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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anone Oct 28. 2023

독일에서 생애 첫 책을 출간하다.

독일 출판사 EMF와 드로잉북을 출간하다.

이번에 출간된 책 표지 (Zeichnen auf einen Blick_ Kiyeon Kim)

지난 1년여간 준비했던 나의 첫 드로잉 북이 독일 출판사 EMF를 통해 출간되었다.

본업인 건축 설계일을 하며 책을 쓴다는 것이, 게다가 모국어가 아닌 독일어로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꽤나 부담스러웠기에 첫 번째 제안을 받았을 때에는 정중히 거절을 하였다.


코로나 시국이 길어지고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던 2021년 겨울깨에 마음을 고쳐먹기로 결정을 하였다. 한창 한국으로 돌아가기를 마음먹었던 시기였기에 독일 생활을 마무리하는 마음으로 무언가 남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급작스럽게 마음을 달리 먹고 출판사의 두 번째 제안은 덜컥 받아들이게 되었다. 출판사의 담당 편집자는 평균 6개월의 제작기간을 나의 개인 사정을 고려해 1년으로 길게 잡아주었다. 뭐, 천천히 나온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라며 이미 긴장으로 가득한 나의 마음을 편안히 다스려주었다. 

어반한국으로의 이사, 업무환경의 변화등으로 많은 개인 시간이 필요할 것을 충분히 이해해 주는 그녀의 어투는 이 책의 시작과 끝이 좋을 것 같은 긍정적인 기운을 품고 있었다. 독일에서 그간 6년여간 틈틈이 취미로 그려왔던 스케치북을 모두 꺼내놓고는 책에 담고 싶은 그림들을 정리해 나갔다. 꽤나 엉성했던, 하지만 가장 아끼는 첫 번째 스케치북은 펼쳐 본 지 오래되어 비닐에 꽁꽁 쌓여있었다. 그 첫 스케치북을 통해 지금의 좋은 취미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책도 내보고, 강연도 해보고 했으니, 아끼지 않을 이유가 없다. 

어반스케치를 시작함에 있어 기초가될 이론등을 설명하는 페이지


대략 30권의 스케치북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책 내보길 잘 결심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한국을 떠난다고 마음먹은 시점이었던지라, 지난 독일에서의 시간들이 은은하게 머릿속에 맴도는 기분도 색달랐다.  

편집자는 나의 지난 인스타그램 행적을 보며, 초보자에게 어반드로잉 입문서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주제로 그림을 지도한다 생각하고 진행해 보자 하였다. 

나는 한국 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하였음에도 그림에 재주가 많지는 않았기에, 건축가로서 도시 풍경을 그리는 데에만 자신이있었다. 그런 이유로 다양한 주제로 그림을 실어보자는 편집자의 제안에 다시 한번 부담을 떠안게 되었다. 며칠을 장고한 후 되물었다. 가끔가다 인물도 그리고 동물, 식물등을 그림으로 담아내곤 했는데, 누군가를 가르쳐줄 만한 실력이 아니다. 제고해 달라. 건물과 도시 풍경을 그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의견을 전달했다. 


마음이 너그러운 편집자는 작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다고, 일단 자유롭게 스토리라인을 구성해 보고 이야기해보자 했다. 사실 그 이후로 편집자와의 대화는 굉장히 뜸해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자유로운 발상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근 6개월을 연락해오지 않은 듯하다. 개인적으로 자유로움에 도취되면 본업에 충실해지는 타입이라 솔직히 6개월 중 2,3주만 주제 찾기와 내용 구성에 열심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한국으로의 이사와 회사 업무 등으로 정신없게 보내다 보니, 중간 연락 약속시간이 다 되어갔다. 

지금까지 진행 한 내용들을 어느 정도는 보여줘야 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약속기한을 3주 정도 앞둔 시점부터 한국에서 새로 들인 작업실에 틀어박혀, 그간의 영상자료와 독일에서 모아 왔던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들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서적들이라 그런지 내용이 더욱 알차고 그림 또한 매력적인 것들로 넘쳐나 보였다. 내 머리는 더욱 하얗게 비워지는 듯했고, 그간 모아 왔던 그림 영상 자료들도 왜 이리 부족한 것들로 잔뜩 있어 보이는지. 자신감은 날로 떨어져 갔다. 


편집자와의 온라인 미팅, 나는 미팅 전 모아 온 자료들을 편집자가 초반에 제시했던 여러 가지 포맷에 맞추어 준비후 전달했다. 편집자는 그래픽 디자이너들과 그리고 다른 부서 동료들과 함께 나의 샘플 초안을 공유하였고, 대부분의 동료들이 긍정적인 반응이었으며, 큰 방향의 변화 없이 이대로 진행하면 좋겠다는 좋은 피드백을 전달해 주었다. 책 쓰는 것도 처음이고, 나의 그림들, 글들을 전문가에게 소개하는 것도 처음이었던지라 엄청난 스트레스였는데. 그녀와의 온라인 미팅은 나에게 큰 용기를 심어주었다. 하지만, 그 용기 어린 응원들은 나를 다시 한번 자유에 취하게 해 주었고, 또 다시 본업인 회사업무에 매진하였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출간예정일이 3달 앞으로 다가왔다. 


