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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윤희 Jul 25. 2024

주접의 맥락

주접의 맥락 6

책<쓸모없는 사물 도감> 삽화   ©방윤희

내 만화의 유일한 독자는 나였다. 매일 아침 낙서를 하고 그걸 보며 혼자 낄낄거렸다. 이거 나 혼자만 보기 아까운걸?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하니 아직 제목이 없는 걸 깨달았다. 제목을 정하기 위해 만화의 내용을 쭉 훑어본 다음 핵심 단어 몇 개를 종이에 적었다. 대충, 주접, 귀여움, 만화.

핵심 단어를 정하면 제목을 쉽게 만들거라 생각했는데 한 달 넘게 마음에 드는 제목이 떠오르질 않았다.


여전히 제목을 고민하던 어느 날, 이런 주접떠는 만화를 왜 그리게 됐는지 맥락이 궁금해졌다. 여기에서 비단이는 또 등장한다. 비단이가 있을 때와 없을 때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떠올려봤다. 비단이가 아플 때야 당연히 건강 상태가 불안정하니 늘 긴장할 수밖에 없었지만, 비단이가 아프기 전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비단이로 인해 긴장이 풀리고 밖에서 참고 있던 헛소리나 헛짓거리를 비단이 앞에서 자연스레 싸질렀다. 주접떠는 게 당연한 시절이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남편도 수시로 주접을 떨었으니까 우리 집은 남모르는 주접이 풍족한 공간이었다. 혹시 주접 보존의 법칙이라도 있는 건 아닐까. 내가 특별히 주접이 많은 인간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타고난 주접은 표출해야 마음이 건강해지는 뭐 그런 시스템말이다.


비단이가 아프면서 자연히 이런 주접은 줄어들었고 떠난 뒤에는 주접떨던 기억마저 슬픔에 묻혀 버렸던 것이다. 그런 주접을 다시 끌어내 준 게 창틀의 새들을 관찰했던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주 서서히 기지개를 켜던 마음속 주접은 낙서를 통해 드러나고, 만화가 되었다. 이걸 깨닫자 비단이가 나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준 존재인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비단이가 여전히 내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따듯해졌다.


만화의 제목은 귀여움과 주접으로 가득한 동네라는 의미로 <귀엽군 주접리>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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