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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애 Dec 07. 2022

나만의 기억으로 사람을 보는 우리

<인상과 고정관념>

누군가를 만날 약속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를 만나기 전에 우리는 어떠한 만남이 이루어질지에 대해 생각을 합니다. 어떻게 인사를 나누고, 어떤 대화를 나눌 것이며, 그와의 만남이 우리에게 어떤 경험으로 남을지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구체적인 상상을 할 수 있는 건 우리가 만날 대상, 그에 대해 잘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약 곧 만날 사람에 대해 잘 모른다면 어떨까요? 곧 있을 대면이 첫 만남이라면, 우리는 만나자마자 상대방에 대한 이미지를 재빨리 구축하여 그를 어떻게 대할지 결정할 겁니다.



적어도 첫 만남에서는 내 앞에 있는 그 사람이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모르는 정보니까요.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정보는 '알고 있는 정보'뿐입니다. 즉, 첫 만남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만나자마자 알게 되는 정보, '첫인상'일 겁니다. 첫인상을 통해 상대방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일차적으로 구분합니다. 상대방이 내게 인사하는 표정, 자세, 복장, 전체적으로 풍기는 분위기 등 다양한 정보를 종합해서 첫인상을 판단할 겁니다. 그리고 이 정보를 해석하는 데 있어 가장 주요하게 작용하는 재료는 바로 우리의 '기억'에 있습니다.



똑같은 사람을 봐도 전혀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저장된 기억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회색 정장에 빨간색 넥타이를 매고 검은색 구두를 신은 남성이 있습니다. 얼핏 보았을 때 40대 정도로 보입니다. 머리는 짧게 스포츠 스타일로 정돈되어 있고, 180cm 정도에 살집이 제법 있는 체형입니다. 배가 볼록하게 나온 게 얼핏 봐도 보이네요. 여기까지 설명했을 때 여러분은 이 사람이 어떤 이미지로 느껴지나요? 직업은 무엇이며, 성격은 어떨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실제로 제 친구에게 똑같이 설명하고서 느낌을 물어보니, "빨간 넥타이? 그럼 보수인가?"라는 평을 내놓았습니다. 친구의 고정관념에 꽤 충격을 받았네요.



네. 바로 고정관념이 첫인상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칩니다. 앞서 저장된 기억이라고 말했지만, 달리 표현하면 우리가 가진 고정관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억이 뭉치면 하나의 믿음이 되고, 믿음이 굳어져서 만들어진 게 바로 고정관념이기 때문이죠.



누구나 고정관념으로, 한 번의 인상으로 상대방을 판단하면 좋지 않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이는 본능적으로, 아주 순식간에 작동하기 때문에 우리가 알아차리고 의식적으로 조절하기 매우 힘듭니다. 빠르게 상대방에 대한 판단을 끝내는 이유는 우리가 새로운 자극을 해석할 때 느끼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함입니다. 새로운 자극은 곧 '잘 모르는 것'이며, 잘 모르는 것은 '위험한 것'이라는 불안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주로 고정관념에 의해 첫인상을 형성하는 단서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가장 대표적인 건 역시 옷차림일 겁니다. 아마 위의 예시에서 '회색 정장', '빨간 넥타이', '검은색 구두'를 보고 '회사원'을 떠올린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만약 '하와이안 셔츠', '반바지', '슬리퍼'였다면 어땠을까요? 회사원을 떠올리긴 어려웠을 겁니다. 이처럼 우리는 옷차림에 따른 몇몇 대표적인 인상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면 갖고 있는 정보에 맞춰보며 상대방을 파악하려 하죠.



다음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건 헤어스타일과 얼굴일 겁니다. 전체적으로 훑어보고 나서는 얼굴에 집중하기 때문이죠. 헤어스타일을 통해서는 상대방의 성격을 유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머리가 짧고 잘 정돈되어 있다면 깔끔한 성격이라고 생각하기 쉽고, 반대로 남성인데 장발이라면 일단 틀에 갇혀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겠죠. 여성의 경우에 짧은 숏컷 스타일이라면 자기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걸 신경 쓰거나 똑 부러지는 완고한 성격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안경을 썼는지, 화장을 어떻게 했는지, 수염이나 구레나룻을 어떻게 정리했는지에 따라서도 다양한 판단이 나올 겁니다.



옷차림과 헤어스타일 등 외모 다음으로 첫인상에 영향을 미치는 건 제스처, 보디랭귀지 등의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와 '목소리'입니다. 캘리포니아대학교 심리학과 명예교수인 알버트 메라비언은 자신의 이름을 딴 '메라비언의 법칙'을 발표했습니다. 이 법칙에 따르면 "상대방의 인상을 결정하는 데 있어 보디랭귀지가 55%, 목소리가 38%, 말하는 내용은 7% 영향을 미친다"라고 합니다. 앞서 말한 외모 요인을 살펴볼 때 보디랭귀지는 동시에 분석되니 외모 다음이 목소리라고 말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당연히 음색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는 얼마나 듣기 편하게 나를 배려해서 말하는지가, 우리가 상대방을 좋은 사람으로 인식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고정관념과 더 긴밀히 관련이 있습니다. 발음이 정확한지, 톤은 일정한지, 말의 속도와 악센트는 듣기 편한지 등 말이죠.



우리가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에 대해 어떤 인상을 형성할지는 의식적으로 조절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만나고 나서 내가 느낀 인상이 그 사람에 대해 얼마나 설명해 줄 수 있는지, 얼마나 정확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고 평가해 보는 작업은 꼭 필요합니다. 대체로 사기꾼은 '좋은 사람' 행세를 잘합니다. 우리가 상대방을 좋은 사람으로 느꼈다면 더욱 조심할 필요가 있는 거죠. 그렇다고 좋은 사람으로 느껴진 모든 사람이 사기꾼인 건 아닙니다. 정말 좋은 사람을 사기꾼이라고 생각해버리면 소중한 인연을 놓칠 수 있겠죠. 그러니 일단 우리가 어떤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지 파악해 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고정관념, 내가 느낀 인상을 뒷받침하는 다른 증거를 최대한 모아봐야 합니다.



가장 좋은 증거는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평가입니다. 일종의 '후기를 모아보는' 거죠. 아무리 능력 좋은 사기꾼이라 할지라도 자기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인 척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 그 사람을 아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는 게 도움이 됩니다. 만약 그 사람을 아는 지인을 찾기 어렵다면, 내가 가진 데이터를 늘려야겠죠. 좀 더 만나봐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종종 부딪히게 되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 사람이 어떤 태도로 대하는지를 유심히 살펴봐야 해요. 나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상대방은 온 정신이 내게 쏠려있기 때문에 스치는 사람들에게까지 좋은 사람인 척 연기를 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고정관념은 우리가 세상을 효율적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용한 틀입니다. 고정관념 자체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길 바랍니다. 다만 너무 효율을 추구하다 보니 실수가 생길 수도 있어요. 우리가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을 칠 때, 빨리 문제를 풀려고 하면 실수가 더 많이 생기는 것처럼요. 하지만 시간제한이 있는 시험에선 빨리 푸는 것도 중요할 거예요. 결국 속도와 정확성을 골고루 균형 있게 신경 써야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죠. 사람을 만나고 인상을 형성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고정관념으로 빠르게 파악하여 지금 여기서 내가 상대방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게 필요합니다. 하지만 여지를 남겨둬야 해요. 정확성은 조금 떨어질 수 있으니까요. 우리 모두 균형을 맞추면서 좋은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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