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튀르키예 이스탄불
2만 원이던 음식 가격이 1년도 안되어서 4만 원으로 올랐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이스탄불에서 하도 사기를 당해서 그랬는지 이것도 관광객에게만 따로 가격을 측정한 바가지 사기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슬프게도 인플레이션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국가에 큰 영향을 미쳤고, 튀르키예는 범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자국의 어이없는 통화정책의 콜라보로 인해 증폭된 인플레이션을 정통으로 맞게 된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이스탄불에서는 모든 것들의 가격이 1년 사이에 최소 1.5배는 올랐다고 보면 된다. 구글에서 2022년 메뉴판의 가격을 보고 그에 맞춰서 돈을 들고 가면 낭패를 볼 수 있다. 세상에서 스타벅스가 제일 싸다는 튀르키예인데,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가격도 2022년 20리라 수준에서 2023년에는 40리라 수준이었다. 물론 가격이 올라도 싸기는 하지만, 그 오른 수준이 10퍼센트, 20퍼센트 수준도 아니고 무려 2배가 올랐다는 것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2022년에 튀르키예로 여행을 떠났던 유튜버의 영상을 봤었는데, 5천 원으로 하루에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고 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이스탄불을 여행해 보니 5천 원으로는 한 끼 정도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가격이었다. 이러한 경우가 계속되다 보니 막연하게 ‘이스탄불 물가가 생각보다 비싼 것 같네, 아마 그 유튜버가 좀 저렴한 곳만 잘 찾아다녔나 보다’고 생각했다.
막연하게 이스탄불이 예상했던 것보다 물가가 좀 비싼 정도라고 느끼고 있었는데, 물가가 거의 2배가 뛰었다는 걸 확실히 인지하게 해 준 건 한 레스토랑이었다. 유럽 여행을 계획하면서 포르투갈 친구에게 곧 만나러 갈 수 있다고 연락을 했더니 그 친구가 이스탄불에 사는 튀르키예 친구를 안다면서 원한다면 식당 추천을 받아주겠다고 했다. 맛집 검색하는 걸 귀찮아하는 나로서는 현지인의 추천이 매우 반가웠기에 염치 불구하고 부탁을 했다.
포르투갈 친구가 얻어온 식당 정보 중 현지인이 좀 비싸지만 꼭 가봐야 하는 레스토랑으로 추천해 준 곳은 바로 ‘aheste’라는 곳이었다. 사람들이 구글에 올린 리뷰에서 본 메뉴 가격은 코스요리가 580리라, 한화로 2만 8천 원 정도로 좀 비싸지만 여행에서 한 번은 좋은 레스토랑에서 먹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가기 위한 첫 번째 난관은 예약이었다. 이미 몇 주의 예약이 꽉 차 있었다. 하지만 무조건 예약 취소건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에 계속해서 구글맵을 들락날락거렸다. 드디어 취소된 시간이 생겨서 어렵사리 예약을 성공할 수 있었다.
예약에 성공하자 두 번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구글맵에 올라온 리뷰 사진에 있는 메뉴판을 보는데 가격이 1년 사이에 갑작스럽게 점점 달라지고 있었다. 코스 요리가 1년 전 사진에서는 580리라였다가 불과 5달 전 사진에서는 1400리라로 올라 있는 것이다. 대체 뭐가 맞는지 확인해 보려고 레스토랑 사이트에 들어갔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1800리라라고 쓰여 있는 것이 아닌가! 1년 사이에 580리라에서 1800리라로 가격이 껑충 뛰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실 믿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마음속에서는 내심 사이트에 숫자 오류가 난 게 아닐까 하는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검색왕 남편이 또다시 이스탄불의 물가에 대해서 빠르게 찾아보더니 이렇게 오른 게 맞는 것 같다고 한다. 튀르키예에서 인플레이션과 어이없는 통화정책으로 대부분의 물가가 1년도 안되어서 2배 이상으로 뛰었다는 것이다. 이제 기대를 저버리고 한 사람당 1800리라, 한화로 8만 원이 넘는 돈을 내고 저녁을 먹어야 하는지 심히 고민이 되었다. 이 두 번째 난관은 결국 넘지 못하고 어렵사리 잡은 예약을 취소하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 달이 넘는 유럽여행의 시작점에서 한 끼 밥값으로 둘이 합쳐 20만 원을 소비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이스탄불 고급 레스토랑 예약 취소 사건을 계기로 안 보이던 것이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거의 대부분의 식당들의 가격은 1년 사이에 2배, 심한 곳은 3배 가까이 올랐던 것이다. 구글맵 식당 리뷰에 올라온 메뉴판 사진이 있다면 적어도 2개월 전 최신 메뉴 사진의 가격만 믿고 가고, 6개월 전 이상의 메뉴판 사진은 그 가격에서 대충 곱하기 2를 예상하고 가면 얼추 맞았다. 뭔가 가설을 검증하는 느낌으로 식당들을 다녔는데 그 가설이 하나의 예외도 없이 맞아떨어지는 것에 이상한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이스탄불 공식을 하나 만들어낸 느낌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알지 못했던 그 나라, 그 도시의 숨은 이야기를 찾아내면 왠지 모르게 그 장소와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 든다. 이스탄불은 특히나 남편과 함께 찾아낸 이야기가 많아서 그런지 유럽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도시가 되었다. 내가 찾아낸 이야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지, 또 새로운 이야기는 생기지 않았을지 궁금해하며 다음 방문을 더 고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