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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엄마 Nov 24. 2021

『서찰을 전하는 아이』와
『명혜』

두 소설을 통해 역사를 이해하는 방법

1.『서찰을 전하는 아이-소년이 사는 시대

한윤섭 글/백대승 그림 | 푸른숲주니어 |

소년의 아버지는 보부상이었다. 소년도 장성하여 아버지 같은 보부상이 되어 열세 살, 열네 살 때의 기억을 회상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소년이 열세 살이었던 시대는 신분사회였다. 소년은 감히 한문을 배우기는커녕 접하기도 힘든 봇짐장수의 아들이었고, 한자를 알려고 한다는 사실조차 양반의 심기를 건드릴까 한자로 가득한 서찰을 함부로 내밀지도 못하는 시대에 살았다. (아이러니하고도 재미있는 것은 한문을 모르는 신분의 아이였기에 이 소설이 순조롭게 진행이 된다는 점이다.) 

한자로 쓰인 단 열 자의 해독을 위해 아이가 만나는 몇몇의 신분은 한자를 아는 사람들이다. 한자를 안다는 것은 양반이거나, 혹은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자로 사회적 지위가 있는 신분이라는 건데, 아이가 상대하는 한자를 아는 자들은 하나같이 아이에게 한자를 가르쳐주는 대가를 바라고 있다. 심지어 동갑의 양반 아이조차 한자를 가르쳐 주면 무엇을 해주겠냐고 물으니, 이 시대의 인정은 각박하기만 하다. 이 각박하기만 인정은 그 시대의 사회상을 그대로 반영한 것일 수도 있는데, 밀려드는 외세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하는 양반 관리들의 부정부패로 인해 직접적으로 그 고초를 겪고 있는 보통 백성들을 삶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신분에 따른 차별적 인간관계를 옹호하여 성립되고 유지되고 있었던 조선사회에서, 아래 계급일수록 더 힘든 삶을 버텼어야 했고, 그리하여 성난 민심들이 ‘평등사상’을 외치는 ‘동학(천주학)’을 구심점으로 모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 제 나라 백성 죽이자고 청나라 군대를 불러온 임금과 신하들이 문제지. ” p48

“ 조선이 임자 없는 떡이라 그렇다. 둘이서 더 먹으려고 싸우는 것이다. 동학 농민군을 잡자고 조선 조정에서 청을 불렀으니, 일본군도 움직인 거지. 일본은 청나라 혼자 조선에서 힘을 쓰게 놔두지 않겠다는 거다.” p48

“정말 천주학에서는 양반과 천민 구분 없이 모두 평등한가요?”  p73

“ 좋은 세상 만들겠다고 동학 농민군이 일어났으니, 세상을 살린다는 말도 맞았다”p101     

그러했기에 소년이 살던 시대는 ‘사람을 구하고 세상을 구할’, 고작 한자(漢字) 열 자 밖에 안 되는 ‘서찰’이 반드시 전달되어야만 할 ‘가치’가 충분한 시대인 것이고, 서찰을 전하는 아이의 일은 매우 중요한 임무가 되어야 하는 소설의 장치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2.『서찰을 전하는 아이-주요 역사적 사건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소년이 겪게 되는 역사적 사건이 있다. 

우금치 전투를 비롯한 동학농민운동이다.     

“ 거기 쌓여 있는 건 눈이 아니었다. 그건 사람들이었다. 흰 옷을 입고 쓰러진 사람들이 겹겹이 쌓여 눈이 온 것처럼 들판을 덮고 있었다. 오늘 싸움에서 죽어간 동학 농민군들이었다” p119     

공주 우금치 전투는 동학농민군이 벌인 전투 가운데 최대 규모로 꼽힌다. 조선 관군과 일본 연합군의 월등한 신식무기 때문에 농민군이 크게 패배하여 동학농민운동이 실패한 결정적 계기가 된 전투이기도 하다. 이 패배로 동학농민군의 지도자였던 전봉준은 재기를 기약하며 산속 깊숙이 피신을 하게 되며, 그로 인해 소설 속에서 산속의 절에 머물고 있던 소년과 만날 수 있는 장치로 연결된다. 

