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튀르키예 이스탄불
튀르키예가 터키라는 것을 비행기 티켓을 살 때 뒤늦게 알아차렸다. 항공사 사이트에서 이스탄불이 터키가 아니라 튀르키예라고 나오는데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지 나라 이름이 바뀌었다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2023년 2월 튀르키예에 대지진이 나서 많은 피해가 발생했을 때 튀르키예라는 이름은 뉴스를 통해 많이 들었지만 터키 내에 내가 잘 모르는 작은 도시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튀르키예가 터키였다니, 새삼 비행기 티켓팅을 하면서 내 무지에 놀랐다.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구 터키)는 한국 사람들에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조건적인 호감을 불러일으키지만, 유럽 여행지로 튀르키예를 우선순위로 두는 경우는 많지 않다. 나조차도 한국에서 유럽으로 가는 직항 항공권이 싸다는 이유로 이스탄불을 첫 여정지로 선택했을 뿐,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었던 유럽 여행지는 전혀 아니었다. 튀르키예 대지진 당시 안타까운 마음에 성금을 보내기도 했지만 튀르키예가 터키였다는 것도 비행기 티켓팅을 할 때 알아차렸을 정도로 평소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나라이다. 이처럼 큰 기대 없이 이스탄불에 대해 아무것도 검색해보지 않은 채 여행을 떠났다.
나와 반대로 남편은 이스탄불에 대해 꽤나 기대하고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만난 지인에게서 자신이 가장 좋았던 여행지가 이스탄불이었다는 말을 듣고 기대감이 증폭된 것이다. 나는 혼자서 열심히 이스탄불 여행지와 역사에 대해 검색하는 남편을 바라보면서 이스탄불 여행은 내가 계획을 세워도 되지 않으니 무척 편하겠군 하면서 흡족해했다.
약 12시간의 비행 후 이스탄불에는 저녁 시간에 도착했다. 숙소까지 택시를 타고 가는데 택시 기사님이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하나하나 정독하시면서 고속도로를 운전했다. 어떤 스토리가 흥미로운지 아닌지 기사님이 손가락을 넘기는 속도에 따라 나까지 함께 확인할 수 있었다. 기사님의 두 눈과 한 손이 스마트폰에 고정이 되어 있길래 혹시 이 차가 바로 그 자율주행이 가능한 테슬라인가 살펴봤지만 그 희망마저 사라졌다. 이스탄불에 막 도착하자마자 생존의 위협을 느끼게 하는 택시는 내 속도 모르고 부지런히 나아가고 있었다.
숙소가 있는 탁심 지역에 다다르니 화려한 조명과 인파가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명동이나 홍대같이 사람이 많은 골목에 차를 끌고 오는 사람들을 보면 대체 무슨 정신으로 이런 곳에 차를 가져오냐고 혀를 끌끌 찼는데 지금 내가 바로 그 사람이 되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좁은 골목길, 심지어 닦여져 있는 콘크리트 차도도 아닌 울퉁불퉁한 돌바닥 길로 사람과 함께 택시가 나아가고 있었다. 택시 기사님에게 여기서 내려서 걸어갈 테니 그만 내려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긴 비행에 지쳐 숙소까지 편하게 앉아서 가고 싶었기에 기사님의 힘듦은 모른척하고 그저 얼른 숙소에 다다르길 바랄 뿐이었다.
밤의 이스티클랄 거리는 매우 화려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거리에 빼곡하게 상점이 들어차 있고, 거리 위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전구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담배 연기를 내뿜는 사람들 사이사이를 지나가니 군밤을 파는 작은 노점이 눈에 띄었다. 한국 겨울 고급 길거리 간식인 군밤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얼른 구매를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군밤과 군옥수수는 튀르키예에서는 사시사철 판매하는 흔한 길거리 간식이었다. 입맛도 한국과 비슷하니 과히 형제의 나라라 할만하다고 생각했다. 숙소에 돌아와서 탄맛이 절반인 군밤 중 맛있는 부분만 조금씩 갉아먹고 실망감에 애써 잠을 청했다.
