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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닛 워커 Jun 07. 2021

그 길이 우리를 불렀어요

<직장암 4기의 환자가 걸은 치유의 길>

 이른 새벽 미명 한 방의 순례자들이 아직 곤히 자고 있을 때,  조심스레 배낭을 들고 숙소 밖  로비로 나왔다.

 침낭과 옷가지를 배낭 안에 대충 여며 넣고 문 밖으로 나섰다. 깜깜한 하늘에는 이따금 살며시 얼굴을 내 비치는 달빛에  시커먼 먹구름이 보였는데 곧 비라도 내릴 것 같은 날씨다. 인적이 없는 거리에는 따각 따각 돌바닥에 부딪는 남편과 나의 스틱 소리 만이 멀리 퍼져 나갔다.


 우리는 왜 이 길을 걷고 있을까? 건강한 사람도 걷기 어려운 800km의  기나긴 길을 겁 없이 나선 우리 부부. 나보다 조금 앞서 걸어가는 남편의 배낭 멘 어깨가 벌써 조금씩 옆으로 기우는 것처럼 보인다.


 남편은 힘든 수술을 한 지 이제  일 년이 조금 넘어가고 있다. 평소에 술 담배 한 번 않던 건강했던 남편이 일 년 전  건강 검진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직장암 4기라는 것이었다.  의사는 너무 커 버린 암으로 인해 바로 수술을 할 수 없다고  했고 방사선  치료로  암세포를 줄이고 나서야 수술을 시행해야 만 했다.  그리고 인공 장루를 옆구리에  달았다. 


 이후 6개월간의 인공 장루 생활과 8개월간의 항암치료, 그리고 인공 장루를 떼고 복원 수술 후에도 하루 10여 회 이상의 화장실행이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우리 부부는 이런 상황들이 놀라랍다거나 두려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침착하게 대처했다. 

 내가 지금 생각해도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아마도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기도 덕분이었다고 밖에는  생각이 안된다. 


수술 후 이어지는 어려운 항암 치료도 남편은 잘 참아 주었고, 나는 직장에 두 달간의 간병 휴직을 내고 남편과 함께 병원에 다녔다.


 항암 주사를 맞기 위해 병원에 갈 때는 우리는 소풍을 가듯  들뜬 마음이 들었고, 때가 마침 이른 봄이라 돌아올 때는 오월의 지천에 흐드러진 화사한 꽃들을 구경하며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약속했다 '우리 딱 1년 뒤에는 산티아고 길에 서자'고~


 그때는 1년 뒤면  깨끗이 다 나아 훌훌 날 수도 있을 것으로만  생각했다. 왜냐하면 평소에도 워낙 운동도 좋아했고 건강한 생활을 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인터넷으로 파리행 항공 티켓부터 파리에서 생장 가는 기차 티켓 등 기본 예약을  끝냈다.


 다행히 수술과 항암 후기가 좋아 6개월 뒤에는 인공 장루를 떼어 낼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날마다  달력에 하루 화장실 가는 횟수를 적었는데 20회, 15회 사이에서, 시간이 흘러도 그 횟수는  줄어들지를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굳건한 믿음을 가졌는데, 떠나기 한 달 전이 되어도 결국 10회 이하로는 화장실 가는 횟수가 줄어들지를  않았다. 


 트래킹 여행에 대한 말을 들은 의사 선생님도 펄쩍 뛰시며 말렸고, 주변 사람들이 염려를 했으나, 남편과 나는 그 길에 꼭 서고 싶었다. 나는 이미 아들과 한 번  다녀온 길이었고, 남편은 처음이었지만 너무 열망한 그 길이었다. 


사실 그 길이 쉬운 길은 아니다.

대부분  여러 명이 함께 묶게 되는 순례자를 위한 알베르게 숙소는, 환자에게는 절대로 편한 숙소가 아니었다. 하루 20여 킬로 미터를 걷는 길 위에는 마땅한 화장실이 많지 않았다. 마을 길을 걸을 때는 카페라도 이용하지만 외곽 들길을 걸을 때는 적당히 해결해야만 하는 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은 묘한 매력이 있다. 

그 길 위에는 내가 좋아하는 요소가 다 있다. 


들길, 숲길, 간간이 도시길,  옛 중세 성곽 길, 오래된 다리,  새벽녘 별 속에 하늘이 보이는 부엉이 우는 길에서부터  어떤 물감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코발트빛 하늘,  구름 ,  바람 냄새. . .

그리고  이른 새벽 검보라 빛 운무로부터  점차 옅은 보랏빛으로 여명이 걷히고, 아침 햇살이 영롱할 때 길거리 카페에서 달달하고 깊은 향의 따끈한'카페 콘레체'를  크루아상  한 조각과 먹을 때의 그 충만한 행복감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그 길을 걷는다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되리라 나는 굳건히 믿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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