또한 우금치 전투를 목격하고 충격에 빠진 소년이 주막에 묵고 있을 때, 소년은 김경천이라는 한 남자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재기를 꿈꾸며 군대를 모으던 전봉준을 밀고한 것으로 알려진 부하 김경천은 이 소설에서 전봉준과 함께 실명이 거론된 단 두 명의 역사적 실존인물이다. 

단 두 명의 실존인물의 삶과 서찰의 내용 ‘ 오호피노리경천매녹두 ’가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역사적 사실의 전부이며, 이 자그마한 역사적 재료가 소설가를 통해 역사동화로 완성되니 창조의 힘이 엄청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작가는 단 한 장의 옛날 사진으로 이 이야기를 떠올렸다고 하니, 작가가 바라보는 역사의 단면은 진실과 창조의 그 어디쯤에서 조화롭게 해후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만하다.       


3.『서찰을 전하는 아이』 동화적 요소

소설 중에 반복되는 내용이 몇몇 있다.

세상을 구한다는 글귀, 배움에는 대가가 치러져야 한다는 이야기, 셈이 밝은 소년에 대한 이야기 등등이 반복되어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소년의 노래 속에 약이 들어있다는 글귀는 소년의 노래를 듣는 상대마다 소년에게 해주는 말이었다.  

   

“ 네 노랫소리에 약이 들어 있구나 ” p15

“ 네 소리에 정말 약이 들어 있구나. 굳었던 내 몸이 녹는 것 같다. 신기한 일이구나 ”   p 96 

“ 아이야, 네 노래에 약이 들어 있구나. 너도 그것을 알고 있느냐?” p112

“ 네 노래에 약이 들어 있구나. 정말 신기한 일이야. 목에서 가슴까지 시원하게 뚫리더니  십 년이 넘게 그치지 않던 기침이 멎은 것 같다.”   p125

“ 아이야, 네 노래에 정말 약이 들어 있구나. ”    p146     


노스님을 처음 만났을 때와, 양반 아이를 따라 들어가 김진사의 몸을 낫게 했을 때, 아이가 자신의 노랫소리에 치유능력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선한 마음을 발동시키기 시작하여 타인의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 다리가 아픈 늙은 사공을 만나 노래를 해 줄 때도, 우금치 전투에서 살아남은 아이를 앉아주던 주모의 기침을 멎게 해 줄 때도, 내장산 백양산 주지스님에게서도 늘 같은 말을 듣던 소년이었다. 

사실 아이의 노랫소리가 치유능력을 갖게 된 데에는 이야기 처음에 그 실마리가 있는데, 아버지와 함께 노스님을 뵙기 위해 스님이 계시던 산에 올랐을 때, 거인의 배꼽처럼 보이던 웅덩이에 그 비밀이 있다.     

나는 천천히 웅덩이에 손을 담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속의 얼굴을 어루만졌다...(중략)... 나는 두 손을 모아 얼굴이 들어 있는 물을 조심스럽게 퍼 올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물은 손바닥 아래로 흘러내리지 않고, 오므린 두 손 위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물에 담긴 얼굴도 손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손에 담겨 있는 물을 천천히 마셨다. 태어나서 그렇게 시원한 물을 마신 건 처음이었다. 막혔던 목이 시원하게 뚫리는 기분이었다. p12~13     

아마도 도인의 능력을 지닌 노스님이 머무는 산이라 그 웅덩이도 신비한 능력을 가진 특별한 물이지 않았을까? 아니면 말 그대로 도인이었던 노스님의 혜안으로 서찰을 전하는 아이가 시대적 거부감 없는 범상치 않은 능력치를 발휘하여 임무를 완성할 수 있을 아이템을 하나 쥐어주고 시작한 셈인지.

아이의 노래에 담긴 약의 효능은 잡혀가는 녹두장군에게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불러주고, 다시 북한산으로 돌아와 거인의 웅덩이의 물을 마신 이후 사라지고 만다. 

