사에 스카우트 된 사연 (3)

국경을 오가며 업무 희망 메일을 보내다.

'킴, 잘 지내고 있어요? 일할 곳은 알아봤나요? 나와 같이 우리 사무실에서 함께 일해볼 생각 없어요?'

졸업 설계 담당 교수님 Prof. Schuster. 이분에게 인정받고자 6학기 동안 꼬박 이 교수님의 설계 수업을 들어왔다. 학부 5학기였던가? 자만심에 가득 차 있던 나에게 박한점수를 건네며 시건방진 나의 설계에 찬물을 끼얹어 정신을 차리게 해 준 고마운 분이다. 졸업할 때까지 이분에게만큼은 꼭 인정받고 졸업하리라는 마음으로 악착같이 따라다녔다. 결과적으론 졸업심사에서 좋은 점수와 함께 다른 교수님들에게 나의 설계를 자랑스럽게 소개해주시는 모습을 보고 큰 만족감과 함께 학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만큼 나에게 특별했던 교수님이 연락을 따로 주셨다. 며칠 전에만 연락 주셨어도 바로 이 교수님과 함께 일할까 깊이 고민했을 터이다. 이미 몇 년간 교수님의 지도로 많은 것을 배웠기도 했고, 실무경험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타이밍이 좋지가 않았다. 그토록 원하던 HPP에서의 면접 분위기가 워낙에 좋았던 터라 마음을 굳힌 상황이었다. 


한국에서 디자인대학 4년, 군대 2년 반, 독일어 어학 준비 1년 반 그리고 건축학사 + 석사 총 5년... 졸업을 하니 나이가 벌써 33. 아내와 두 살배기 아이가 있는 가장이었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필요했다. 교수님의 회사 또한 이 지역에서 명망 있는 사무실이긴 했지만 HPP와 비할바는 아니었다. 회사 규모에서 이미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일단은 큰 물에서 놀아보기로 마음을 굳힌다. 교수님께 정중히 거절 의사를 드리고 제자로서 감사했음을 전한다. 교수님 입장에선 어떻게 받아들이셨을지 모르겠다. 시건방지게 보셨을까? 하지만 독일 생활 이미 7년 차이던 나는 철저히 나와 가족 위주로 상황을 판단하기로 했다.


일단 떠나자. 우리 여행. 

무척이나 더웠던 여름 아침. 우리 가족은 두 살배기 아가를 유모차에 태우고 Bodensee로 향한다. 


기차를 타고 거진 4시간은 간 것 같다. 칭얼대는 아이와 더위에 지친 우리. 몇 번을 갈아타고 도착한 그 거대한 호수는 무더위와 습한 기후로 우리를 맞이한다. 오는 동안 이미 지친 우리였지만, 얼마 만에 여행인가, 놀자! 정말 부지런히 구경을 다닌다. 한참을 유모차에 갇혀있던 아이도 신이 났는지 우리 저리 뛰어다니기 바쁘다. 물론 그 아이를 잡으러 다니던 아이 엄마와 나 또한 바빴다. 신혼 때 파리 (Paris)를 다녀온 이후에 정말 오랜만에 가족끼리 오붓하게 기차 여행을 왔음에도, 찌는 듯한 더위와 천방지축 두 살배기 아이 덕분에 우리 부부는 혼이 쏙 나가는 듯했다. 그에 더해 내 머릿속은 다른 무언가로 인해 복잡하기도 했다. 


회사 출근 가능 여부를 집에서 좀 더 고민한 후에 전화로 연락 주겠다고 면접 시에 말을 해 두었다. 물론 마음이야 이미 오케이 사인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아내와 더 상의도 해보고 조금 더 신중한 이미지를 보여주고자 했던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다. 

분위기상 회사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이야기만이 오갔기에 나만 오케이 한다면 바로 출근이 가능해 보였다.


Bodensee는 독일, 오스트리아 그리고 스위스를 모두 걸치고 있는 거대한 호수다. 그냥 물가에서 바라보면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와 다를 바가 없다. 