그간 한국 내에서 이사도 하고, 새로운 학교에서 강의도 시작하며 정신을 놓고 있다가 편집자의 메일을 받고는 등골이 오싹해 옴을 느꼈다. 출간 예정일이 나의 원고 마감일이 아니었음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픽디자이너가 나의 원고와 정리된 그림 파일들을 받아보길 원한다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한 달여간의 시간뿐이 안 남았다. 나의 글과 그림들은 이제 고작 30프로 정도 준비되었는데. 이거 마무리할 수 있을까? 15점의 그림 과정을 담아내기로 했는데, 13점으로 줄이자고 하면 당황하겠지? 안 되겠지? 마감 기한일을 3주 정도 앞둔 시점부터는 이틀에 한번 꼴로 메일을 주고받았다. 

나는 마감에 쫓기는 여느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큰 스트레스를 받았고, 깊은 생각보다는 정해진 틀 안에서 그림과 글을 채워가기에 급급해있었다. 아, 분명 1년의 시간을 부여받았는데, 뭘 한 거니. 허탈한 웃음과 함께 한숨이 끊이질 않는다. 퀭한 얼굴에 짙게 드리운 다크서클을 보는 가족들도 함께 긴장되긴 마찬가지였나 보다. 따뜻한 차를 연신 가져다주는 아내와 아들의 간간이 들려오는 응원소리. 하지만 들리지도, 목으로 무언가 넘어가지도 않는다. 그저 자판을 두들길 뿐. 

그렇게 몰아치듯이 원고를 써내려가고는 마감일을 하루 앞두고 모든 그림과 원고를 정리, 취합하여 편집자에게 넘겨줄수 있었다. 수고 많았다는 격려의 글과 함께 디자이너들과의 소통에 대한 방법을 의논하였다. 디자이너들은 이미 책자 레이아웃을 정했으며, 샘플을 보내주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나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며 풍겨오는 분위기를 많이 담아낸 듯 보였다. 자주 사용하는 색감이나, 그림의 밝기등을 세세히 관찰하고 책자 레이아웃에 녹여낸 듯 느껴졌다. 모니터상으로 확인해야 하니 사실 위험 부담도 없지 않았지만, 디자이너들의 실력을 믿고 따르기로 했다. 간간이 보이는 겹친 그림이나, 그림의 사이즈등만 조정을 부탁하곤, 오롯이 그들의 역량에 맡겨보기로 했다. 디자이너들도 작가가 큰 조정이 없다 보니 작업에 탄력을 받은 듯 매일 업데이트를 보내왔다. 정리된  레이아웃에 그림과 글들이 자리하니 꽤나 세련돼 보였다. ' 이거 꽤 근사해지겠는걸?' 내심 기뻤다. 


며칠 후 편집자는 검수가 완료된 최종본을 PDF파일로 보내왔고 나는 두근대는 가슴을 부여잡고 한 장 한 장 들여다보았다. 손발이 오그라들어 머리글과 감사의 글은 제대로 확인은 못해봤지만, 내용은 크게 수정된 것이 없고 내가 의도한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아 정말 마음에 들었다. 모든 것을 승낙하고 인쇄와 각 서점으로의 판매가 진행되었다. 이제 나의 손을 벗어난 책자는 각 영업소에 보내져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게 될겄이다. 온라인에서도 판매가 이루어질 것이고, 오프라인 서점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다. 독일에서 판매가 이루어지기에 지금 당장은 서점 한편에 꽂혀있는 나의 책을 확인하는 기쁨을 만끽할 수는 없겠지만, 언젠가 독일에 갈 날이 오면 꼭 한번 영상으로 그 감동을 담아내고 싶다. 

출판이 시작되고 1주가 지난 시점, 한국의 집으로 20권가량의 책이 도착했다. 상자를 열어보고 처음 마주하는 실물 책자는 말 그대로 감동 그 자체였다. 이 맛에 책을 내는구나. 몇 권 팔리고 평가가 어떻고는 차치하고 나의 그간의 노력과 고민들이 이 책자에 남아 영원히 어딘가 자리하겠구나 생각하니. 그간의 고된 시간들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아름답다. 표지는 하드커버로 단단해서 시간이 지나더라도 꽤 오래 그 형태를 잃지 않을 것 같다. 종이의 질도 촌스럽지 않고 고급스러워 나의 그림들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것 같다. 이제 이 책을 통해 누군가는 그림의 재미를 알게 될 것이고, 누군가에겐 잃어버렸던 취미생활에 대해 다시 불꽃을 살릴 수 있겠다 생각하니 괜스레 뿌듯하다. 

이제는 한국에서 이 책자가 번역되어 출판되기를 바라는 중이다. 다양한 루트로 출판사들과 접촉하려고 준비 중이다. 다음 목표가 있다면, 이 책자가 한국의 서점 어딘가, 동네 도서관의 어딘가에 꽂혀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을 만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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