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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제인 Sep 12. 2023

아테네 사람들도 경계하는 택시기사

06. 그리스 아테네

우리의 유럽 여행 여정은 이스탄불에서 아테네로 넘어갔다. 아테네는 남편보다도 내가 가고 싶어서 넣었던 여행지였는데 그 이유는 단순했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유물을 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을 뿐 그 이상의 흥미는 없었는데, 여행을 준비하면서 남편이 더 흥분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아테네 여행 오디오 가이드를 다운받더니 지식을 수집하기 시작했는데, 확실히 남편은 무언가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면서 여행의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었다. 이런 남편을 옆에 두면 좋은 점도 많다. 남편이 새롭게 알게 된 정보를 옆에서 내게 조잘조잘 요약해서 알려주는데, 마치 내 개인 여행 가이드 같았다.


이번 유럽 여행은 준비 시간이 너무 부족했었기 때문에 정보를 그날그날 찾아보곤 했었다. 아테네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아테네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 정보를 비행기에서 내려서 찾아보았다. 10kg 가방이 있었기 때문에 편하게 택시를 타고 가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아테네 공항 시내 택시’를 검색해 보았는데 가장 상위에 있는 게시글이 주 그리스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게시한 ‘아테네 공항 내 과도한 택시 요금 주의’였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평균적으로 35유로에서 55유로 정도 택시요금이 나오는데, 심하게 바가지를 씌운다는 내용이었다. 여행 하루이틀도 아니고 이런 수법에는 절대 안 넘어가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는데, 크나큰 오산이었다.


늦은 시간 공항에 도착했기 때문에 얼른 숙소로 가서 컵라면을 먹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택시를 기다리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길게 늘어선 택시 중 한 곳으로 다가갔다. 랜덤으로 골라잡은 택시에는 나이가 굉장히 많은 할아버지 택시기사가 계셨다. 목적지가 적혀있는 핸드폰 화면도 잘 못 보셔서 안경을 벗으시고 화면에 눈을 거의 붙이셔야 확인이 될 정도로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었다. 여기서 경계심이 와르르 무너졌다. 어르신이라서 운전을 무사히 하시려나 하는 불안감만 있었을 뿐 이런 분이 우리에게 사기를 치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했다.


택시 사기의 마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안락한 택시를 즐기고 있는 우리들


할아버지 택시 기사는 아테네 안에서는 눈감고도 운전하실 수 있을 것 같이 굉장히 능숙하게 운전을 하셨다. 내비게이션도 켜지 않고 최단거리를 찾아서 빠르게 숙소까지 운전해 주셨다. 무거운 가방도 트렁크에서 꺼내주셔서 너무 감사했던 것도 잠시, 택시 요금으로 70유로를 요청하신 것이다. 우리는 말도 안 된다고 50유로면 오는 거리인데 어떻게 70유로냐고, 그러면 왜 미터기도 켜지 않고 운전하셨냐고 따졌다. 그랬더니 계속 화면이 꺼져있던 아이패드를 켜시더니 거기에 나와있던 숫자를 보여주셨다. 약 60유로 정도가 아이패드에 찍혀있었고 여기에 톨비를 추가하면 70유로라는 숫자가 나온다고 한다.


사실 아직까지도 그 아이패드 미터기가 제대로 된 것인지 의심이 된다. 살면서 택시 아이패드 미터기는 처음 봤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시간은 늦었고, 우리는 이미 숙소 앞에 택시를 타고 도착했고, 여기서 실랑이하면 우리만 더 지칠 것이고, 바가지 쓴 금액이 우리나라 돈으로 2-3만 원 정도이니 이거로 경찰서를 가자고 하는 것도 너무 소모적인 일인 것이다. 카드도 받지 않으셔서 문화 체험을 했다고 생각하고 현금 70유로를 건넨 뒤 찝찝한 마음으로 숙소에 도착했다.


예쁜 레몬색의 아테네 택시. 사기당한 후 여행하는 동안 택시를 볼 때마다 기분나빠졌다.


아테네 택시 사기가 많아서 택시를 타기 전에 목적지를 말하고 요금을 꼭 물어봤어야 했는데 대체 그걸 왜 안 했는지 후회가 되었다. 심지어 택시 타기 전에 대사관에서 택시 사기가 심하니 꼭 요금을 물어보고 타라는 글도 봤는데 대체 왜 그랬을까… 할아버지 택시 기사였기 때문에 경계심이 확 내려갔던 것 같다. 그리 크지 않은 금액이지만 누군가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것이 굉장히 오랜 시간 찝찝하고 기분 나쁘게 했다. 아테네의 첫인상은 우리에게 ‘택시 사기’였고 이 첫인상 때문에 아테네 여행의 흥미가 급격하게 추락했다.


계속 기분 나빠하는 나에게 남편이 위로의 한 마디를 건넸다. 사기를 당하고 계속 기분 나쁜 상태로 있는다면, 사기로 한 번, 기분 나쁜 거로 두 번 손해를 보는 것이라고, 사기를 당한 건 어쩔 수 없으니 기분 나쁜 걸 얼른 잊어버리고 말이다. 사실 이런 남편의 말보다도 함께 사기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로해 주는 남편 덕분에 기분이 많이 풀어졌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이후로 우리는 아테네에서 절대 택시를 타지 않았다.


아테네 시내에서 버스로 한 시간, 택시로 30분이 걸리는 호수에 갈 때도 무조건 버스를 타고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갔었다. 택시 사기로 기분이 나쁜 것보다 버스에서 서서 가는 불편함이 훨씬 견딜만했다. 구글 지도와 다르게 20분 이상 늦어지는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릴 때도 절대 택시를 타지 않았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앞으로 택시들이 지나가면서 호객행위를 끊임없이 했고, 아기들이 많은 한 가족이 택시 기사에게 아크로폴리스까지 얼마냐고 묻자 택시 기사는 정상 요금의 2배를 얘기하는 것을 옆에서 들었다. 결국 그 가족은 터무니없는 가격에 택시를 그냥 보냈다. 이런 택시 사기가 아테네에서 숨 쉬듯이 일어나는 것 같다.

사기당한 이후 오래 걸리더라도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한 우리들


아테네 사람들도 택시 기사를 싫어한다고 한다. 어떻게든 사기를 치려고 하는 택시 기사들에게 아테네 시민들도 질린 것 같았다. 나 같아도 언제 사기를 당할지 모르는 두려움을 가지고 택시를 타는 것보다는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쪽을 선택할 것 같다. 나도 내 인생에서 아테네에서 택시를 타는 일은 이번 여행에서 한 번이 전부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또 아테네에 가게 된다면 차라리 아테네 올림픽 정신을 살려서 마라톤을 하고 말 것이다.


아테네 버스정류장 / 아테네 메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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