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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May 08. 2022

주(酒)여!

  술을 즐겨 마시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다.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지?’ , ‘한번 먹으면 한동안은 생각도 안나던데, 어쩜 저렇게 매일같이 술을 마시지?’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이어가지만 결론은 이해할 수 없다로 정의되곤 한다. 한편으로는 술을 즐겨 마시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한데, 그날의 기분이나 상황에 따른 안주와 주종을 골라 마시는 모습이 꽤 근사하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모습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술을 즐겨 마시는 사람이 부럽다’라는 생각이 요 근래 더 자주 들게 된 건 아마도 거리두기가 해제되자마자 시작된 연이은 회식 때문이기도 하지만, 최근에 읽은 <아무튼, 술>이라는 에세이를 읽고나서부터 술이 술을 부르듯, 술에 대한 생각이 술에 대한 생각을 불렀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술을 즐겨마시지 않는다. 그래서 술 약속을 잡는 일은 거의 없는데, 그렇다고 또 술을 아예 못 마시는 건 아니라서 회식 때마다 나는 본의 아니게 ‘술 잘 마시는 애’로 소개되고, ‘그래? 그렇게 잘 마셔?’라는 의문점이 되어 ‘얼마나 잘 마시나 보자’라는 주제의 실험 대상이 된다. 실험 대상으로서 의무를 충실히 하다 보면, 다음 회식에서 또 ‘술 잘 마시잖아.’로 이어지는 식이다. 부서를 옮겨 이제 좀 조용히 살 수 있겠다 싶을 때면, ‘술을 그렇게 잘 마신다면서요?’라는 미저리 같은 상황을 마주 한다. 그렇다고 내가 대단히 술을 잘 마시는 것도 아니다. 내 주량은 소주 반 병이다. 그 정도가 딱 간에서 허용하는 수치인데, 항상 그 수치를 넘어서 간 님께서 자주 노하시곤 한다. 술도 즐겨마시지 않고, 주량도 세지 않은 내가 매번 실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단지,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정신으로 술을 마시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술자리에서의 첫인상을 아주, 대단히 잘 못 남겨 두고두고 회자되는 우를 범한 것이다.


  내가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한 건 대학생 때도 아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였다. 술을 제대로 마시게 된 것이 회식자리였기 때문에 정확한 주량도 모른 채 주시는대로 받아먹기 바빴다. 상사들과 먹는 자리에서 실수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일까, 다행히 주량도 모르고 소주잔을 셀 수 없이 기울였지만, 걱정과 달리 꽤나 멀쩡한 모습으로 그 자리를 끝마쳤다. 꽤나 멀쩡하다는 것은 눈은 반쯤 풀렸지만, 상대를 똑바로 주시할 수 있었다는 것이고,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지만, 비틀대며 서있을 수 있었다는 것이며, 발음이 부정확했지만, 문장은 만들어서 말할 수 있는 정도였다. 내가 술을 잘 먹는다는 소문을 낳고 다니는 이유는 아마도 마지막 순간까지 제정신 인척 하는 페이크에 다들 속은 것뿐이다. ‘내가 술을 잘 마시는 게 아니라, 당신들이 내 페이크에 속은 것뿐이라고요.’


  미저리같이 따라다니는 ‘말술’이라는 소문을 이제는 바로잡을 때가 됐다 싶어, ‘술을 그렇게 잘 마신다면서요?’라는 답변에 ‘에이, 아니에요. 술 못 마셔요.’ , ‘주량이 어떻게 되는데요?’ , ‘소주 반 병이요.’라고 답하면 아무도 내 이야기를 믿는 사람이 없었다. 그냥 하는 소리인 줄 알고 또 부어라 마셔라 잔을 채워 준다. 미치겠네. 바닥에 전이라도 부쳐봐야 믿어주려나, 바닥에 드러누워 생떼이라도 부려야 믿어줄까 싶어도 결국엔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 순 없어라는 정신이 나를 붙잡는다. 이런 식으로 술자리가 이어지다 보니 술은 내게 즐길 거리가 아니라 해명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나 정말 술 못 마셔요…….


  술을 마시고 난 후의 알딸딸한 기분을 좋아하지만, 혼술 하는 경우는 소위 말해 화날 때 빼고는 없다. 머리가 터질듯한 분노와 뜨겁게 타오르는 심장의 열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벌컥벌컥 마셔대는지라 술맛을 즐기면서 먹는 것도 아니고, 그저 화남 진화용으로 술을 대하기 때문에 당연히 즐거울 리 없다. 그래서 나는 술맛의 즐거움을 몰라, 그 유희를 아는 사람들이 부럽다. 과도한 음주는 건강을 해치지만, 적당한 음주는 정신건강에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맛있는 제철음식과 어울리는 주종을 곁들여 한두 잔 기울이다 취기가 적당히 오를 때면 맨 정신으로는 하지 못하는 가슴속에 묻어둔 속내도 들춰내는 그런 술맛을 아는 날이 내게도 올까? 주(酒)여, 제게 주(酒)님의 진가를 알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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