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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닛 워커 Jun 15. 2021

삶에회오리바람이몰아칠 치라도

우리는 행복한 순례자입니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 <몬 하르딘편>



오늘은 남편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였다. 조금 가다가 멈추고, 또 조금 걷다가 멈추었다.

나는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집 근처에서 산책을 할 때마다 걸음을 멈추곤 했었는데 변의가 수시로 느껴지는 탓이다. 그럴 때마다 멈춰 서서 괄약근에 힘을 주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도 소용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길가 수풀 속으로 뛰어들어야만 한다. 내게는 필요도 없는 여성용 생리대가 남편은 꼭 필요했다. (7년이 지난 지금도 그것은 남편의 필수품이다. )

이것에 비하면 6개월간 차고 다녔던 장루는 오히려 편리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아니다. 그래도 그건 아니다.'  


배꼽 옆에 구멍을 뚫어놓은 그 자리에 2~3일에 한 번씩 새 장루로 교체하여야만 한다.  구멍의 주변에 의료용 풀을 발라서 인공 장루를 붙여 놓는데, 그 주변 살갗이 벌겋게 부풀고 헐어서 보기에도 아프다. 그 반투명 주머니가 조금씩 차오르면 어디 먼 곳을 외출하기 불편해진다. 그래도 참으로 다행이었던 것은 암이란 녀석이 직장으로부터 8Cm의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평생 장루 신세는 면하게 된 것이다. 


나는 건강했던 남편이 왜 암에 걸렸는지 참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발병 당시( 2014년) 만으로 54세였고 크리스천 가정에서 자란 남편은 담배는 평생 입에 대본 적이 없었고 술도 거의 마실 일이 없었다. 모든 운동을 다 좋아했고 당시에는 배드민턴 동호회에서 거의 선수급으로 활동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직장암 4기'라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남편과 나는 어쨌든 쉽게 인정은 했다. 


남편은 너무나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나도 부정적인 감정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우리 가정에 회오리바람이 몰아쳤지만 좀 견디면 지나갈 듯 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지금도 참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리고 바로 방사선 치료를 하였고, 장의 절제 수술과 항암치료가 연속적으로 이어졌다. 항암은 내가 옆에서 보기에도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3주에 한 번마다 병원에 가면 독한 항암 약물 통을 몸에 매달고 심장으로 통하는 정맥 혈관에 주삿바늘을 연결해 주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이렇게  3일간을 지내야 했다. 약이 몸에 들어가기 시작하면 남편의 얼굴 및 피부빛은 검붉게 변한고 목소리는 이상하게도 허스키하게 변조되었다. 그리고 온몸에서는 힘이 빠지며 입맛이 사라진다고 했다.  손, 발을 만져보면 차갑고 딱딱했고 몸속에서는 마치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 기분이 안 좋다고 하였다.

몬 하르딘에서 봉사자들과 함께 <그림: 플래닛 워커>

남편이 화장실에 다녀오면  독한 화학 약물 냄새가 났다.  

그렇게 3일 동안 약물이 몸속으로 다 들어가고 나면 손바닥과  발바닥에 통증이 왔는데, 발바닥은 땅에 닿으면  화끈대서 걷기를 힘들어했다. 그래서 남편은 그때부터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 이후 이 자전거로 4대 강 종주와 그랜드슬럼을 달성하게 된다)


남편은 이런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도 단 한 번도 힘들다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항암 중에도 주는 밥은 억지로라도 잘 먹었다. 남편이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기에 나는 그래도 꽤 견딜만한가 보다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항암이 다 끝난 뒤에는 이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두 번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고백했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남편 몸이 튼튼해 보여서 새로 도입한 독한 신약물을 남편에게 투입한 것이었는데,  다행히도 남편이 잘 견뎠고 몸에  잘 맞았다는 말을, 주사를 꽂아주는 간호사가 항암의 마지막 회에 말해 주었다.


그렇게 여러 번 변의를 견뎌가며 우리는 오늘의 목적지인 몬 하르딘에 도착하였다. 알베르게는 오래된 건물 같았지만 실내는 정갈하였고 맞아주는 호스피탈레로는 아주 친절하였다. 이곳에서도 네덜란드인 봉사자들이 많이 있었다. 이들은 교회의 한 동아리에서 일주일씩 봉사를 하러 온다고 하였다. 

몬하르딘 알베르게

이들 봉사자들이 제공해 준 저녁을 맛있게 먹고 쉬려고 하는데 밖에서 찬양소리가 들려왔다. 기타 반주와 함께 들려오는 찬양소리에 우리는 밖으로 나가 그들과 함께 찬양을 하였다.


그들과 함께 눈을 감고 찬양하며 비록 오늘이 우리 삶의 끝이라 할 지라도 행복한 마음이 영혼의 깊은 우물에서 샘물처럼 솟아 나왔다.


아! 우리는 행복한 순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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