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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유희: 지식을 들여다보다가

지적 유희: 지식을 들여다보다가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에게 있어 지식이란,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는 하지만, 어떻게든 채워 넣으려 발버둥 치게 만드는 모서리 없는 항아리와 같은 것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지식을 좇는 여정에서 마주하는 울림에서는 괜한 허허함이 느껴지곤 한다. 

그런 날에는 '그냥 걸어 다니는 것 이외에는 딱히 할만한 것을 찾을 없음'에 작은 슬픔에 빠지게 된다. 


지식으로 인해 자유로워질 것이라 믿었었고, 그것이 진정한 자유이며, 지식으로 쌓아 올린 성채에서 자유로운 삶을 꿈꾸었기에, 더 깊고 더 넓은 지식을 좇아 문장과 문장들을 마치 일벌이 꿀을 탐닉하는 것처럼 지낸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무엇이 남은 것인지’를 물어온다면 선뜻 답을 내놓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지식을 영토화함으로서 자유의 정원을 가꿀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가정일 수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그나마 알아차리게 된 것은, 지식은 검은 텍스트들을 기반으로 그것에 얹힌 경험들과 호기심들에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귀로 들은 것, 입으로 음미한 것, 눈으로 본 것, 손으로 만진 것, 피부로 느낀 것,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얻어낸 기쁨과 상처들이 사유를 통해 모양을 갖추고 그것들이 퇴적하여 지식의 토양을 이루게 되며, 이때 사유하는 능력의 차이는 동일한 현상이나 사실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지식을 맺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텍스트가 검다는 것은, 그것에는 정(正)의 기운만큼이나 강렬한 반(反)의 기운이 서려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에 텍스트가 품고 있는 의미는 그것을 읽고 받아들이는 이의 지식에 따라서 정이 되기도 하고 반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결국 텍스트는, 정과 반을 넘어 합(合)을 이룰 수 있는 경지에 이른 사람만이 그것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지식의 탐구의 발원지는 지적 호기심이다.  

그래서 지식을 갈망하는 것은, 호기심을 가득한 두 눈을 똘망거리는 사내아이이거나 계집아이가 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책에 박혀 있는 활자들에서 튕겨져 나온 텍스트들은 ‘정신적 도끼’가 되어 지적 호기심을 내리찍게 된다.  

여기에서 도끼가 정신에 가하는 작용의 정도는 지적 호기심의 차이를 만든다.   

     

***   ***


인간은 스스로의 경험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지적인 존재이다.  

경험은 지각의 인지를 통해 기억에 축적되며 어떤 것들은 ‘스스로의 객관’을 생성해 낸다.

그렇게 형성된 스스로의 객관은 인간의 기억에 새겨져서 삶의 여정을 함께한다.


그렇다면 기억의 객관이란 무엇일까. 

기억은 객관적인 것일까. 

기억은 과연 그때 그곳에서 있었던 일이나 현상이 사진처럼 인화된 것일까. 

그곳에 있었던 것과 있었을 것 같은 것, 있었으면 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객관이란 말인가. 

어쩌면 객관이란, 실체 있는 무엇이 아니라 스스로가 지어낸 지극히 주관적인 것은 아닐까.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가 일그러진 것을 '사실(fact)'이라고 기억하는 것은 태초부터 내재되어 내려온 본능 때문이다.
채색과 왜곡, 망각은 인간의 지적능력이 가진 본능적 속성이다. 

적절히 채색된 기억은 왜곡을 통해 ‘그때 그곳에 있었으면’하는 ‘변형된 객관의 추억’을 형성하고, 망각된 기억은 새로운 기억에 채색을 입혀 ‘재탄생된 객관의 추억’으로 자리 잡게 만든다. 


기억을 채색하는 것은 때와 곳에 따라 가변적으로 작용하는 지적인 행위이다. 

인간의 객관은 기억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탄생과 성장, 소멸의 과정을 밟게 되는 지극히 지적인 작용인 것이다.   

그렇다면 지적행위를 통해 만들어낸 객관들을 진정성이 없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꿈에서든 최면 속에서든, 일상 속에서든, 기억의 객관은 어떻게든 진정성을 유지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래서 그 기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삶에는 진정성이 부여되는 것이다. 


결국에 기억이 주장하고 있는 객관이란, 자신의 경험과 기억에 지적인 작용이 더해져서 형성된 또 다른 실체이거나 현상이다. 

이러한 실체나 현상은 지식의 근간이 된다. 

그래서 지식을 형성하는 것에 능숙한 사람이 객관의 영역을 넓히는 것에도 능숙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Dr. Franz 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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