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령손각시

슬픈 꿈을 먹는 인어

by Keith Henry

[인어 정보]

■일반명: 망령손각시

■일반정보: 망령손각시는 희생물의 슬픔과 후회를 먹고 산다. 그녀는 자장가처럼 평온한 노래로 희생물을 홀린 뒤 희생물이 깊은 잠에 빠지면 파리지옥의 가시처럼 생긴 꼬리로 희생물을 붙잡아 슬픈 기억과 후회를 계속 꾸게 만든다. 희생물은 숨이 끊어질 때까지 영원히 잠에서 깨어날 수 없다.



■[망령손각시]관련설화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는 바닷가, 세차게 달려와 암석과 절벽에 깨지는 높은 파도는 누런 물거품을 만들며 으르렁거렸고 흐린 날씨는 햇빛을 가리고 세상을 우중충한 회색과 탁한 황색의 곤죽으로 만들어버렸다. 갈매기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고 배는 한 척도 출항할 수 없었다. 오히려 항•포구에 묶여있던 배들마저도 성난 날씨가 두려워 ‘터-억, 턱’ 거리며 저들끼리 부딪치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듯 시끄러운 날씨를 초월한 듯 바라보는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우뚝 솟은 돌산의 꼭대기에 서서 하늘과 하나가 된 수평선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파도가 산산이 부서지는 암석지대로 몸을 던졌다. 그녀의 머리는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와 함께 깨졌고 소리는 묻혀버렸다. 노랗던 물거품은 빨갛게 물이 들었고 그녀의 피와 섞인 물거품이 부글부글 끓는 곳에서 한 마리의 인어가 태어났다. 그녀는 인간의 몸이었던 자신의 시체를 안고서 깊은 바닷속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어느 겨울 나는 어떤 사연이 있는 줄 모른 채 그곳을 찾았다. 모래사장 대신 넓게 펼쳐진 기괴 암석과 돌로 된 작은 언덕이 보였다. 나는 천천히 걸어 언덕의 꼭대기로 올랐다. 멀리서 불어오는 찬 바람과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이제는 연락이 닿지 않는 지나간 시절 속의 사람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들은 한때 나의 동료였으며 절친한 친구였고 또 누군가는 연인이기도 했었다. 또한, 인생에 한 번씩 작은 호의와 배려를 베풀었던 이름 모를 이들의 모습도 떠올랐다. 그들은 아무런 친분도, 지속적인 인연도 맺을 수 없이 지나쳤던 타인들이다. 내가 떨어뜨린 물건을 주워 준 사람, 주문하지 음식을 덤으로 주었던 붉은 날개만(灣) 크리스털 식당의 조리사, 어린 시절 내가 손수 만든 엽서를 사주었던 소녀 등. 또한, 누군가의 마음에 서운함을 만들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이렇듯 매 순간의 고맙고 아쉬웠던 순간들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하늘은 슬며시 싸라기눈을 뿌리기 시작했고 미안한 마음과 후회, 슬픔은 턱 끝에 걸린 눈물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떨구어 바라본 곳에 살구색 꼬리를 가진 인어가 보였다. 그녀의 꼬리지느러미는 바다에 잠겨 있었고 그녀는 거친 암석 위에 앉아있었다.


물에 젖은 흑요석을 곱게 간 듯 촉촉한 그녀의 검은 눈망울이 나의 마음을 뚫고 들어온 순간 나는 두 다리의 힘을 잃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펑펑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엉금엉금 기어 벼랑 끝에 다다랐다. 인어는 나의 밑으로 자신의 꼬리를 활짝 펼쳤다. 분명 떨어지면 목숨을 잃을 거리였지만 그 순간 그것은 폭신한 한 송이 꽃처럼 보였다. 추위를 녹이고 나의 슬픔과 후회를 모두 감싸 안아줄 여신의 품처럼 보였다. 어디선가 따사로운 햇살에 잘 익은 신선의 과일의 향이 풍기고 아름다운 허밍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생각했다. ‘삶의 기쁨은 어디에 있는가? 지치고 고되며 반복되는 일상을 우리는 작은 행복 때문에 견뎌내지만, 마침내 병들고 사랑하고 사랑했던 모든 사람에게 작별을 고한 채 죽음을 맞이해야만 한다. 그럴 바에야 저기 저 한 송이 꽃에 안겨, 그녀의 품에 안겨, 여신의 품에 안겨 영원한 평온을 기쁨으로 맞이하리라.’ 그리고 마침내 몸을 던지려던 순간 한 노인이 나의 목깃을 잡아 뒤로 세게 끌어당겼다. 나는 너무나 쉽게 뒤로 넘어갔고 흰 눈구름 가득한 하늘이 보였다. 곧 나를 구한 노인의 얼굴이 보였고 그가 내게 말했다.


“내려가서 차 한잔하지 않겠나?”


