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뜩, 아주 문뜩 말야
낯설기만 했던 이 거리가
그리 어색하지 않고
언젠가부터 알아온 듯
익숙하게 느껴질 때가 있지
그 순간에 난 말야
그림이 된 거야
풍경화 속을 걷고 있는
그때의 그와 지금의 그가
바로 나였고, 나인 거야
근데 질감 너무 다른 이건 무엇인 걸까
그림 밖의 어딘가에서
나를 보고 있는 그 또는 그녀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피렌체에서는 긴장의 끈이 사르륵 풀렸다가도 금세 신발 끈을 쪼아 매듯 팽팽하게 당겨진다.
르네상스의 흔적들 앞에 서서 ‘뭔가 제대로 한 것 없이 살아온 허술한 삶’에 대한 변명을 찾으려 하지만 결국에는 얼굴만 붉어진다.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과 비었음을 자각한다는 것은 같은 뜻의 다른 말일뿐이다.
공허함을 밀어내려는 몸짓은 뷰파인더 안에 가두는 풍경을 더욱 몽환적으로 만든다.
문득 생각한다.
풍경 밖의 삶은 어떨까.
스스로 뿜어내는 르네상스의 빛과 플로럴한 르네상스의 정원이 만들어내고 있는 풍광은, 어떻게 찍든지 간에, 네모 반듯한 작은 틀 안에 엔틱한 그림엽서를 새겨 넣는다.
시선 가는 데로 셔터를 누르는 동안 나 또한 다른 여행자의 풍경화 속에 담긴다.
피렌체의 거리에선 그 사람이나 나나, 풍경화 속을 머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