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하는 말이 내 마음 상태를 결정한다.
<인지부조화에 관하여>
누구에게나 작은 습관이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물 한 잔을 마신다거나 매일 운동을 하는 것처럼 반복하는 루틴일 수도 있고, 운전할 때면 껌을 씹는 것처럼 특정 상황에서만 자주 나타나는 행동일 수도 있죠. 그리고 습관에는 행동뿐만 아니라 말로 내뱉는, 언어 습관도 있습니다.
누구나 자기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그러니까', '그렇지?', '예를 들어' 등 한 번 더 설명하거나 내 말에 동의해달라는 의미가 담긴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자세히 설명할수록 상대방이 내 말에 동의해 주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으니 모두 동의 받고자 하는 말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언어 습관을 통해 저라는 사람이 인정 욕구가 참 강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겐 특정한 언어 습관이 있는데, 어떤 언어를 자주 사용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마음 상태가 달라질 수 있어요. 일반적으로는 마음 상태에 따라 사용하는 말이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또한 맞습니다. 마음이 가볍고 신이 날 때는 평소보다 미사여구나 형용사를 많이 쓰게 되지만, 우울하고 지쳤을 때는 공격적인 말이나 무뚝뚝한 표현을 주로 쓰게 될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 마음 상태를 바꿀 때도 분명히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습관적으로 "아이고, 죽겠네!"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부모님일 수도 있고, 직장 상사일 수도 있고, 어쩌면 우리 자신일 수도 있죠. 만약 기분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 말을 사용하게 된다면 높은 확률로 기분이 나빠지게 됩니다. 우리 뇌는 쉬지 않고 자신의 생존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우리 자신을 모니터링합니다. 우리가 죽겠다고 말한다면 뇌는 위험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뭐?! 내가 죽겠다고? 큰일이야!"라고 말이죠. 우리가 당장 생존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도록 만들려고 합니다. 바로 '기분을 나쁘게' 만드는 거죠.
인간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태도와 실제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때 강한 불편감을 느낍니다. 심리학에선 이러한 현상을 '인지부조화'라고 부릅니다.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가 한 실험으로 설명한 현상입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사람들에게 지루한 과제를 하도록 시킨 후, "실험이 재밌었다고 좋은 평가를 남겨주세요"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러면서 실험 참가자 중 일부는 1달러를, 다른 일부에게는 20달러를 보상으로 줍니다. 그 후 재미가 없었는데도 재밌었다고 거짓 평가를 더 많이 남기는 집단이 1달러를 받은 사람들인지, 20달러를 받은 사람들인지 살펴봤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당연히 보상을 더 많이 받은, 20달러를 받은 사람들이 좋은 평가를 많이 남겼을까요? 20달러를 받은 사람들도 좋은 평가를 남기긴 했으나, 약간 미묘했습니다. "재밌었어요!"보다는 "음.. 뭐.. 나름 재밌었네요" 정도로 평가를 한 거죠. 그런데 1달러를 받은 사람들에게서는 "재밌었어요!"에 가까운 평가를 좀 더 많이 받을 수 있었습니다. '실험이 재미없었다'라는 태도와 '실험이 재밌었다고 평가한다'라는 행동 사이에 생기는 인지부조화를 '설명할 수' 있는 이유가 생겨 불편감을 덜 느끼게 되는 거죠. 그러니 거짓 평가도 애매했습니다.
20달러를 받은 사람들은 실험자가 요구한 거짓말을 하는 이유가 자신이 받은 20달러, '무려' 20달러나 받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재미가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한다고, 자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1달러를 받은 사람들은 '겨우' 1달러를 받았기에, '내가 고작 1달러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라고?'라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실험이 재미없었다'라는 태도와 '실험이 재밌었다고 평가한다'라는 행동 사이의 불일치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겁니다. 그럴수록 인지부조화라는 감정 상태는 더욱 강해집니다. 즉, 불편감이 강하게 느껴지는 거죠.
사람들은 강한 인지부조화를 느끼면 태도와 행동 중 하나를 바꿔 불일치에서 오는 불편감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이때 행동보다는 태도를 바꾸는 게 훨씬 쉽습니다. 행동은 이미 일어나버린 일일 때가 많고, 다시 행동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고 해도 이미 해버린 행동과 반대되는 행동을 한다는 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태도는 눈에 보이지 않죠. 다른 사람들이 내가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통해서입니다. 즉, 행동에 맞춰 태도를 바꾼 건지 아니면 원래 그런 태도를 갖고 있었는지 알 수 없다는 거죠. 그러니 태도를 행동에 맞춰 바꾸는 게 훨씬 쉽습니다.
1달러를 받은 사람들은 '난 고작 1달러를 받아서 거짓말을 한 게 아니야! 진짜 실험이 재미있었던 거라고!'라며 자신의 태도를 '재밌었다'라고 평가한 행동에 맞춰 바꿨습니다. 그래서 더욱 확신을 가지고 "재밌었어요!"라고 평가한 거죠. 태도가 행동을 결정하는 동시에, 행동 또한 태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핵심적인 이유입니다.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그러니까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말, 즉 언어적 행동이 우리의 태도, 다시 말해 '마음 상태'를 바꿀 수 있습니다. "죽겠네!"라는 말을 자주 쓰는 사람의 마음 상태는 정말 죽을 것처럼 힘든 사람과 같은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데도 말이죠. 물론 하루 이틀 정도로는 바뀌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말을 1년 혹은 그 이상 매일 사용한다면 어떨까요?
어떤 언어 습관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삶을 어림잡아 그려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알고 난 후로 "그럴 수 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아주 오랫동안 연습해왔습니다. 지금은 자동적으로 입에서 튀어나옵니다. 어떤 의견을 들어도,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그럴 수 있지 않냐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런 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고, 생각을 달리해볼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긍정적인 태도를 지니게 된 거죠. 원래부터 긍정적인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지극히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사람이었죠. '말'로 '태도'를 바꾼 겁니다.
우리 자신이 지금 어떤 말을 자주 사용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스스로는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 그들은 이미 알고 있을 거예요. 우리의 언어 습관을, 그 말로 인해 형성된 우리의 마음가짐과 태도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