Konstanz Germany _ Photo by Google

세 국가가 국경을 맞대고 있어서 핸드폰 서비스가 엉망이었다. 약속한 시간에 전화를 줘야 하는데 핸드폰의 서비스 제외지역이라고 뜬다. 트램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 서비스 지역과 제외지역을 오간다. 애간장이 탄다. 이제 몇 시간 안에 연락을 줘야 하는데, 전화 연결이 안 된다. 그렇다고 오랜만의 여행으로 한껏 들뜬 아내가 준비해둔 여행 경로를 이탈할 수는 없었다. 아내는 유람선, 기차 시간까지 모두 꿰고 있었고 그 루트에 맞추어 움직여야 빡빡한 우리 일정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 터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오늘 안에 연락을 취해야 확답을 받겠거니 내심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아내의 일정을 귀담아듣지 않고 전적으로 맡겨두었던 나는 우리가 스위스와 독일을 번갈아가며 통과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나는 분명 독일 국경 내에 있는데 내 핸드폰의 모든 기능이 정지되었다. 인터넷도 끊기고 전화도 긴급전화 이외에는 불가능하다. 사실 이 상황이 긴급상황인데... 

한참을 초조하게 핸드폰만 들여보던 나를 아내가 발견한다. 나를 도닥여주고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지만, 그녀 또한 내 핸드폰의 연결 상태를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 역에 트램이 멈추자 사장님 비서와 연결이 된다. 

'아 저는 김기연이라고 합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 기차가 출발하자 다시 연결이 끊겼다. 다음 역에 다다르자 다시 서비스 제외지역이라고 뜬다... 장난전화로 알게 뻔하다. 마음은 초조해지고 덩달아 옆에 앉아있는 아내 또한 마음이 편치 않다. 


그래 이메일을 쓰자. 인터넷이 터지는 곳을 알아봐야 한다.  나는 아내의 이해로 일정을 한 템포 늦출 수 있었고, 그 시간에 나는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점포를 찾는다. 하필 그곳이 한적한 시골마을이었던지라 인터넷 보급이 아주 미미한 곳으로 보였다. 게다가 독일도 아니었다. 몇 군데 점포를 돌며 도움을 요청하다 한 유람선 티켓 판매 부스에 노트북이 연결되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친절한 직원 덕분에 그의 노트북을 이용해 메일을 보낸다. 시간 관계상 구구절절이 상황을 설명할 수도 없고, 대뜸 저 출근하고 싶어요 라고 쓰고 싶지도 않았다. 전화연결 문제로 지금 연락이 어렵다. 몇 시간 후에 이메일을 다시 보낼 테니 사장님께 잘 좀 말해달라는 내용을 비서에게 보냈다.


아... 이렇게 매달리듯이 연락을 취하고 싶지 않았는데. 마음이 조급하니 사정을 하게 된다.


뭐 어찌 되었든 시간을 조금 벌었다. 일정대로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넌다. 호수를 건너자 핸드폰 서비스 중 인터넷만 연결이 되었다. 비서에게서 답이 왔다. 그렇게 알고 있을 테니 내일까지 연락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래 이따가 호텔에서 정중하고 차분한 내용의 이메일을 잘 써서 보내자. 


마음의 짐을 살짝 내려놓고 우리 셋은 신나는 시간을 보낸다. 아이도 기분이 좋고, 탁 트인 새로운 풍경으로 아내와 나 또한 오랜만의 휴가를 즐긴다.


아이의 취침시간에 맞추어 숙소로 향한다. 아이를 씻기고 좀 놀아주다 보니 9시가 훌쩍 넘었다. 서둘러 아이를 재우고 아내와 나는 오붓한 시간을 보낸다. 관광 중에 준비한 와인과 스낵들을 꺼내고 여유를 만끽한다. 수다는 점점 길어지고 몸은 늘어지기 시작한다. 아, 메일 보내야지. 


잠들기 전에 메일을 보내 놔야 내일 일정에 차질이 없을 것 같았다. 관광을 시작하면 또 인터넷 문제로 정신없겠지? '으휴 이 준비성 철저한 놈 ㅎㅎㅎ' 하며 여유 있게 핸드폰을 꺼내 침대에 눕는다. 단어 하나하나 신중하게 오늘의 사정을 적어 양해를 구하고, 충분히 생각해 보았으며, HPP와 함께 일을 하고 싶다. 면접에 초대해 준 것에 고마움을 표하고 제시한 날짜에 출근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적은 후 전송을 누른다.


아... 와이파이 신호가 약하다.  전송 중에 에러가 발생했단다.

취소하고 복사해 두었던 텍스트를 첨부해서 다시 보낸다. 역시 취소가 된다. 안 되겠다. 문자메시지를 보내자. 에러가 뜬다.


이건 또 뭐니...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한다. 어디를 가면 와이파이 신호가 강해질까...

