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별똥별의 전설

살아남은 자의 운명, 사색으로의 초대

지중해, 별똥별의 전설



1.


유성과 별똥별

유성은 한낱 떠돌이별일 뿐이야

유성은 자신의 마지막을 지켜봐 줄

누군가를 만날 때에야 비로써

별똥별이란 예쁜 이름으로 기억되게 돼

하지만 어쩌지,

별똥별이 빛나는 시간은

너무 짧기만 한 걸

그냥 깜깜해져 버릴 것 같은 어정쩡한 시간의 저녁 무렵, 나른함에 무거워진 어둠이 바닷물 위로 시나브로 내려앉고 있었다. 물빛이 짙어가던 바다의 가마득한 끝자락을 바라보던 그때 즈음이었다. 검게 변해가던 코발트빛 수평선 너머 진청의 하늘 위로 꼬리 긴 별똥별 하나가 지나갔다.


그날 그 바닷가 언덕에서 목격했던 그 사건을 ‘분명 그랬었다’는 사실로만 받아들이자니 왠지 기억이란 것의 진정성을 되짚어 봐야 할 것 같다.


“혹시 꿈의 잔재는 아니었을까.”


별똥별과의 조우는 너무 짧아 마치 부지불식간의 스침과 같았고, 실제와 상상의 경계를 찰나에 지나가 버렸기에 가끔은 그 별똥별의 존재에 대해 살짝 의문이 들곤 한다.

별똥별의 기억


밤마다 각질처럼 벗겨져 내리는

밤하늘의 잔상에서

우주와 지구의 마찰열에

하얗게 그슬린 별똥별의 기억이

여행길의 저녁 하늘에

짧은 만남의 흔적을 새긴다

어느 행성에선가 기다리고 있을

한 사람과의 만남은

별똥별의 꼬리에

무한의 우주를 유영한

긴 여정의 파편을

마지막 빛으로 타오르게 한다

“그 순간 나만이 그 별똥별을 만난 것이었을까.”

궁금증은 어느 사이 어리석은 확신이 된다.

“분명 나만이 그날 그 자리에서, 그 하나의 별똥별을 만난 것이었어.”

그 짧은 만남 후 지구라는 행성의 바닷속으로 스러져버린 그 별똥별은, 분명 나를 만나야만 할 운명을 기다려 그날 그곳으로 찾아온 것이 분명하다.


2.


어느 누군가도 그 작은 별의 속살에 깊은 약속을 새겨 넣었을 것이다. 약속, 지키지 못할 수 있었던 그 치명적인 약속이 칼로 베인 듯 검붉은 상흔을 덧새겨 넣은 후, 더딘 회복의 긴 시간을 유영하며 홀로 억겁의 시간을 날아왔을 것이다. 그래서 떠돌이별은 별똥별이 되어 자신의 상처를 등 뒤를 따르는 밝은 빛으로 태워버리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혹시 타버리지 않는 약속이 남게 된다면 그 대가는 너무도 싸늘할 수 있기에 결국에는 자신마저 태워버리는 것일 수도 있다.


얼마나 오랫동안 암흑 같은 우주의 어둠 속을 방향 없이 헤매었을까. 약속을 지키지 못한 대가로 치러야만 하는 시간과 공간 속의 긴 방랑이 이제 별똥별이 되어 저 바다의 심연으로 사라져 가는 것이라면 별똥별이 되어 스스로를 불사르는 그때에야, 비로써 약속의 유효기간이 만료된 것일까.


유성과 별똥별


유성과 별똥별 중에

어느 것이 미완이고 어느 것이 비완일까

일순간 지나쳐간 꼬리 긴 빛줄기에

진실이란 게 과연

타오르고 있기나 했던 걸까

모호한 답과 변덕스러운 확신은

쪼개어질 수 없는 것에서조차

이분법적 습성을 드러낸다

유성의 운명은 사람의 삶 같다

짧은 만남과 사라짐은 비극이지만

별똥별이 남긴 잔상은 영원이 된다


3.


별똥별이 남긴 이 비극적 위안이 애초부터 예비되었던 것인지 아니면 우연의 결과물인지는 알지 못한다. 미완성된 것이라면 누군가의 미숙함이 빚은 실수일 것이고 아직 덜 완성된 것이라면 의도적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별똥별에게 심어 넣은 지독한 변명일 수 있다.


완성의 결과물이 두려워 마지막 순간에 결국 의도적으로 고개를 돌렸거나, 별똥별의 소멸에서 필연적으로 따르게 될 비극에서 카타르시스를 찾으려 한 것일 수도 있다. 별똥별과 한 인간의 허허한 인연은 대체 언제부터 기약된 것이었을까.


“그 별똥별은 그날 왜 나를 찾아온 것일까.”

“그 바다엔 그 별똥별의 금빛 가루가 바다 요정의 마법가루처럼 잔파도의 살갗 위에 뿌려졌겠지.”

별똥별이 지나가버린 하늘에 먼 별 하나가 낮게 걸린 풍경이 여행자의 저녁 감상을 장식한다. 지중해의 저녁 하늘에서 혼자 반짝이고 있는 저 별이 떠돌이별이건 붙박이별이건 상관할 바는 아니다. 저 별은 그냥 지중해의 저녁별이란 이름으로 기억에 남겨지면 그것만으로 행복해질 것이다.


이제 걸음을 되돌릴 시간이다. 지중해의 바닷속 어딘가에서 깊고 깊은 잠에 빠진 그 별똥별의 미세한 호흡이 물방울로 피어올라 여행자의 밤안개가 된다.


Copyright@Dr.Franz KO

Professor, Dongguk University(for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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