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선 변경 한 번 하려면 세 번은 주저하고 진땀 흘리던, 초보운전 스티커가 채 마르기 전의 이야기다.
모범생답게 운전 연수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라 처음부터 지금껏 지키는 원칙이 있는데, '흐름을 거스르지 않을 것'이다. 길을 모르거나 헷갈려서 차선을 잘못 탔다면 일단 그대로 진행해버린다. 좌회전을 해야 할 길인데 1차선에 진입하지 못했다면 일단 내 차선의 지시대로 직진한 후에 다시 길을 찾는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에 한 면은 군인들이 막아주고 있으니 끝까지 직진만 해버려도 언젠가는 차를 돌려 나올 수 있다. 다만 시간이 오래 걸릴 뿐.
그날따라 강변북로는 꽉 막혔다. 그냥 다 같이 멈춘 상태로 기다리다 간간히 느릿느릿 조금씩 이동하고 또 멈추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강변북로에 진입하기 전, '조만간 나갈게'하고 살살 아파오며 신호를 주던 배가 갑자기 '아니, 바로 지금!'이라며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배가 뒤틀리며 식은땀이 났다.
하필이면 나는 진출로에서 두 번째로 먼 차선에 있었다. 한참을 도로가 막혀있었던 탓에 차들은 예민할대로 예민해져서 옆 차들에 한치의 틈도 내어주지 않을 기세였다. 옮겨갈 차선에 차들은 몇 겹으로 있는데 주저할 틈을 배가 허락하지 않았다. 뱃속의 부글거림은 차들을 죄다 밀어버리고 당장 화장실로 돌진하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내 경차가 다른 차들을 밀 수 있을 리도 없는 데 말이다. 한 가닥 실처럼 남은 이성의 끈을 붙잡고 깜빡이를 켜고 창문을 열어 손을 흔들며 수신호를 했다.(지금 생각해보면 상황에 맞는 수신호도 아니었다)
기적이었을지도. 나의 절박함이 닿은 것일지도. 옆 차선의 차가 완전히 멈추고 차선을 양보해주었다. 다음 차선에서도 양보해주고, 그다음 차선에서도 경적을 한 번 울리긴 했지만 양보해주었다. 차선 양보에 박하다던 택시도 비켜주었다.
여러 운전자들의 양보 덕에 흐름을 뒤집어 엎어가며 진출로까지 빠져나왔다. 그들은 미숙하게 비좁은 틈으로 끼어드는 나를 보며 어떤 생각이었을까. '운전 X같이 하네'하고 욕을 했을까 아니면 유튜브에 제보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을까, 혹시 그들도 나와 같은 경험이 있어서 짐작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처음 발견한 빌딩 앞에 차를 세워두고 화장실을 찾아 무사히 볼일을 끝냈다. 나를 보며 욕을 했든, 응징을 준비했든, 덕분에 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킬 수 있었다. 무한히 감사하는 바이다.
운전을 하지 않는 신랑은 내가 운전하는 동안 다른 차가 급하게 끼어들거나 하면 몹시 화를 낸다. 모든 상황이 위험해 보이고 걱정되어 그런 것일 테지만 실은 그다지 위험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럴 때마다 말한다.
- 급똥일 거야. 나도 저런 적 있어.
- 뭐, 그럼 그렇수 있겠다. 눈에 뵈는 게 없을 테니까. 그래도 그렇지 운전을 저따위로 ~~
타인의 사정은 알 수 없다. 정말 화장실이 급할 수도, 다른 급한 사정일 수도 있다. 운전이 미숙해서 무리하게 끼어든 건지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전혀 급하지 않은 단순한 운전 습관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여전히 타인의 사정을 절대로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화낼 일인지, 무서워할 일인지, 웃을 일인지는 그 사정을 모르고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상대의 잘못이 명백해서 비난이 터져 나오는 순간에도, 그의 사정을 알고 보면 인정없이 비난부터 쏟은 나에게 실망하게 될 수 있음을 상기하려고 한다.
그래서 화내지 않고 어지간하면 다 양보한다. 악의적인 행동에 열 번을 속더라도 그중 단 한 번의 속사정은 다를 수 있음을, 그렇다면 나의 양보는 헛되지 않음을 믿는다. 그리고 지나친 감정적인 비난은 나의 몰인정과 좁은 식견의 산물일 수도 있음을 자각하려 한다.
언젠가 나의 위급에 배려해준 선배 운전자들처럼 가급적 다른 운전자들의 위급을 배려하며 흐름 속에 품어주고 싶다. 위험하다 싶으면 짧고 가볍게 경적 한 번 눌러주긴 하지만 말이다. 도로 위에서 우리는 서로 안전한 게 최우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