소년의 ‘약이 들어있는 노래’라는 소박하지만 치유력 있는 아이템은 그 획득과 소실마저 동화스러웠고, 위기상황마다 적절하게 아이를 구해내며, 아이의 선함을 드러내는 요소로 쓰여서 통쾌하고 흥미로웠다.  

   

4.『명혜』 소녀가 사는 시대

김소연 저 | 창비 |

1916년, 명혜와 명선의 사촌언니의 혼례식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머니까지 삼모녀는 혼례가 열리는 곳으로 가마를 탔고, 가마 속에서 명혜는 생각이 많다. 

 여자는 시집가면 이름도 쓸모 없어진다며, 계집애 이름 잘 지을 필요 없다는 생각을 지닌 송 참판이 그녀들의 아버지이다. 그래서 아기와 갓난이라는 아명에서 벗어난지도 얼마 되지 않았지만, 집안에조차 그 이름대로 불려지지 않는 것이 명혜는 못마땅하다. (부모조차 잘 불러주지 않던 ‘명혜’라는 이름이 이 책의 제목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여자는 어엿한 이름 하나 갖기가 힘들었을 정도로 남녀가 유별하고 차별이 심했던 시대가 바로 명혜가 사는 시대였다. 여자는 그저 이름 불릴 일도 없이 조용히 크다가 열서너 살에 부모가 정해주는 혼처로 시집을 가서 또 조용히 살아내는 것이 그 시대 여자들의 숙명이었다.     

“ 그렇지 않아도 걱정이에요. 설 쇠면 열넷인데 시집보낼 채비 해야죠.”  p14

“ 혼례식 날 신부는 부정한 것을 보지 않기 위해 눈꺼풀에 꿀을 바르고, 부정한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귀를 솜으로 막는다고 한다. 체통 있는 양반집일수록 더한다고 했다.”  p18

  세상에 태어나 숨 한번 크게 못 쉬니, 여자로 태어난 것이 그저 한이라고 했다

“글쎄, 여자가 좋은 집안에 시집가 평생 좋은 옷에 좋은 음식 먹으며 아들딸 많이 낳고 살면 그만이지, 더 바랄 게 무어 있담.”  p58     

집안에서 분명 사촌언니 다음은 명혜의 혼사 차례인데, 명혜는 그렇게 팔려가고 싶지 않고, 학교를 다니고 싶었다. 그 시대 전형적인 가부장적 남성 송 참판은 딸들을 더 이상 공부시키려 하지 않지만, 동경에서 유학하며 공부하는 신여성을 지켜본 오빠인 명규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서울의 경의 여학교로 진학을 할 수 있게 있었다.

하지만 명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여성이 차별받는 시대이기 이전에, 일본에게 주권을 빼앗긴 나라 잃은 국민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시대이기도 했다.     

“일본 놈들은 을사년 이후 조선 팔도로 파고들고 있단다. 온갖 비열한 책략으로 순박한 조선 백성의 땅을 빼앗고 숨통을 조여대고 있지.”  p82     

동경에서 유학 중인 명규는 나라 잃은 국민으로서, 신식 학문을 배운 조선 학생으로서, 앞장서서 나라와 민족을 되찾기 위해 비밀스럽게 독립운동을 준비하지만, 그런 그역 시도 두 여동생들은 나라와는 상관없는 여자로서의 삶을 살기를 원하고 있다.      

“내가 너희를 여학교까지 보내는 것은 너희들의 삶이 좀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나랏일에 앞장설 사람은 사내 대장 부지 연약한 아녀자가 아니란 말이다.”  p91

“ 너나 명선이는 하고 싶은 공부 하다가 좋은 남편을 만나 행복하게 살면 되는 거다”  p92      

명혜는, 개명(開明)을 지켜보고 최신식 문물을 경험한 명규조차도 남성과 여성의 유별이 당연함을 말하며,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시장에서 도둑으로 오해받는, 여성으로서는 이중 차별을 견뎌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었다.

그러하기에 여성으로서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당시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맞서야 했고, 나라 잃은 백성으로서 나라와 민족을 되찾기 위해 투쟁해야 했다.

‘명혜’라는 이름으로 살고자 하는 이유는 이렇게 명백했고, 이야기 전체에서 불려지는 ‘명혜’라는 이름의 존재가 그래서 강렬한 것이다.     


