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대형 철물점 Bunnings에서 소시지 시즐 먹기
호주에는 어떤 전통음식이 있어?라고 한다면 선뜻 무엇 하나를 얘기하기가 쉽지 않다. 스테이크? 버거? 미트파이? 많은 문화권의 사람들이 섞여서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에 꽤나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손쉽게 맛볼 수 있는 곳이 호주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런지 호주만의 고유한 음식을 얘기하기 쉽지 않다. 아마 한국 사람들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한식 리스트가 끊임없이 나올 테지만 호주 사람들에게는 조금 고민되는 질문이 되지 않을까 싶다. 호주인 남편에게 호주 음식이 뭐가 있는지 물어보니 가장 먼저 미트파이, 팀탐, 베지마이트가 나왔다. 초콜릿 과자인 팀탐과 짭짜름하고 씁쓸한 맛의 독특한 잼인 베지마이트는 ‘음식’이라고 하기 좀 그렇지만 말이다. ‘치킨 파르미자나’와 ‘파블로바’도 뒤이어 나왔지만 호주를 대표하는 ‘음식’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하지 않나 하는 개인적인 느낌이다. 물론 한식에 길들여져 있는 나에게는 음식을 만드는 방법부터 뭔가 고유한 그 나라만의 방식을 가지고 있어야 그 나라만의 음식이라고 생각이 되는 것도 없지 않아 있다.
호주인 남편 덕분에(?) 호주에도 자주 오가게 되었고 이제는 호주에 정착해서 살기 시작하면서 주변의 친구들한테서 호주와 관련된 질문을 많이 받곤 했다. 호주 여행을 앞두고 있는 친구들에게는 호주에는 뭐가 맛있어?라는 질문을 많이 받게 되는데 그때마다 내가 해주는 말은 호주는 고기 질이 좋아서 스테이크가 맛있고 저렴해라는 말뿐이었다. 이런 내가 호주의 음식으로 소시지 시즐을 리스트에 추가했다면 뭔가 엄청난 음식이 아닐까 기대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남편 덕분에 알게 된 소세지 시즐은 사실 꽤나 단순한 음식이다. 야외 축제나 바베큐에서 손쉽게 먹을 수 있는데, 식빵에 구운 소시지를 끼워서 먹는 음식이다. 조금 더 퀄리티를 높이자면 여기에 캐러멜라이즈 된 구운 양파를 끼워 넣는 것이다. 처음에 소시지 시즐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남편에게 대체 그게 어떻게 음식이냐고 했다. 식빵에 소세지 끼워 넣는 걸 음식이라고 칭할 수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직접 먹어보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물론 맛있어서 그랬다기보다는 다른 이유에서였다.
어느 주말, 남편과 함께 고장 난 후드 필터를 사기 위해 호주의 대형 철물점인 버닝스(Bunnings)로 향했다. 인건비가 비싼 호주에서는 웬만한 것들은 직접 고치거나 만들어 쓴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철물점이 대형마트화 되어 있고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없는 것 빼고 다 살 수 있다는 말이 어울리는 곳이다. 남편은 주말에 버닝스에 가면 소시지 시즐을 파니 이걸 먹어야 한다고 했다. 처음으로 소시지 시즐을 영접하는 기회였다. 버닝스 입구 옆에 조그마한 텐트가 있고, 여기서 열심히 소시지를 굽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소시지 시즐을 주문할 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구운 양파를 뺄지 말지로 매우 간단했다. 바로 겉바속촉으로 잘 구워진 소시지 식빵을 받으면 내가 원하는 소스를 직접 뿌려먹으면 되는데 꽤나 별미였다.
남편이 주말이면 버닝스에서 소시지 시즐을 판다고 했다. 그런데 모든 버닝스 지점에서 매 주말마다 소시지 시즐을 먹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한다. 그 주말에 소시지 시즐을 팔고자 하는 커뮤니티가 있다면 판매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특정 커뮤니티에서 기금을 마련하려는 목적으로 소시지 시즐을 판매하는 것 같았고 매번 다른 커뮤니티가 참석한다고 한다. 만약 그 주말에 소시지 시즐을 판매하려는 커뮤니티가 없다면 소시지 시즐을 못 먹는 것이다. 이런 호주만의 특별한 문화를 접하고 소시지 시즐을 호주만의 고유 음식 리스트에 올렸다. 도대체 어느 나라가 철물점에 가면 특정 음식을 먹을 것이라는 당연한 기대가 있을까? 호주에는 있다. 호주 사람들에게 물어본다면 백이면 백 ‘소시지 시즐’이라는 답변을 받을 것이다.
전통 음식이라고 한다면 음식을 만드는 방법이 독특하고 고유한 것은 당연하겠지만, 음식을 판매하고 향유하는 방식이 고유한 것으로도 그 나라의 전통 음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소 거창하게 말한 것 같은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 음식과 연관된 특별한 문화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전통적인 음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뭔가 그 음식을 재미있게 설명할 수 있는 스토리가 있다면 전통 음식의 반열에 넣어주어도 좋지 않을까 싶다. 이제 친구들이 호주 음식에 대해서 물어본다면, 호주 주말에 철물점에 가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는데 뭔지 알아?라고 얘기해 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