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고는 <고일석 교수의 자기계발교실>의 초고 중에 저자 소개 부분입니다. 자료 정리라는 일차적인 목적으로 올리는 것이라서 문맥 상 어색한 부분이나 매끄럽지 못한 부분, 삭제나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대학에선 컴퓨터와 전자공학을, 대학원에선 경영학과 컴퓨터, 산업공학을, MBA에선 전략경영을 전공하였다. KAIST와 포항공과대학에서 수학하였고 성균관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하였으며 샌디에이고대학에서 경영학 석사를 마쳤다. 또한 연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광주과학기술원에서 포닥 과정을 이수하였다.
서른이 되던 해에 정식으로 대학교수가 된 후, 동국대학교에서 컴퓨터멀티미디어학부 교수 및 창업동아리 지도교수를, 동아대학교에서 경영정보학과 교수 및 창업교육센터 소장을 맡아 소프트웨어 개발, 멀티미디어, 정보보호, 창업경영, 게임 개발, 산업시스템, 기술평가, 경영평가 등을 연구하면서 학생들을 지도하였다.
스물이 되던 해부터 소프트웨어 개발 사업을 시작하였고, 스물둘이 되던 해부터 사업체를 정식으로 등록하고 운영한 벤처 1세대이다.
20여 종의 컴퓨터와 멀티미디어 분야의 전공서적을 출간하여 그중에 8권이 교보문고의 분야별 추천도서에 올랐다. 또한 100여 편의 논문을 국제 및 국내 저명 학술지에 게재하였고, 30여 종의 국가 정책 관련 보고서 및 기업 보고서를 출간하였다.
정보통신부, 과학기술부, 산업자원부, 한국전산원, 전자통신연구소 등의 각종 국책사업과 과제의 평가위원 및 자문위원을 지냈으며 중소기업청의 기술평가 자문위원과 경영평가 자문위원으로 임명되었다. 한국 학자로는 드물게 영국 QS Times의 세계 대학 평가위원으로도 위촉되었다.
30대 중반부터 세계 3대 인명사전인 마르퀴즈 후즈 후(Marquis Who's Who, USA)와 IBC(International Biographical Centre, Cambridge, UK), ABI(American Biographical Institute, USA)에 모두 등재되었고, 삼십대라는 이른 나이 때부터 여러 국내 및 국제 학술단체의 의장 및 부의장, 이사로 임명되어 각종 학술행사를 주관하면서 영국, 중국, 싱가포르, 대만, 폴란드, 일본 등에서 개최된 국제학술행사의 체어(Chair) 및 초청연사로 활동하였다.
국제 수학올림피아드(초중등부)의 한국위원장 및 창의성 영재 교육 국가 프로젝트인 STEAM 프로젝트의 컴퓨터 분과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교육부 산하의 학술단체의 회장과 영국의 캠브리지에 본부를 둔 IBC와 The World Congress of Arts, Sciences and Communications의 부의장을 맡고 있고, 국제학술단체 이사장과 지식문화산업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경영 및 기술 컨설턴트이다.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그림쟁이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으나, 어려운 가정 형편을 핑계 삼아 2학년 1학기의 어느 날에 있었던 미술수업시간의 한 사건을 계기로 그만두었고, 대학에서는 밥벌이가 용이할 것 같았던 컴퓨터와 전자공학을 전공하였다.
대학시절에는 책 뒤적이고 글을 긁적이면서 음악에 빠져 살았다. 음악다방 몇 군데에서 DJ 생활을 하였고, 어쿠스틱 기타와 시퀀스를 연주하며 음악인으로 살아갈 꿈을 꾸기도 하였다.
그래도 먹고사는 문제는 전공에서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에, 그래서 선택한 전공이었기에, 전공과목의 공부에도 매진하였다.