노인의 집은 고요했고 열심히 타는 벽난로와 함께 땔감의 향과 온기가 가득했다. 푸근한 인상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은 고개를 살짝 숙여 테가 작고 둥근 안경을 코끝에 걸친 채 차를 내왔다. 나는 감사 인사를 한 뒤 찻잔을 받아 들었고 노인도 자신의 잔을 챙겨 옆에 있는 개인용 소파에 앉았다. 노인은 안경을 고쳐 쓴 뒤 그 인상만큼이나 포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동안 우리는 아무런 말 없이 향이 진한 국화차에 집중했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노인이었다. “자네, 거기서 혹시 인어를 봤나?” 그의 물음에 조금 놀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이 말을 이어갔다. “해마다 많은 사람이 그곳에서 몸을 던지지. 언제부터 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네. 그곳에 서면 참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는데 말이야. 나는 항상 창가에 앉아 벼랑 끝을 지켜봐.” 노인은 부엌 옆에 있는 창을 가리켰다. “그리고 자네처럼 누군가가 뛰어내리려 하면 나는 얼른 가서 끌어내리지. 그러다 알게 된 것이 있어. 바로 자네가 본 인어의 존재. 사람을 슬픔에 홀려 몸을 던지게 만드는 인어. 인어는 투신한 사람을 자신의 꼬리지느러미로 받아 물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지. 오늘은 살았지만 다시는 저 언덕에 오르지 말게나.” 자신의 사연을 마친 노인은 다시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오늘 일은 정말 감사했습니다.” 나는 대답을 마친 뒤 악수를 청하는 노인과 통성명을 한 뒤 그의 집에서 나왔다.


그날 저녁 나는 노인의 경고를 무시한 채 다시 인어가 있던 곳을 찾았다. 그러나 이번에 그녀가 앉아있었던 암석지대로 향했다. 놀랍게도 그곳엔 아직 그녀가 있었다. 나는 인어의 시선을 외면한 채 천천히 다가갔다. 나의 가슴은, 혹시나 그녀가 나를 잽싸게 낚아채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두근거렸다. 한 걸음, 한 걸음, 그녀와의 거리를 가늠하며 고개를 푹 숙인 채 나는 그녀 주변 어느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대화를 시도했다. “사람의 말을 할 줄 아나요?” 잠시 후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도 당신같이 평범한 사람이었어요.” 대답하리라 예상치 못했던 그녀의 화답에 나는 살짝 몸을 떨었다. 나는 질문을 이어나갔다. “왜 이곳에 계신 거죠?” 한동안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우리 사이에는 철썩이는 파도 소리만이 가득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겁먹지 말아요.” 그리고 그녀는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녀는 자신의 두 눈을 감고 나의 양 뺨을 어루만지며 나의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가는 진줏빛을 발하며 촉촉하게 젖어있었고 이내 그녀의 눈물 자국은 진주 가루가 되어 바람에 흩어져갔다. 속이 살짝 비치듯 얇고 하얀 그녀의 피부는 연분홍의 옅은 빛을 내었고 불그스름한 그녀의 두 뺨에서는 복숭아 향이 번졌다. 그리고 곧 그녀의 붉고 작은 입에서 인어의 노래가 흘러나왔고 나는 뿌연 환영을 보게 되었다.


새 하얀 백지 위에 혹은 안갯속에 사랑스러운 연인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은 서로의 눈을 응시하여 숨길 수 없는 기쁨을 수줍은 미소 뒤에 감추려 한다. 그러나 곧 그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은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 변해간다. 그것은 성숙해지고 무르익는 것이 아니라 오해와 애착 속에 갈구하는 사랑이 되어 서로를 아프게 한다. 싸움과 화해를 반복하면서 둘은 지쳐간다. 결국 남자는 이별도 고하지 않은 채 사라져 버렸고 여자는 삶에 대한 모든 흥미를 잃은 채 벼랑 끝으로 몸을 던진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그 남자의 이름을 부른다. 그의 이름.


그녀의 노래가 끝나고 환영이 끝났을 때 나는 인어의 슬픔과 후회, 삶에 대한 회의를 느끼며 눈물조차 흐르지 않았다. 그러나 환영이 끝나갈 무렵 내가 들은 이름은 바로 그 노인의 이름이었다. 그녀는 안식에 들지 못하고 바다 마녀 푸라의 저주를 받아 인어가 되었다. 그리고 그 깊은 슬픔과 후회를 지우기 위해 자신의 슬픔과 후회를 가져갈 희생물이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매번 그녀에게 돌아가는 슬픔과 죄책감이 되었고 그녀는 이 행위를 반복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다 마녀 푸라의 저주이자 마약과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당신이 찾는 그 사람을 다시 만나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을까요?” 나의 물음에 그녀가 대답했다. “잘은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 사람을 다시 만나면 용서하고 또 용서받고 싶어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내가 도와줄 수 있어요.” 그리고 벼랑으로 향했다.


얼마 뒤, 낮에 나를 살려주었던 그 노인이 벼랑 끝에 서 있는 나를 보고 잽싸게 올라왔다. 그리고 그가 다시 한번 나의 목깃을 잡으려는 순간 나는 빠르게 몸을 돌려 그의 멱살을 잡고 그의 뒤로 돌아가 벼랑 밑으로 던졌다. 노인의 짧은 비명은 파도 소리에 묻혔고 벼랑 밑에 있던 인어는 꼬리지느러미로 그를 잡은 채 물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뒤 끓어오르는 물거품과 함께 한 젊은 여인과 그 노인의 시체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