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 I 너무 한낮의 연애
- 김금희 작가, 단편 소설 <너무 한낮의 연애>를 읽고
양희는 여자 주인공, 필용은 남자 주인공이다. 소설은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진행된다.
청년 시절 양희는 '현재'를 살고, 필용은 '미래'에 살았다. 그리고 어른이 된 양희는 여전히 '현재'를 살고, 필용은 여전히 '미래'에 산다. 자신의 상상 속의 미래에 말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겠다. 과거를 회상하는데, 그러면 과거에 사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그런 질문에 회상조차도 양희와의 재회를 그리며 하는 것이 아니냐고 대답하겠다.
1) 미래에 사는 필용과 현재를 사는 양희
필용의 모습은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이는 현대인과 닮았다. 현대인은 여유로운 '미래'를 위해 '현재' 바쁘게 산다. 좋은 대학교에 가기 위해,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더 나은 곳으로 이직하기 위해, 안정적인 삶을 위해 애쓴다. 필사적인 노력 끝에 원하던 것을 이루면 여유가 찾아올 거라 믿으면서 열심히 산다. 필용이 양희에게 성취와 인정에 대한 상상을 늘어놓는 것이나 인사발령 직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부터 생각하는 모습을 보면 미래를 위해 사는 현대인처럼 보인다.
양희는 이런 미래지향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돋보이는 인물이다. 양희는 미래를 위해 달리는 다수와 달리 내일 일은 관심도 없다는 듯이 현재를 산다. '지금 사랑하는 것 같아서' 필용에게 고백하거나 통장 안에 있는 전 재산 '삼십팔만 원'을 달라는 아버지의 말에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이는 태도에서 그런 캐릭터를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삶은 미래를 향해 "운동감 있게 펼쳐지는 상태가 아니라 안개처럼 부옇게, 분명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게 풀풀 흩어지는" 현재 그 자체이다.
2) 양희의 고백을 통해, 사랑은 어디에 머물까?
양희가 필용에게 "지금 사랑하는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이나 "오늘도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이유는 그런 삶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사실 상대방을 향한 고백은 대체로 앞으로 미래를 함께하고 싶다는 욕망을 전제하기에 양희의 고백은 황당하기 짝이 없다. 그렇지만 현재에 충실한 것이 양희이고, 그것이 남들과는 다른 먼 훗날이 지나 다시 보았을 때 "되게 멋있어"진 이유일 것이다. 하루아침에 "아, 선배 안 해요, 사랑"이라 말하는 부분에서는 그녀의 성격이 더욱 확실히 드러난다.
현재를 사는 양희를 보며 사랑이 머무는 자리는 어디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필용은 더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양희에게 폭언을 쏟아내고 곧 후회한다. 그리고 그에게 찾아가 사과하겠다고, 함께하는 미래를 꿈꾸며 고백하겠다고 다짐한다. 물론 양희를 찾아간 문산에서 그 모든 것은 무너진 채 서울로 돌아오지만 말이다. 당시 필용은 "울면서 무엇으로도 대체되지도 좀 다르게 변형되지도 않고 무언가가 아주 사라져버릴 수 있음을 완전히 이해"한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말이다.
3) 사랑은 기억에 남아 삶에 콕 박힌다.
오랜 시간이 지나 양희가 썼던 글자 '나무는 ㅋㅋㅋ하고 웃는다'를 여전히 기억하는 걸 보면 그것이 사라졌는지는 의문이다. 필용은 그 기억을 바탕으로 양희를 다시 찾아가고, 그와의 추억을 회상하고, 그가 나를 은근히 알아보길 바라니까 말이다. 필용은 마지막 관람을 마치고 종로 한복판을 걸으며 언젠가 '아주 없음'으로 남았다고 생각한 사랑은 '있지 않음'의 상태로 잔존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양희를 향한 여러 질문이, 그 잔존이 실제일지 고뇌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 잔존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한 사람의 삶에 분명 큰 영향을 줬으리라 생각한다. 사랑은 '아주 없음'의 상태로 한 사람의 삶 어딘가 구석에 콕 박혀 남는 것 같다.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감정은 흘러가는 시간 속에 있는 것이며, 삶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양희의 '오늘의 사랑하지 않음'은 그녀가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가능한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누구보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단호히 고백했듯 단호히 "아주 없다"고 외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했다.
현재의 감정에 솔직한 사람의 멋있음의 정도에 관해. 그의 내일 없는 고백과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모습은 참 건강하다. 우리의 삶에서도 사랑은 오랜 기간 기억에 잠겨 삶에서 툭툭 튀어나오므로, 현재 감정에 솔직한 태도도 필요하겠다.
한다, 글 쓰는 일을. 다소 다글거리겠지만.
영화, 드라마, 도서, 음악 등 대중 콘텐츠를 보다
감정이 깃드는 작품을 리뷰하는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