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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 철학자 Sep 21. 2023

고민을 나눌 친구가 있다는 것

네덜란드 교환생활 수요 끄적끄적

이번 한 주도 새로운 인연도 만나고, 다양한 스포츠들에도 도전해보며 나름대로 이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일들을 지속적으로 해나갈 수 있었다. 


 하루는 한국에서 자신의 할 일을 묵묵히 해나가고 있는 친구와도 전화를 했다. 유럽으로 놀러오기로 한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시작된 연락이었지만, 우리의 대화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3개월 간 거의 3시간 씩 밖에 자지 못하며 인턴을 한 그가, JP 모건에 면접을 볼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맞닥뜨렸다는 소식을 접했다. 당연히 그와 함께할 유럽 여행을 기대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쩌면 일생에 다시 오지 않을 기회를 잡은 친구를, 가장 친한 사람으로써 응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막상 이런 좋은 기회를 앞에 두고도, 그 친구는 그간 인턴을 하면서 지쳐버린 심신 그리고 미리 계획했던 여러가지 일들 때문에 면접을 보기 위한 준비를 바로 할 수 있을지 고심을 거듭하고 있었다. 어차피 잘 이겨낼 수 있으면서, 엄살 피우는 그가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그런 자랑스러운 친구를 둔 한 사람으로서 그를 응원하기 위해 그리 길지 않은 길이의 카톡을 보냈는데, 이게 또 그 녀석을 감동시켰는지 갑작스레 보이스톡이 걸려왔다. 


"여보세요..?"


어느새 한국에도 가을이 찾아왔는지, 길가의 귀뚜라미 울음소리와 함께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짜 고마워"


물론, 진심으로 그를 생각하며 고민한 것들을 그에게 전달한 것은 맞지만 나의 어쩌면 사소하고 당연한 친구로서의 응원을 이토록 고마워할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글의 힘'일 수도 있고, 타지에서도 그를 생각하는 나의 '진심의 무게'가 제대로 전달된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참 잘된 일이다.

한참을 그의 고민을 들어주면서, 나의 경험에 비추어 그의 결정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러다보니 어느덧 그 녀석이 나의 고민을 들어줄 타이밍도 찾아왔다.


어쩌다보니 전화를 준 녀석 덕분에, 그 친구에게 내가 가지고 있던 평소의 고민들도 털어놓을 수가 있었다. 나도 사실 애써 괜찮은 척했지만 교환생활 속에서 생각보다 많은 고민을 품은 채 모른척하고 살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학문을 배움에 있어서 나는 그리 속도가 빠른편이 아닌데, 한국어로도 생소한 학문적 용어를 영어로 배우면서 스스로를 많이 깎아내리곤 했다. 처음부터 잘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고, 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충분히 자각하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마음가짐을 고쳐먹는게 쉽지 않았다


또 교환생활을 하는 누구라도 느끼는 것이겠지만, 우려했던 것만큼 걱정스러운 일들이 많이 펼쳐지지 않고, 반대로 기대했던 만큼 낭만적인 순간들이 모든 날에 펼쳐지지도 않는다. 두 달 넘게 주거지를 구하는 문제로 고생한 나만 하더라도, 가서 어떤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집이 사실은 없는 집이 아닐까 하는 우려를 계속했지만 절대적으로 기우였다. 한편으로, 유럽에서 교환 생활을 하면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장면이 아름답고, 모든 인간관계는 미드처럼 낭만적일 것이라고 여겼던 것도 착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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