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튀르키예 이스탄불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하다. 커피를 한 잔 하는데 주변 테이블에서 뿜어대는 담배 연기 때문에 커피를 마시는 건지 담배 연기를 마시는 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이다. 공공장소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한국인데, 이스탄불에서는 금연 구역은 찾아보기 너무 어렵다. 그나마 실내는 금연이지만 그마저도 딱히 지켜지지 않는 곳이 많다. 식당의 실내 식탁에도 재떨이가 놓여 있는 곳들이 많다.
이스탄불에서 재떨이라는 것을 굉장히 오랜만에 보았다. 한국도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흡연이 가능한 곳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 구역만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금연 구역으로 정해져 있었고, 그 외에는 모두 흡연 구역이었다. 그때 당시에는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걷더라도 그걸 보고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이 예민한 사람이 되곤 했다. 식당에도 재떨이가 식탁마다 놓여 있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한국에서 카페에서 흡연을 할 수 있는 구역을 따로 마련하는 것이 필수가 되었다가 이제는 그것마저 사라져서 실내 및 공공장소는 전체 금연이 되었다. 아무리 야외 좌석이 있는 카페라도 카페 테이블에 재떨이가 놓여 있는 것은 이제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는데 이 추억을 이스탄불에서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문득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절의 이스탄불의 모습은 어땠을지 궁금해졌다. 다들 마스크를 쓰고 다녔을 텐데 담배를 피웠을까? 아니면 담배를 위해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녔을까? 한국이야 흡연구역이 정해져 있어서 그 장소에서 마스크를 벗고 담배를 피웠지만, 이스탄불은 온 도시 전체가 흡연구역인데 대체 어떻게 했을지 궁금해졌다.
정말 놀라웠던 점은 담배를 피우는 연령의 범위가 매우 넓었다는 점이다. 특히 굉장히 젊은 나이의 사람도 카페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정말 눈에 많이 보였다. 식당이나 카페에 들어오면서 담뱃갑을 손에 들고 들어오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마치 담뱃갑이 스마트폰 케이스 같았다. 스마트폰과 담배를 한 손에 쥐고 자리에 앉자마자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담배를 피워무는 것이 일상인 것 같았다.
이제는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담배만 파는 담배상점이 골목 곳곳에 있었다. 담배뿐 아니라 독특한 모양의 라이터도 많이 팔고 있었다. 립스틱 모양, 캐릭터 모양, 등 각종 모양의 라이터를 팔고 있었는데 이쯤 되니 담배와 라이터는 이스탄불 사람들에게 기호식품을 넘어 생필품과 같은 존재가 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이스탄불 여행을 하면서 묵었던 숙소는 탁심 지역에 있었는데, 명동 거리와 같은 쇼핑거리인 이스티클랄 거리와 약 2블록 정도만 떨어져 있어서 항상 집에 돌아갈 때면 이 이스티클랄 거리를 지나가야 했다. 남편과 나는 이 이스티클랄 거리를 매우 좋아했다. 길게 뻗은 길의 한가운데에는 이스탄불의 명물인 트램이 가끔씩 다니면서 거리의 매력을 배가시켜 주었다. 거리 위에는 전구와 깃발이 끝없이 매달려 있어서, 낮에는 바람에 일렁이는 깃발이 마치 물결이 이는 것 같았고, 밤에는 반짝이는 전구들이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하지만 이렇게 매력적인 이스티클랄 거리에서 딱 하나 싫어했던 것은 여기저기서 들어오라고 호객하는 가게 주인들도 아니었고, 울퉁불퉁한 돌바닥도 아니었으며, 발길을 계속 멈추게 하는 인파도 아니었다. 바로 담배연기였다. 분명 탁 트인 야외공간이고 결코 좁지 않은 길인데 저녁만 되면 몰려드는 인파와 이들이 뿜어내는 담배 연기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지붕 없는 오픈된 공간인데 저녁만 되면 이스티클랄 거리가 담배 연기로 꽉 차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외국에 나가면 한국보다는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많다고는 많이 들었지만 이스탄불은 조금 심하다 싶었다. 담배 연기를 하루종일 들이마시고 목이 칼칼해진 날, 이건 좀 심하다 싶어서 구글을 켰다. 그리고 ‘튀르키예 흡연율’을 검색했다. 다른 유럽 나라도 이 정도라면 한 달이 넘는 유럽 여행을 버틸 수 없을 것 같아서 튀르키예가 특이한 경우란 것을 확인받고 싶었다.
역시나, 튀르키예는 유럽에서 흡연율이 가장 높았고, 그 원인은 저렴한 담배 가격 때문이라고 한다. 담배 가격이 저렴하니 담배 접근성도 높아져서 비교적 어린 나이에도 담배를 피우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된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튀르키예도 담배 가격을 높이는 것을 고민하고 있지만 사실상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흡연하는 사람의 비율이 큰 나라인데 담배 가격을 인상한다고 하면 국가적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지는 않을까 우려도 된다.
튀르키예의 담배 가격이 저렴해서 담배 피우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힘들다고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리자 주위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비흡연자인 친구들은 흡연구역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고 길거리에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반면 흡연자인 친구는 튀르키예가 담배 가격이 싸다는 소식에 솔깃해했다. 한국에 있다가 미국으로 넘어간 친구인데 미국은 한국보다도 담배 가격이 비싸서 그런지 당장이라도 튀르키예로 넘어올 기세였다.
이스탄불 곳곳에서 마주하는 담배연기는 비흡연자인 내게는 이스탄불의 여행지로써의 매력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크나큰 마이너스 요소였다. 이스탄불은 정말 매력적인 도시지만 담배 때문에 또 오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간은 역시나 망각의 동물이었다. 담배연기의 힘겨움은 어느덧 잊어버리고 이번 유럽여행에서 갔던 6개의 도시 중 이스탄불이 1위를 차지해 버렸다. 하지만 이스탄불의 흡연율이 갑자기 줄어드는 건 바랄 수는 없지만 적어도 금연구역과 흡연구역의 경계가 조금 더 빠르게 뚜렷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