호텔 방문을 열어본다. 오 조금 세졌다. 다시 텍스트를 첨부해 전송한다. 에러... 와이파이 번호를 다시 확인하고 재연결을 한다... 약하다.


호텔 계단으로 가본다. 이메일 창 또한 이상하다. 텍스트가 안 써진다... 왜 그러니...

첨부를 누르고 전송을 누른다. 오... 뭔가 대기상태로 되는 것이 전송이 되고 있는 듯하다. 정말 손편지가 핸드폰을 떠나 날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느릿느릿 날갯짓을 하며. 팔랑... 팔랑...

전송완료를 확인하고 방으로 돌아간다. 한 시간 가량을 그놈에 알량한 이메일 때문에 아등바등한 듯하다. 그 사이 아내는 잘 준비를 마쳤고, 우리의 여행 첫날 일정은 그렇게 다시 한번 정신없이 마무리되었다. 


며칠간의 여행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셋은 무더위와 피곤으로 녹초가 되었고 언제나 그렇듯 아이를 씻기고 재운 후에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다. 

아... 그래 회사에서 답장이 왔겠지?


노트북을 열어 이메일을 확인한다.

사장님의 비서는 나의 이메일을 당시 CEO 두 분과 더불어 사장단의 임원 8분, 그리고 팀장까지 더해서 총 열한 명에게 전달했다. 이메일 고맙고 약속한 날짜에 출근하면 인사팀과 연결해서 정식 계약을 체결하고... 어쩌고... 저쩌고... 

그렇군. 다행이다. 하면서 왠지 부자연스럽게 길게 늘어진 답장 이메일을 천천히 읽어 내려간다. 


사장님 비서의 답장 아래로 내가 여행 첫날 보냈던 내용이 덧붙여져 있다.

인터넷 때문에 얼마나 긴박했고, 이 회사를 놓치고 싶지 않아 하는지 그 절절함이 묻어난다.

아 쪽팔려... 이렇게 매달리듯이 보내고 싶지 않았는데... 미안하다를 몇 번을 쓴 거니...

아...

그 밑에 똑같은 내용이 반복된다.... 또 반복된다... 이런... 복사해서 옮겼던 텍스트들이 그 아래 또 있고 또 있고... 낭패다... 


미안하고 절절매고 있는 나의 심경이 여러 번 반복되어 그 긴 메시지를 가득 채우고 있다. 

더불어 전송 에러가 발생했던 앞선 이메일들도 전송이 되어있었다. 나에게서만 같은 내용의 메시지가 5통이 연달아 도착했을 터이다.

정말 말 그대로 '낯 뜨거운' 상황이다. 이 글을 사장단 포함 팀장님까지 보았으니, 얼마나 우스워 보였을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 

지금이야 편하게 이야기 나누는 사장님들이지만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존재들이었다. 그분들에게 비칠 나의 첫인상이 무척이나 신경 쓰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등에서 땀이 난다.


아무튼 목표했던 건축 유학을 잘 마무리했고 뜻하지 않게 원하던 회사에 떡하니 취업도 성공했으니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좋았다. 준비 안된 포트폴리오를 들고 급작스런 면접도 보았고, 여행 중에 회사에게 답변도 엉망으로 보냈지만,  어찌어찌 계획대로 진행되었던 것 같아 신기하기도 했다. 정말이지 다이내믹했던 2주간의 시간이었다.


고만고만했던 학생으로서의 관계망을 벗어나 정식직원으로 회사를 출근할 것을 생각하니 설렘과 동시에 긴장감도 크게 다가왔더랬다. 

회사 이름값만큼이나 나에게 무언가 큰 걸 기대하진 않을까? 무얼로 회사의 이익에 도움을 주지? 

첫 출근도 안 한 햇병아리 건축학과 졸업생은 출근 전날까지 온갖 잡생각으로 머리를 가득 채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독일 회사의 업무 분위기는 생각과 다르게 그리 경직되어 있지도 않았고, 나에게서 무언가 큰 것을 기대하지도, 그리고 내가 무언가 회사에 크게 기여해서 나를 알려야 할 필요도 없었다. 

2013년 8월 1일 아침 8시 30분. 두근 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사무실 문을 힘차게 열어재낀다. 

저번에 만났던 비서 아주머니가 나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고, 첫 출근을 축하한다며 악수를 청한다.

곧이어 팀장님이 나를 인도해 주어 잘 세팅되어있는 나의 첫 정식 직장의 책상으로 안내해주었다. 


그렇게 나의 독일에서의 첫 직장생활은 시작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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