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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피렌체에서

헤르만 헤세의 피렌체에서    


반쯤 비어 있는, 어쩌면 반쯤 채웠다고도 할 수 있는 늘어진 배낭을 메고 오른 여행길의 민박집 한 구석에서, 먼지 낀 작은 창에 어른거리는 새벽불빛을 더듬던 시간들을 더듬는 사이, 그곳에 두고 온 행복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피렌체의 객실에 내려앉는다.


여행길에 따라나선 헤세의 텍스트가 이방여행자의 환상 속을 부유하다가 ‘그때의 행복을 찾아 나설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기약 없는 잠에 깊이 빠져 있는 본능을 흔들어 깨운다. 겨우 몸을 일으키는 그것에게는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세 서려 있다.


살아간다는 게 안갯속을 걷는 것과도 같아서 단기기억들 대부분은, 마치 원래부터 없었던 것인 양 지워지기 일쑤이다. 잊어야 할 것들이 문득 다가왔다가 까마득하게 멀어져 가고,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은 지우개로 지우듯 삭제해 버렸다고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런 것들 중에 어떤 것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생겨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련하고 먹먹한 눈길로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들이 나타나고 사라져 간 것 또한 그것들 나름의 본능을 따른 것이었다는 것을, 세월의 먼지가 끼어든 후에 알아차리게 된다. 잊는다는 것과 지운다는 것에 있어서조차 부실하기 짝이 없는 것이 인간에게 부여된 정신적 능력이라는 것을, 결국에는 받아들여야만 한다.


길을 걷다가 보면 장기기억 어딘가에서 숨어 지내던 ‘지워져 잊혔다고 여겼던 어떤 것’이 쭈뼛쭈뼛 고개를 내미는 모습을 드물지 않게 만나게 된다. 그런 날에도, 맨발로 황급히 마중 나가거나 손사래 치며 뒷걸음질 쳐야 할 필요는 조금도 없다.


좀 더 가까이로 다가오도록, 어색하지만 그것을 좀 더 제대로 지켜볼 수 있도록, 가만히 두고 지켜보면 될 뿐이다. 그러다가 보면, 잊음과 지움의 과정에서 부실하게 작용했던 정신의 역할이 때론 행복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도 된다.


그것이 무엇이든, 어떤 작용을 일으키든, 처리되지 못한 채 기억과 망각의 경계를 떠도는 기억들은 머리에서만이 아니라 가슴에서도 삭제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살아가는 것이 좀 더 평온해지고 새로운 것이 들어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 ***      


헤르만 헤세(Hermann Karl Hesse, 1877.7.2. - 1962.8.9.)는 스물네 살이 되던 해인 1901년부터 이탈리아 여행을 시작하였다. 헤세의 이탈리아 여행은, 정신적으로는, 몇 해 전부터 이미 시작되었지만 1901년에 이르러 헤세는 육체적인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헤세의 이탈리아 여행은 비단 육체적인 행위에만 얽혀있지 않고 정신적인 것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이탈리아는 헤세가 평생을 두고 걷고 또 걸어 다니면서, 두 눈으로 보고, 두 귀로 듣고, 가슴과 영혼으로 느껴야 하는 동경의 땅이었다.


19세기와 20세기 초에 활동한 작가들에게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는 것은, 그중에서도 특히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것은, ‘전염성 강한 열병’과도 같은 것이었기에 작가 저마다의 여행담을 담은 다양한 여행기들이 헤세가 살아간 당대에 발간되고 있었다.


헤세 또한 당시의 작가들을 달아오르게 했던 그 '여행을 향한   향한 열병'에 시달렸다. 헤세는 여행 자체를 즐겼을 뿐만이 아니라 여행을 즐겁고 행복한 경험으로 승화시킨 시인이자 소설가이다. 헤세는 손에 쥔 메모지에 여행의 경험들을 기록하였다가 자신의 작품에 반영하였다.  


헤세가 남긴 “비록 길지 않은 일정이라 해도 모든 여행마다 크고 작은 여러 가지 보물들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어서 즐겁고 만족스러웠다.”라는 텍스트를 통해 헤세의 여행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또한 ‘표정의 다양성과 밝게 또는 근심스레 무언가 놀랄만한 것을 기다리고, 그중에  낯선 사람과의 소중한 만남과 교류’라는 문장을 통해 '행복한 여행자의 모습'에 대한 헤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헤세의 글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다면 여행길에 오른 글쟁이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으며 무엇을 느껴야 하는 지를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여행길에 오른 글쟁이에게 세밀한 묘사의 사실주의라든가 화려한 기법의 상징주의를 요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여행은 ‘낭만주의자의 행복한 경험’을 만들어 가는, 생각보다 단순한 것일 수 있다.  

    

피렌체의 헤세를 더 이상 떠올리다가는 이야기가 너무 장황해질 것 같다. 헤세의 피렌체에 사유가 머무는 동안, 창밖에는 이미 새벽안개가 걷혔고, 자그마한 물방울이 가두었던 거리의 길모퉁이에서는 각진 모서리가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제 낮의 햇살에게 피렌체를 돌려줘야 할 시간이다.


며칠을 묵어보니 피렌체는 여행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행복의 도시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베키오 다리 위에서, 돌길로 이어진 골목길에서, 피렌체는 행복한 여행자들의 행복의 밀어를 기다리는 신비로운 도시이다. 피렌체에서는 사랑하는 연인의 손을 꼭 잡고,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다가올 사랑을 꿈꾸는 혼자만의 걸음이라 해도, 잿빛의 돌바닥을 거닐면서, 두고 갈 행복을 곳곳에 새겨 넣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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