커피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바탕으로, IT벤처 회사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던 1989년부터 3년 간, LP판의 소리 골에서 흐르는 음악과, 벽면 가득한 문학 서적의 퀴퀴함이 커피 내리는 향에 더해진 커피 가게 <여우와 포도>, <늘 푸르른 바람으로>, <B612>와 <창가의 오후>를 직접 디자인하고 손으로 꾸미고 마음과 몸으로 운영하였다.
어떤 이유에서든, 왜 컴퓨터를 인생의 기본적인 밥줄로 선택하였든 간에, 이왕 진학한 대학이니, 경제적으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란 게 ‘무에서 유를 만든다’는 점이 예술적 행위와 닮았기에 ‘A Programming is Art’라는 슬로건 아래, 아직 대학생이라는 파란 꼭지가 몸에서 채 떨어져 나가지 않은 80년대에, <컴퓨터 아카데미>와 <Computing Arts>를 설립하여 IT 벤처의 원년 멤버로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여러 가지 목적으로 대학원에 진학하였고, 이왕 시작한 것이니 제대로 끝을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포항공과대학과 카이스트에서 수학하다가 연세대학교로 돌아가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동국대학교에서 컴퓨터멀티미디어학부의 교수로 지내며 여러 해를 보냈다.
바람이 한 사내의 엉덩이를 들썩거리게 만들었다. 특히 부산의 바닷바람은, 적어도 그 사내에겐 거부하기 어려우리만큼 매력적이었다. 몇 해 동안은 국제시장과 자갈치시장, 보수동 헌책방 골목이 가까운 부산의 동아대학교 경영정보학과의 교수로도 지냈다. 새로 지은 건물의 15층에 자리 잡은 연구실에선 창밖으로 멀리 부산항을 볼 수 있었고 가끔은 갈매기가 연구실 밖 하늘을 날아다니기도 하였다. 그 창가에 앉아 LP판을 돌리며 보수동의 헌책방에서 찾아낸 이 책 저 책을 뒤적거리며 지냈으니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것이라 여겼다.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원래 욕심이 많은 성격이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선 그림쟁이가 되고 싶었고, 학부에선 컴퓨터와 전자공학을 전공하면서도 글쟁이와 딴따라가 되고 싶었다. 대학원에선 컴퓨터와 경영학과 산업공학의 경계선을 오락가락하며 여러 분야를 공부하였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익힌 지식을 삶을 위한 도구로 삼았다면 젊은 날의 사업 경험이 경영학을 공부하도록 이끈 것 같다. 결국 성균관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1년 과정의 전략경영과정을 수료하였고 미국 샌디에이고 대학에서 전략경영으로 MBA를 취득하다. 그 덕분인지 각종 국가기관 및 민간기관의 경영 및 기술 평가 위원을 역임하면서 경영 및 기술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누군가는 그 사내의 삶을 파란만장 그 자체라고 말을 한다. 하지만 막상 그 사내는 그저 바람 부는 대로, 해야 할 것이 있으면 그저 열심히 매달려 하나씩 해결해 가며 살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어느 누군들 자신의 삶이 소설 같지 않을까. 인간은 누구나 몇 편의 소설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얻은 것이 있으면 잃은 것이 있듯이, 얻은 것이 많은 이에게는 잃은 것 또한 많기 마련이다. 하지만 얻은 것이 없는데도 잃기만 한다는 느낌은, 비록 그것이 자신의 주관으로 인한 느낌에 불과할지라 해도,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돌아보면 수많은 전환점을 지나왔고 그때마다 나를 계발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젊어서 열심히 살아온 덕분에 이젠 경제적 여유를 가졌고, 그 여유는 돈과 시간의 걱정 없이 이것저것 하고 싶은 짓을 찾아다녀도 살아가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도록 해주고 있다. 나를 계발하고 누군가와 어떤 것을 평가하는 일을 나름대로는 전문적으로 수행하였기에, 과장이나 허식 없이 자기계발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정답 없는 일에 대해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