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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애 Feb 14. 2023

마음은 향기를 남기고,
향기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냄새와 기억의 심리학>


가슴 아파서, 목이 메여서, 안간힘을 써봐도
피해 갈 수도, 물러지지도, 않는 이별인가 봐


가수 테이의 '사랑은 향기를 남기고'라는 노래의 도입부 가사입니다. 저는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노래를 찾아듣기 시작했는데, 그때 들었던 아주 오래된 노래입니다. 사랑이 향기를 남긴다는 제목이 깊은 여운을 줍니다. 오랜만에 다시 들어도 참 좋은 노래네요.



우리가 가진 오감 중 가장 중요한 건 뭐니 뭐니 해도 시각일 겁니다. 시각을 통해 받아들이는 정보량이 다른 감각들을 활용한 것만큼 되니까요. 다음으로는 청각이 중요하겠죠. 눈에 보이지 않는 걸 확인하기 위해선 들을 수 있어야 하니까요. 미각은 우리 삶의 활력소라고 할 수 있고, 촉각은 위험한 외부 환경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데 쓰입니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후각은 중요도가 뒤로 밀리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분명 어떤 감각보다도 후각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들도 계시겠죠? 사실 음식의 맛을 느끼는 데는 미각보다 후각이 더 많은 역할을 한다고도 말하니까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침울했던 하루와 서글픈 내일에 대한 전망으로
마음이 울적해진 나는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 한 숟가락을
기계적으로 입술로 가져갔다.
···
입 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감미로운 기쁨이
나를 사로잡으며 고립시켰다.




이 구절로 인해 심리학자들은 '프루스트 효과' 혹은 '마들렌 효과'라고 이름 붙여 어떠한 현상을 설명하려 했습니다. 특정 향기를 맡으면 그와 관련된 옛 기억을 강렬하게 회상하는 현상이죠. 우리가 가진 기억은 감각 정보와 함께 정서적 정보도 함께 짝지어 저장됩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후각과 기억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하죠.



우리가 후각 정보를 받아들일 때 그 정보를 해석하는 뇌 영역이 우리의 기억 기능을 담당하기도 하는 해마와 편도체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냄새를 맡는 경험이 기억과 함께 우리에게 남게 되는 거죠. 특히 일반적으로 맡을 일이 없는 특이한 냄새일수록 더 기억에 선명히 남고, 미래에 같은 향기를 맡았을 때는 그 향기를 처음 맡았던 순간의 기억을 정확하게 떠올릴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반대로 기억 기능, 해마의 기능이 약해질 때면 후각이 둔해진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후각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지를 통해 치매를 조기 발견하는 시도를 한다고 해요.



저는 오감 중에서 후각이 가장 둔한 사람이에요. 그래서인지 기억력도 안 좋은 듯한...


음식의 맛도 풍부하게 느끼기 어려운 편이에요. 덕분에 편식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기도 하지만 음식을 통해 감동을 받는 경험은 할 수 없어 아쉬울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본적으로 식욕이 거의 없기도 해요.



하지만 이런 저도 옛 기억을 떠올릴 수 있게 해주는 향기가 있습니다. 바로 참기름의 고소한 향기죠. 저는 어릴 때 간장밥을 정말 많이 먹었어요. 밥에 간장과 참기름을 뿌리고 쓱쓱 비벼 먹었었죠. 집에 부모님이 없을 때면 그렇게 짭짤하고 고소한 밥을 챙겨 먹곤 했습니다. 잘 먹는 제 모습이 흐뭇하셨는지 부모님께서도 제게 밥을 차려줄 때 간장밥을 많이 해주시기도 했고요. 부모님이 계실 땐 김도 추가되곤 해서 더 좋았죠.



지금도 길을 걷다 참기름 냄새를 맡으면 그때가 떠오릅니다. 아무리 후각이 둔해도 참기름의 강렬한 고소함은 느낄 수 있어 참 다행입니다.



여러분은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어떤 향기를 알고 계시나요? 만약 그 기억이 여러분이 삶을 버티게 해주는 힘을 갖고 있다면, 그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향기를 곁에 두시길 바랍니다. 지쳤을 때, 슬플 때, 외로울 때, 좌절했을 때, 향기를 맡으며 쉬어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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