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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애 Apr 26. 2023

마음의 알고리즘

애착과 성격

우리는 태어날 때 아주 많은 걸 부모로부터 물려받습니다. 이러한 유전적 특성을 '기질'이라 부릅니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모험심이 강한지, 익숙한 걸 좋아하고 위험을 피하려 하는지,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얼마나 민감한지 등 기질에 따라 아이들의 행동은 참 많이 다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질대로만 살지 않고, 기질대로만 크진 않습니다. 여러 경험을 쌓아가며 기질은 환경과 상호작용을 합니다. 좀 더 강해지는 기질도 있고, 경험에 따라 약해지는 기질도 생기죠. 그렇게 '성격'이란 게 만들어집니다. 이 성격이 만들어지는 데 있어 모든 경험들이 영향을 미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건 태어나자마자 겪게 되는 '부모와의 관계'입니다.



부모가 아이를 어떻게 양육하느냐에 따라, 아이가 겪게 될 세상은 너무나도 달라집니다. 아이는 어머니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는 법을 배우고, 나아가 타인과 관계를 맺는 법을 배웁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통해 세상으로 나아가는 법과 사회문화적 의무와 권리 등 규칙을 배우게 되죠. 꼭 친부모가 아니더라도 자신을 돌봐주는 주 양육자와의 관계가 아이의 성격이 만들어지는 데 아주 큰 영향을 미칩니다.



심리학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애착 이론'에서는 이렇게 형성된 성격을 '내적작동모델(internal working models)'이라는 용어로 설명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한 아이가 양육자와 맺은 관계에서 '인간관계의 규칙'을 배우는 걸 뜻합니다. 우선 대표적인 주 양육자인 어머니로 이야기를 해볼게요.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아이는 우선 자신의 욕구를 표현합니다. 배가 고프다, 잠이 온다, 누운 자리가 불편하다 등 바라는 걸 울음이라는 행동으로 마음껏 표현하죠. 어머니는 빠르고, 적절하게 아이의 요구를 만족시켜줘야 합니다. 잘 해냈다면 아이는 '나는 엄마에게 받아들여지고 있구나'라고 경험하게 되죠.



엄마에게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하면서 아이는 두 가지 이미지를 만들어냅니다. 자기 자신과 타인의 이미지죠. 엄마에게 받아들여진다는 건 자신이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질 만큼 괜찮은 존재라는 이미지를 갖게 해줍니다. 그리고 자신을 받아들여주는 타인 또한 괜찮은 존재라고 믿게 되죠. 만약 엄마로부터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면 어떨까요?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여기게 되거나, 나를 받아주지 않는 타인을 믿지 못하게 될 수 있어요. 나에 대한 이미지를 '자기 표상', 중요한 타인에 대한 이미지를 '대상 표상'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인간관계의 청사진'이 그려지고 나면, 앞서 말했던 '내적작동모델'이 만들어집니다. 이 모델은 일종의 '인간관계 알고리즘'으로 작동해요. 누군가를 만났을 때 나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다른 사람들은 내게 어떻게 반응할지, 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갈지를 내적작동모델에 맞춰 예측하고, 해석한다고, 애착 이론에선 설명합니다.



SNS나 유튜브 알고리즘에 따라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가 얼마나 빠르게 제공되는지, 그리고 관심사에서 벗어난 콘텐츠를 만나기는 얼마나 어려운지를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알고리즘은 이보다 더 강하게 영향을 미칩니다. 마음속 모델에서 벗어난 세상은 보이지 않고, 오직 모델에 따라서만 관계를 맺게 되죠.



그럼 내적작동모델이라는 알고리즘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요? 물론 있습니다. 다시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봅시다. 유튜브 알고리즘을 바꾸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영상을 직접 '검색'해서 시청하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지금껏 봐왔던 콘텐츠는 무엇이고, 보지 않은 건 무엇인지, 안 본 걸 검색하기 위해 어떤 검색어를 넣을 건지를 알아야 해요. 다시 우리 마음속 알고리즘, 내적작동모델로 돌아와보자면 이렇습니다. 지금껏 내가 어떻게 관계를 맺어왔는지 알아야 하고, 내가 시도해 보지 못한 인간관계 방식, 대처기술은 무엇이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검색어를 만들기 위해서 질문해야 해요. '내가 진짜 바라는 건 무엇인지', 그리고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지'를 말이죠.



지금까지 설명한 내적작동모델은 한 사람이 딱 하나만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에요. 한 사람이 여러 모델을 갖고 있고, 이 모델들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애착이 불안정하게 형성된 사람일 경우 여러 모델들이 만들어지기 쉽고, 모델들 간의 충돌도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이론에서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번 만들어지면 영원히 변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알아차리지 않고 계속 놔둔다면 변하지 않을 우리 마음속의 알고리즘을 이해한다면, 우리 자신을 더 잘 관리하고 타인과 안정적인 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을 겁니다. 다음에는 내적작동모델에 따라 애착 유형이 어떻게 나뉘는지, 그리고 각각의 유형이 알아야 하는 건 무엇인지에 관해 이야기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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