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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는 것의 용기

버리는 것의 용기

/ Franz Ko


생각해 보면 지금껏 등짝에 짊어지고 온 배낭에는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이 너무 많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언젠간 필요할 것 같은 마음에 주섬주섬 집어 챙겨 둔 그것들이 어느 날인가부터 오히려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몇 번이나 배낭을 풀어내려, 살짝 들여다보며 손 넣어 정리해보려고도 했었지만 그 순간마다 막상 움츠러드는 손바닥으로는 아무것도 끄집어낼 수 없었다.


그나마 그 주저함 속에서도 한 가지 깨침은 얻게 되었으니 그것에서 위안을 찾아본다. 그것은, 채워 넣는 것보단 끄집어 비워내는 것이 더 힘들고, 무언가를 끄집어내어 버리는 것에는 생각보다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단 것이다.


그러니 버림에 대한 용기가 없는 이라면 자신이 지금 매고 있는 배낭을 더 채우려고 욕심내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막상 채우지 말라고 얘기하더라도 사실 그것의 결과는 보장할 수 없을 것 같다. 이 말이 무책임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어떠한 선택에서든 어떤 부분은 옳을 것이고, 어떤 부분은 그르기 마련이다. 막상 부딪히게 될 어떠한 상황에서, 실제로는 그 결과를 제대로 알기 어려우니 맞다와 틀리다는 것의 기준은 판단을 내려야만 하는 그 순간, 오직 스스로의 주관에 관련되게 된다.


가끔씩 망설이며 조심스레 채워 넣은 어떤 것이 언젠가 꼭 필요한 무엇이 되기도 한다. 결국 자신의 상황에 따라 채우는 것이 옳을 수도 있고, 눈길 돌리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밤새 뒤척이든 잠에서 겨우 몸을 일으킨 어느 날 아침, 무언가 잔뜩 무거운 것을 짊어지고 아주 먼 길을 걸어온 것만 같은 어제의 피곤을 돌이켜 본다. 무거움의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 세월을 그저 먹은 것은 아닌 것 같아 다행이라 여긴다.


이제 지금까지 내었던 용기보다 더 큰 용기를 내어 본다. 배낭을 풀어내려 조심스레 방바닥에 쏟아붓는다. 내 앞에 가득 널브러진 것들을 가만히 살펴본다.  


반짝임이 줄긴 하였지만 아직은 윤기가 남아 있는 것, 짙은 회색으로 변질되어 변해 버린 것, 애초 원형조차 알 수 없게 변이 되어 낯설기만 한 것, 둥근 막에 둘러싸여 대체 그 안을 짐작하기 어려운 것들이 마치 나의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먹먹하게 느껴진다.


“젠장 대체 저것들이 다 뭐람.” 조금 더 용기를 내어 빤히 쳐다본다. 하나하나의 그것마다 여기저기, 어디선가 본 듯 익숙한 구석을 찾아볼 수 있다. “그래 이건 이것이고 저건 저것이었구나.” 손끝으로 쓰다듬어보기도 하고 집어 올려 만지작거리기도 해 본다.


멀리서 새로운 아침의 동이 튼다. 이제 버려야 할 것을 고를 때이다. 그래야만 새 날의 새 길을 걷는 걸음이 가벼워질 수 있다. 떨리며 주저하는 손끝에 큰 용기를 실어본다.

“무엇을 버려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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