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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엽수집가 Nov 08. 2023

첫눈을 기다리며 곱씹는 겨울 감성 영화

이와이 슌지 감독 I 러브레터

간단한 소개

이 작품을 보며 부재라는 단어를 재정의하게 되었다.  부재는 "있지 않음"이 아니라 "없지 않음"이다.

개인적으로 일본 감성 가득한 영화라는 생각. 아, 그리고 <러브레터>는 패러디가 넘쳐나는 "오겡끼데스까?" 외치는 장면이 등장하는 영화다. 대사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지 알고 싶다면, 한 번쯤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러브레터>, 이와이 슌지 감독, 1999년도 작품


"첫사랑, 고 사라진 후에 오는 것들"


<러브레터>는 크게 첫사랑의 서사와 부재의 서사, 두 가지를 다루고 있다. 아련한 첫사랑 이야기는 많고, 많지만, 그 많은 이야기 중 눈 내리는 하늘을 보면 <러브레터>가 떠오르는 이유는 뛰어난 영상미에 있다. 그리고 그 많은 첫사랑 이야기 중 이 영화가 명작으로 불리는 이유는 부재의 서사에 있지 않나 싶다.


앞서 말했듯 이 영화는 진부한 소재인 사랑 이야기이다. 사랑 중에 어떤 사랑이냐고 묻는다면 떠올리면 아련해지는 첫사랑일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정의가 다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첫사랑은 내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처음으로 알게 해 준 사람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평생 기억하는 게 아닐까 한다.



1인 2역. 왼쪽이 후지이, 오른쪽이 히로코


<러브레터>에 등장하는 두 여자 주인공, 후지이 이츠키와 와타나베 히로코의 첫사랑은 소년 후지이 이츠키이다. 후지이 이츠키라는 이름을 가진 주인공이 두 명이 나오므로, 앞으로 소녀를 후지이로 소년을 이츠키라고 부르겠다.


** 여기서부터 영화 내용을 포함합니다



둘 모두에게 이츠키는 첫사랑이지만, 서사가 다르다. 히로코는 첫사랑인 이츠키를 그가 죽은 지 몇 년이 지나고서도 잊지 못한다. 그의 죽음 이후 여러 해가 지났지만, 그녀는 그의 집을 방문해 부모님과 차를 마시고 그의 앨범을 보기도 한다. 히로코는 답장이 올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과거 이츠키가 살던 집에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계속해서 히로키는 이츠키를 그리워한다.



출처 네이버 블로그 융덕님 https://bit.ly/2Nkx4Ff

한편, 후지이는 이츠키가 자신의 첫사랑인 줄도 몰랐다가 성인이 되고 나서 우연한 편지로 그 사실을 깨닫는다. 후지이는 히로코에게 이츠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기 위해 자신의 과거를 회상한다. 처음에는 그다지 좋은 추억이 아니라고 말하며 이츠키에 대해 설명하지만, 편지를 보낼수록 그녀는 생각보다 그 시절이 나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사랑이었음을 깨닫는, 어떻게 보면 흔한 첫사랑 이야기다.









사랑 이야기는 넘쳐나고 있어 지겨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동의할 수 없다. 넘쳐나는 그 모든 것들이 각각 다양한 사랑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러브 레터>는 사랑의 다양성을 알고, 그 여러 감정을 뛰어난 영상미와 연출로 보여준다. 그렇기에 진부한 소재지만 관객은 단순한 이야기에서 큰 울림을 받는다.



생각해 보면 이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사랑만 해도 참 다양하다. 똑같은 사랑이라는 범주에 있지만 후지이의 이츠키를 향한 마음과 이츠키의 후지이를 향한 마음이 다르고, 히로코의 이츠키를 향한 마음과 이츠키의 히로코를 향한 마음이 달랐다. 각자마다 다른 마음을 보며 든 생각은 사랑이 삶과 닮았다는 것이었다. 인생처럼 사랑에는 지나가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사랑의 순간이 과거가 되고, 현재에서 사라진 후에야 그것에 대해 온전히 알게 된다니 참 역설적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부재의 미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겡끼데스까-

<러브레터>를 다 보고 난 뒤, 많은 사람이 히로코가 눈이 뒤덮인 산에서 이츠키를 향해 ‘오겡끼데스까’라고 외친 신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꼽을 것 같다. 물론 그 장면이 가장 강렬하게 다가왔던 것은 사실이지만, 개인적으로 많은 생각을 일으켰던 것은 오프닝이었다. 러닝타임이 끝난 뒤 오프닝을 떠올리자 감독은 이미 영화의 시작부터 말하고자 하는 바를 보여준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보는 히로코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이러하다. 새하얀 동산에 누워 있던 히로코가 두 눈을 뜨고 일어나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바라보고, 카메라는 이 모습을 클로즈업으로 잡는다. 눈 뒤덮인 산에서 후지이를 향해 자신은 잘 지내고 있다고 외치던 히로코가 같은 곳에 누어 자연을 감각한다고 생각하니 그 장면은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워 보였다. 히로코는 자신의 연인이었던 후지이 이츠키가 사라졌던 장소에서 그곳의 감각을 온몸으로 느끼며 그를 떠올리는 듯했다.


곧이어 카메라는 ELS(extreme long shot)로 눈밭을 걷는 히로코의 모습을 잡는다. 광활한 자연 아래서 터벅터벅 걷는 히로코의 모습은 매우 작아 보인다. 그렇지만 당차 보였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발걸음이 이츠키의 부재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걷는 히로코를 비틀거리며 잡는다. 이때 화면은 카메라를 손으로 들고 찍은 것(핸드헬드)처럼 흔들린다. 카메라는 이내 걷는 히로코를 놓치고 마는데(그러니까 화면 안에서 히로코가 나가고 마는데) 이것이 바로 가닿을 수 없는 죽음의 영역을 드러내는 포인트라고 느껴졌다.


영화 안에서  히로코는 그의 '없음', 그러니까 '있지 않음'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없지 않음'을 인식한다. 그는 죽었지만, 여전히 자신의 삶 안에 존재하고 있으므로. 그를 추억하고 기억하는 히로코가 있으므로, 함께한 시간은 존재하므로.


그는 '없지 않은' 채로 부재한다.



DDWU 20-2 영상문예특강 수업 때 제출한 과제를 수업 수강 이후 수정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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