5.『명혜』 주요 역사적 사건

바로 3.1 운동이다.

천안 아우내장터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수개월에 걸쳐 전국 각지, 한반도와 세계 각지의 한인 밀집 지역 해외로까지 퍼져나가 약 200만 명이 참여했고,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일본 제국의 한반도 강점에 대하여 저항권을 행사한 비폭력 시민 불복종 운동이자 한민족 최대 규모의 독립운동이다. 

서울에서는, 3월 1일 학생 그룹이 민족대표들이 작성한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탑골공원에서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거리로 나가 만세시위운동을 벌였다. 

소설 속에서 경의 여학교에 재학 중이던 명혜와 친구 낙경은 몰래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3.1 운동이 시작되는 파고다 공원에서 시민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주는 등, 당시의 애국청년들로 3.1 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된다.      


6. 명혜』 동화적 요소

작가의 말에 밝혔듯 3.1 운동 당시 탑골공원 팔각정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학생은 경신학교 졸업생 정재용 님이다. 하지만 소설 속에선 급박한 상황 속, 명혜의 오빠인 명규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명규는 팔각정 가운데로 나가 「독립 선언서」를 펼쳐 들었다. 마침내 낭독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명규의 낭랑한 목소리가 종로 거리에 울려 퍼졌다.     -p162     

명규는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군중의 맨 앞에 서서 만세운동을 이끌다가 일본 순사의 총에 맞게 된다. 병원에서 통역 일을 하면서 의사로서의 천직을 느꼈지만, 시대적 상황상 확신 없이 고민만 하고 있던 명혜에게, 오빠의 총상과 그로 인한 죽음은 본인의 길을 찾는데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또한 3.1 운동과 명규의 죽음은 여자로서 의사의 삶을 의심하고 반대하던 명혜의 모에게도, 겉으로는 끝까지 명혜의 유학 공부를 방해하던 송 참판에게도 큰 변화를 주게 된다.       

“ 명혜 보아라...(중략) 네 어머니 곁에 머무르게 하고 싶으나, 네 굳은 뜻과 출중한 실력을 아까워하여 이렇게 유학을 허락하니, 부디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너라 ”  -p211     

마치 명혜의 내적, 외적 갈등이 오빠의 죽음으로 한 번에 해결되는 것 같은 느낌이지만, 동화로써 갈등의 완전 해결 방식으로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7. 서찰을 전하는 아이』 와 명혜』 속에 나타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

본인이 처한 역사적, 시대적 상황 속에서 소년과 소녀가 본인의 신분과 운명을 대하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다. 아버지가 했던 일을 본인의 임무로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소년이었던 반면, 소녀는 본인이 처한 여러 환경에서 벗어나고자 항상 운명에 맞서 싸우는 태도를 보여준다.

『서찰을 전하는 아이』에서 역사는 흘러가는 큰 흐름이다. 흘러가는 역사 속에서 개인은 그 흐름을 바꾸지는 못한다. 따라서 소설의 주인공도 ‘서찰을 전하는 아이’ 일뿐 이름조차 없다. 그저 ‘아이’로 불리며 역사의 흐름 따라 같이 흘러가며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게 하고 굳게 상기시켜 줄 뿐이므로 아이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명혜』 속에 나타난 역사는 책 제목부터가 ‘명혜’ 일 정도로, 시대를 살아가는 개개인의 의지와 삶이 곧 역사임을 시사한다. 소심하지만 꿈 많은 ‘명혜’라는 여학생이 역사의 한 장면인 3.1 운동을 거치고 숱한 사회적 제약을 이겨내어 본인의 뜻대로 유학길에 오른다는 내용은, 그 시대를 사는 개인이 역사를 바꾸고 새로 써 내려갈 수 있는 주체라는 것을 알려 준다. 

운명을 대하는 두 소년 소녀의 모습은 역사와 상관없이 우직하고 감동적이었으며,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좋은 방법으로써 역사 동화나 소설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과, 역사 지식을 넘어서 재미와 감동의 요소를 배치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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