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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닛 워커 Jun 03. 2021

카미노 산티아고 순례길 중 '빌리아 세리오'에서의 단상


 


 이슬비를 몰고 왔던 구름이 사라지고 저녁 해가 옥수수 밭과 목초지를 찬란하게 비추고 있었다.


'저녁 해가 찬란하다?'


도시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말이지만 몸을 한 바퀴 휘 돌려 사방을 바라 보아도 시야를 가리우는 게 없다. 

 넓은 소 잔등 마냥 낮게 드리운 구릉과, 그 앞에 펼쳐진 옥수수 밭, 목초지, 산 구릉 위에는 풍력 발전을  위한 풍차의 바람개비가 몇 개 돌아가고 있었다. 


흰색 페인트 칠을 한 벽에 붉은 지붕을 얹은 듬성듬성 몇 안되는 주택들, 그 앞에 우리가 걸어갈 오솔길이 죽 이어져 있고 길 옆으로는 유칼립투스의 나무들이 쭉쭉 뻗은 남쪽 능선이 있다. 


바로 그 아래에는 끝없는 풀밭이 구릉을 따라 녹색 물감을 뿌린 듯 하고 3~4Km이상 넓게 펼쳐진 지평선이 보였다.


서쪽엔 키 큰 풀들이 바람에 출렁인다.

이제 한 뼘 정도 밖에 남지 않은 저녁 태양 빛을, 좀 전의 비로 인해 생긴 이슬들이 머금어서 찬란한 빛을 반사하며 반짝이는 것이 수천마리의 흰나비가 공중으로 나는 것 같았다.


바로 옆 옥수수 밭에서는 진한 옥수수 익는 향내가 풍겨 왔다. 


 지구의 둥근 구의 1/3 이 이런 땅의 것이라면 지평선과 맞 닿은 2/3의 하늘은 더욱 찬란하다. 


몇 개의 구름 조각들이 산등성이를 휘도는 것을 빼고는 아직도 파란 물 빛같은 하늘 빛이 머리 위를 둥글게 감싸고 있었다. 


 다시 몸을 돌려 사방을 보아도 하늘의 라인과 낮은 구릉의 라인이 맞 붙어 있는데 그 라인을 방해하는 것은 오로지 키 큰 유칼립투스나무 숲이었고 산구릉 위를 떠도는 뭉게 구름들이었다.

그리고 칼날같이 구름 사이사이에서 쏟아져 떨어지는 선.샤.인.


흔히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빌딩이며 잡다한 시야를 방해하는 

인공물이라고는 찾아 보기 힘든 곳이었다.

아! 태초의 에덴동산이 이제 상상이 될 것 같았다. 


 나는 지금 둥근 대지, 아니 지구 위에 서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아무리 사방을 둘러 보아도 지평선이 너무 넓다. 

 가슴이 뻥 뚫린다. 


 이런 넓은 대지의 품은 말 못하는 동물들도 순화시키나보다


 먹던 땅콩을 던지니, 날아가던 새와, 낮잠 자려던 게으른 고양이도 슬금슬금 다가온다.

 길은 사람만을 위한 길이 아니다.

 고삐 없는 소와 말들이 주인도 없이 천천히 지나가고, 동네 앞 마당에서는 양들이 느긋하게 풀을 뜯는다.

 나도 모르게 긴 심호흡이  나왔다.


 우리는 모두 고향을 잃어버린지 오래다.

내가 어린시절 살던 고향은 떠나온지 몇 십년도 안 되어 원래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이 변해 버렸다.


뛰어놀던  낮은 구릉의 동산은 '장미'라는 이름의 아파트들로 가득 채워졌다. 

어디서나 비슷하게 볼 수 있는 아파트의 동산으로 변했다.


그런데 이곳은 1000년, 2000년 전의 모습들이 그대로 곳곳에 있다.

중세의 다리가, 집이, 마을이, 성이 그대로다. 

그 뿐인가, 햇볕도, 구름도, 산도 그대로다.


 역시 할 말을 잃고 말이 없던 아들이


 “엄마, 우리 이제 곧 미래의 세계로 가겠지?” 한다.


 서울이 이 곳보다 7시간 빨라서 하는 말이지만 그 말이 의미가 있는 말이다.


한국의 학교, 학원 스케쥴에 찌든 우리의 아이들을  이 곳에 모두 야생마처럼 풀어 놔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제 한국 가면 이 모든 것이 꿈 속의 일이 될 것 같다.

나는 잃어버린 마음의 고향을 본 것 같아 참으로 기뻤다.

 

 나의 가슴 속에는 오늘 이 곳 빌리아세리오!

 특별한 유적도 없고 명물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자연이 살아있는 곳으로 마음 속에 간직할 것이다.




안녕하세요!

브런치에 이제 처음으로 글을 올리는데 손가락이 떨리네요.~~

먼저 브런치 작가에 신청할 때 보냈던 글로 시작합니다.

저는 3년전 은퇴하고서 수채화를 독학으로  그리기 시작했고 글은 블로그에 조금씩 쓰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제가 세 번 다녀온 산티아고 까미노길 위에서의 단상들을 순서없이 그림과 함께 글로 써내려 가려고 합니다. 

그냥 편안한 수채화와 같은 글을 쓰고 싶습니다.

읽는 모든 분들의 마음 속에 힐링으로 조용히 젖어들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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