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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사랑,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파리의 사랑,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파리의 거리를 걸어 다니다 보면 길바닥을 뒹구는 나뭇잎 한 장에서도 누군가의 철 지난 얘기가 바스락바스락 들려오는 것만 같다. 카페 천장에 매달려 그네를 타는 듯 어른거리는 등불의 어스레한 궤적이, 동네 어귀 만화방 벽면에 몰래 새겨 넣었던 어린 시절의 낙서 같아 보여서, 자리에서 일어날 수도, 그렇다고 그냥 앉아 있을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에 빠지는 일이 이 파리에선 어색하지 않다.  

파리는, 익숙해진 것들이 자꾸 멀어져 가고 있다는, 그래서 가무러지는 안쓰러운 느낌마저도, 그냥 깨어난 아침의 뻐근함 정도로만 여겨지게 만드는 신비로운 도시이다.


귀를 기울인다. 보도를 또각또각 걸어가고 있는 파리지앵과 파리지앤느의 발바닥 울림이

비밀의 정원에 떨어져 내리는 빗물의 통통거림처럼 방울방울 사위에서 튀어 오르고 있다. 

눈을 감는다. 살아간다는 것과 꿈을 꾼다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철들지 않은 한 사내가 

헤밍웨이와 랭보와, 카뮈와 샤르트르를 좇아 파리의 거리를 종종걸음으로 걸어가고 있다.  

  

예정 없이 찾은 파리는 손에 잡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으라고, 그래야만 살아가는 것이 편해진다고 귓속말을 속삭인다. 주술에 걸린 무지렁이 사내처럼 손을 펼친다. 방금까지도 나의 것이었던 그것들이 야속하리만치 금세 멀어져 간다. 차리리 고개를 돌리기로 한다. 가물가물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가슴 한편을 떼어내는 것과 같아서 주체하기 어려운 허허한 일이기에.


하나가 떠나 가자 다른 하나를 찾아 나선다. 빈 곳을 채우려는 것은 인간적인 본능일 뿐이라고, '빈다'는 천형에 대한 보호 본능일 뿐이라고,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바람에게서라도 무언가를 걸러내려는 듯 팔을 펴서 허공을 휘젓는 사이, 그 하나가 문득 찾아온다.


파리의 거리를 걸으며 알게 된다. '빈 것'이란 비었다는 것이 아니라 '빈 것 같은 느낌'일 뿐이란 것을. '빈 것'이란, 보름달이 환하게 머리 위에 걸린 날, 강 건너편 숲속의 키 낮은 풀잎까지 어둠에 나신을 드러내게되는, 그런 것일 뿐이라는 것을.                 


***   ***


길 위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자유는 '걸음의 자유'와 '생각의 자유'이다. 그 자유가 길 위에 있기에 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이다. 지나온 걸음을 뒤적여 꿰어낸 어떤 것들은 펜의 여정이 된다. 그것은 어지럽게 흐트러진 여행 꾸러미 같을 때가 있고 정갈하게 개어 포갠 손수건 같을 때가 있다.      


아무렴 어떨까. 세상 자체가 완벽한 무대이기에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 또한 어차피 연기인 것을. 그래서 바람 많은 들판에서도 연기를 멈추는 일 따위는 결코 없을 테니.


스스로에게 묻는다.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을까. 진정한 자유인이 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질문을 던지고 답을 뒤적이는 머릿속이 분주해진다. 가슴도 뒤져야 겠다. 분명 쿵쿵 뛰어야만 하지만 그냥 평온할 뿐이니 알 수 없는 일이다. 손바닥을 펴서 따뜻한 차 한잔 움켜 쥔다.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좋겠다. 언젠가 다시 불쑥 고개를 내밀게 되겠지만, 지금은 그냥 버려 두는 것이 좋겠다.

     

그것이 어떤 길이든, 길을 나선다는 것은 모래바람 날리는 황량한 사막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는 것과 같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짓일 수 있다. 거칠고 뜨겁고, 발걸음마저 푹푹 빠져 들어가는 마른 늪 같은 길을 걸어야만 하지만 걸음과 생각이 자유롭다면 어떻게든 걸어갈 수 있기에, 모든 길은 갈만한 길이 된다.        


길을 가다 보면 걸어온 시간만큼이나 영혼이 차오르는 날이 올 것이고 그때에야 글과 삶이 서로를 보듬으며 위안하고 위안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글을 쓰는 것과 살아가는 것은 죽 그은 한 줄 선분의 양 끝에 찍어 놓은 두 개의 점과도 같아서, 글을 쓰며 살아가다 보면 외줄의 이쪽저쪽을 오가며 재주를 부리는 저잣거리 광대로 비치기 십상이기도 하다.    


살아있다는 것은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이 아니라 자유로이 사유하고 그것을 글로 옮기는 지적 행위를 말하는 것이리라.  


파리의 길을 걸으면서는 무엇인가를 사유하지 않는다면, 무엇인가를 긁적이지 않는다면, 누군가가 크게 꾸짖을 것 같다. 시신경에 스며드는 것, 가슴에 걸려 남겨지는 것을 포함하여 여행자를 사유케 하는 파리의 무수한 것들 중에서 어떤 것에게 검은 잉크 물을 입힐지 고민해 봐야겠다. 지나가던 한 사내가 나에게 묻는다. 어디로 가십니까. 언어가 필요 없는 아득함에 빠진다.



파리의 사랑


어느 작은 것 하나조차 

이성의 이해에 기댈 필요 없고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해도

마음껏 사유할 수 있는  

자유의 파리에서   

  

붉은 풍차 바람을 따라 

언덕길을 오르다가

얼굴 빠끔 내민 노천카페에 앉아

조막만 한 하얀 에스프레소 잔에  

진갈색의 추억을 담는다   

  

파리의 사랑은

물랭루주의 장밋빛 공연처럼 

뜨겁게 유혹적이고

몽마르트를 오르는 바람의 붓질처럼 

한가롭지만 싸늘하다  

   

파란 물감을 잔뜩 펴 바른 

파리의 하늘 캔버스에 

저녁 햇살이 덧칠을 올릴 때면

센강을 불어 가는 바람이 디캔딩 한

붉은 노을을 잔에 채운다  

   

샹젤리제 거리의 불빛에 반짝이는

파리의 사랑은 

철 지난 샹송의 향기처럼 지독하다  

   

센강의 물결은 

수면을 쓰다듬는 바람을 그냥 따를 뿐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쌀쌀함이 옷깃을 세우게 만드는 날, 회백색 돌덩이가 별처럼 반짝이는 에뚜와 광장 가까이에서 파리의 삶을 시작한다. 파리의 길은 비슷하긴 하지만 저마다가 새로워서 아무리 걸어 다닌다 해도, 걸어온 길보다는 걸어야 할 길이 더 많이 남겨지게 된다. 


문학과 예술이 마른 나뭇잎처럼 길바닥을 뒹굴고 낭만과 사유가 저잣거리 욕설처럼 풍만하게 흐르는 도시, 바람 많은 날이면 짙은 화장으로 자신을 가리는 도도한 도시, 파리의 거리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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