해외여행의 묘미는 낯선 곳이 주는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낯섦을 느끼는 것은 공간의 변화도 있지만 가장 큰 것은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가 들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다음은 바로 ‘시차’라고 생각한다. 이번 여행의 시작도 시차를 제대로 경험하면서 아, 내가 다른 나라에 왔구나 하고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잠이 들고 얼마 지나지 않았건만 새벽 3시부터 계속 잠이 깨더니 평소에는 눈도 뜨지 않았을 새벽 6시부터 잠을 자는 것을 포기하고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아침의 탁심 거리와 이스티클랄 거리는 밤과는 영 딴판이었다. 빼곡하게 들어찼던 사람들이 다 빠져나간 거리는 청소차들이 부지런히 지나가면서 거리를 깨끗하게 만들고 있었다. 호객하는 상인들로 북적였던 이스티클랄 거리는 문닫힌 상점 사이사이로 간간이 이르게 개점 준비를 하는 가게들이 보일 뿐이었다. 다시 이스탄불로 여행을 간다면 아침 8시에 이스티클랄 거리를 걸으며 쾌청한 기분을 다시금 느끼고 싶다. 거리가 잠에서 서서히 깨어나는 것을 바라보는 것만큼 생동감을 느낄 수 있는 경험도 또 없을 것 같다.
밝은 거리를 걸으니 어젯밤에는 보지 못한 이스탄불의 모습들이 속속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먼저 느꼈던 특이한 점은 여기저기에서 보이는 고양이들이었다. 한국의 길고양이와는 수적으로 차원이 다른 이스탄불 고양이들이었다. 너무나 익숙하게 가게 의자에 자리를 잡고 숙면을 취하는 고양이들, 너무나 익숙하게 사람을 따라가서 간식을 얻어먹는 고양이들, 길을 걷다가 눈을 돌리면 그곳에는 어김없이 고양이가 있었다.
한국은 야외에서 음식을 먹으면 참새와 비둘기가 잔반을 처리하러 오는데 튀르키예는 고양이가 사람이 떠나기를 기다렸다가 테이블로 뛰어올라와 허겁지겁 잔반을 처리한다. 여기서는 가게 안으로 길고양이가 들어오는 것이 사람이 들어오는 것 마냥 자연스럽고, 가게 쇼윈도에는 예쁜 구두 옆에 나란히 고양이가 앉아서 등을 긁고 있다. 뽀얗게 먼지가 앉아서 언제 마지막으로 썼을지 알 수 없는 스쿠터 의자에는 사람의 인기척에도 꼼짝 않는 고양이가 새근새근 자고 있다.
이스탄불이 유럽에 있는 도시 중 가장 인구수가 많다는 것까지 알 정도로 철저하게 정보를 검색한 남편이었는데, 이스탄불에 이렇게 고양이가 많다는 것까지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이렇게 검색해서는 알 수 없는, 그 나라에 가서야 만 알 수 있는 이런 독특한 점들을 발견하면 왠지 모를 희열을 느낀다. 여행에 돌아와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해주는 이야기도 바로 이런 것들이다. ‘야, 튀르키예에 고양이가 얼마나 많은지 알아? 하루에 30마리는 거뜬하게 볼 수 있어.’ 이렇게 말이다.
이스탄불은 유럽에서 인구수가 가장 많은 도시라고 한다. 7일간의 이스탄불 여행이 마무리될 때쯤 이런 의문이 들었다. ‘건물, 사람, 고양이 중 가장 수가 많은 건 무엇일까?’ 아직까지 답을 알지는 못했지만 고양이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이스탄불을 갔다 온 사람이라면 이 질문에 대해 답을 생각해 보면서 이스탄불에서의 추억을 되살려보길 바란다. 아직 이스탄불을 가지 않은 사람이라면 한 번 직접 알아보러 떠나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