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눈이 Jun 14. 2024

인간을 지독히도 싫어하는

나의 그녀

사람이 싫다. 그녀는 사람을 너무나 싫어했다. 미움을 넘어선 혐오. 그게 그녀가 인간에게 갖는 지배적 감정이었다. 공격적이고 이기적이다. 파괴적이며 돌발적이다. 인간은 언제나 그녀를 상처 주었고 눈물 쏟게 만들었다. 

인간은 지극히 악의적이다. 셋만 모여도 왕따를 만들고 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지독히 괴롭힌다. 그리고 항상 그녀는 약한 쪽에 속했다. 재혼 가정이란 이유, 그저 친구 한 명과 더 깊게 친해지고 싶어 속마음을 털어놨단 이유만으로 그녀는 모두에게 외면당했다. 선생조차도 그녀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가족조차 그녀를 돌보지 않았다. 그녀는 철저한 외톨이였다. 

어쩌면 사소한 실수이자, 어린 치기일 뿐이었지만 지독한 악의로 똘똘 뭉친 어린 악마들은 철저히 그녀를 고립시켰고 괴롭혔다. 그저 장난으로 시작된 일은 몇 년간 지속됐다. 그럼에도 그 시절의 그녀는 다시금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했다. 먼저 살갑게 웃고 밝게 말을 걸었다. 반갑게 인사하고 조건 없는 선의도 마음껏 베풀었다. 그래야만 모두가 자신의 곁에 남아주리란 걸, 전과 같은 악몽이 반복되지 않으리란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믿음은 그녀를 저버렸고 또다시 반복됐다. 

사람들은 수군거렸고 그녀를 배척했다. 가식을 떨고 위선적이라며 잔뜩 뒤에서 씹어댔다. 그토록 공들여 쌓아 놓은 관계는 모래성처럼 한 번의 시련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사실이 아니라며 그녀를 변호하러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을 걸어 잠그고 조금 움츠러들 뿐 여전히 인간을 갈구했으며 관계를 쫓았다. 대신 예전보단 조심스러워졌고 먼저 다가가지도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갖게 된 직장에서 그녀는 유독 괴롭힘을 당하는 한 사람을 보게 됐다. 과거의 자신과 겹쳐 보이던 사람. 그녀는 실낱 같던 애정을 끄집어 내 그에게 건넸다. 분명 그녀는 이 마음이 보답받으리란 걸, 아무도 자신을 보살피지 않았지만 자신을 다른단 걸, 그러므로 결과 역시 달라지리란 걸 몸소 증명하려 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그 사람 몫까지의 잘못과 누명이었다. 그녀가 손을 내민 그는 자신을 배척하던 이들에게 달려가 그녀를 희생양으로 삼자며 꼬드겼고 결국 그 사람으로 쏟아지던 악의가 고스란히 그녀에게 옮겨왔다. 그녀가 하지도 않은 말들이 사실인 양 쏟아졌고 어느새 그녀는 모두를 흉본 사람이 돼있었다. 익숙한 시선과 질타, 수군거림. 이미 숱한 경험으로 단련된 그녀는 견딜 수 있었다. 분명 티 내지 않고 아무와 접점을 만들지 않은 채 조용히 살아갈 수 있었는데, 오히려 그쪽에서 그녀를 몰아냈다. 모두가 불편해한다며 그녀가 나가길 바랐고 결국 그녀는 쫓겨났다. 

그렇기에 그녀는 인간은 혐오한다. 모두가 자신을 배신했고 모두가 자신을 상처주었기에 그녀는 인간을 싫어한다. 또한 그렇기에 그녀는 자기 자신도 싫어한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모두에게 미움받는 자신이라 생각한 그녀는 그런 자신이 너무나도 싫다며 엉엉 울어댄다. 그럼 나는 울부짖는 그녀에게 다가가 안은 뒤 토닥인다. 나 또한 인간이기에 내가 뱉는 위로의 말은 아무 위력이 없다는 걸 알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의 등만 쓸어댄다. 지독한 무력감이 몰려오지만 주문처럼 한 가지 생각을 속으로 되뇌며 그녀를 진정시킨다. 

지독히도 인간을 싫어하지만 그만큼 인간을 바란 그녀는 나를 찾아냈고 결국 나와 연인이 되었다. 그토록 인간이 싫지만 그토록 사랑한 나조차도 인간이기에 우리는 이 굴레를 벗어날 길이 없다. 그러니 부디 평안을 찾길. 이 지독한 모순 속에서 자신이 사랑받을만한 존재란 사실을 깨닫길. 

작가의 이전글 사랑이란 단어를 싫어하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