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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40은 불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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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어 May 20. 2022

안 껴줘서 고마워

인간은 누구나 어떤 한 그룹에 속하길 원하고, 보통은 그런 그룹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혼자 있는 것을 즐기는 사람일지라 해도, 다른 사람들의 따돌림을 당해 혼자 있어야만 하는 거라면 혼자 있음이 더 이상 즐거움으로 다가오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그룹에 속하느냐, 혹은 그룹에 속하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인간의 됨됨이가 평가되기도 한다. 내가 친한 사람과 대치하는 사람과 친해진다는 것이 일종의 배신으로 느껴지기도 하며, 나는 비록 그 사람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나 연루된 부정적인 사건이 없었음에도, 내가 이 사람과 친하다는 이유로 무조건 편을 들고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기 시작한다. 


주로 편을 가르고 다른 사람들의 험담을 하며, 마녀사냥을 하는 사람들은 본인들이 함께 하는 시간 동안 깊은 소속감을 느끼며 안전하다고 느낀다. 내가 험담하는 그 사람과 친구가 안 된것을 감사히 여길수도 있다. 반대로 적극 동의는 못하지만 한 두번 욕을 나눈 사이가 되어, 그 사람과 있는 것에 마음이 불편한 그나마 조금 양심적이고 착한 따돌림쟁이들도 있기는 있다. 근본적으로 큰 차이는 없다. 이건 아니라고 자리를 박차고 나올 정도가 아니라면 침묵도 암묵적 동의에 들어가니까.


하지만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은, 본인들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을 욕하는 내 그룹에 있는 이 사람이 더 위험하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는 험담하는 사람이고, 내 옆에서 나의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을 등졌다면, 본인들이 그룹을 짜고 벽을 친만큼, 그들도 일종의 자신들만의 그룹속에 고립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것에 영원히 만족하고 다른 사람은 필요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영원할 줄 알았던 영희 엄마가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갈 수도 있고, 배신하지 않을 줄 알았던 철수 아빠가 내 뒤에서 내가 속상해서 털어놓았던 모든 고민을 내가 없는 곳에서 줄줄이 털어가며 내 욕을 하고 다닐 수도 있다. 내가 했던 그 수많은 말들 중에서 어떤 것이 대체 나에게 비수로 와서 꽂힐지 누구를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이제 그 사람이 아니라 내가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그룹은 절대 영원할 수 없으며, 결국 서로를 비난하며 모래성처럼 흩어지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왕따들이여, 그러니 부디 두려워말라. 그들은 결국 그들만의 성에 갖혀 고립된 채 서로를 향해 칼날을 휘두르나 서로가 처참하게 상처입고 피흘리며 또다른 그룹을 찾아 알고봤더니 그 사람 못쓰겠다면 또 그런 그룹을 만들려 할 것이다. 도리어 그런 그룹에 왕따당해서 끼지 않았음을 감사하라.


모름지기 사람을 대할 때는 그 사람 뒤에 100명의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 옆의 친구들의 말에 쉽게 매료되어 한 사람, 한 사람, 넌 아니야, 너도 아니야 라고 제껴나가며, 여윽시 너 뿐이야, 다른 누구보다 너만은 나에게 안전한 사람이로구나 하고 안심하는 사이 나는 100명, 500명, 천명, 만명의 기회를 잃어버린채, 본인이 고립된 것은 모르고 고립되어 보이는 저사람을 혀를 차며 불쌍하게 여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항상 기억하라. 인간관계에서 흑은 백이요, 백은 흑이니, 귀에 들리는 말도 진실이 아니고, 오직 내가 눈으로 보고 경험한 것만 진실로 취할 것이다. 판단은 나의 몫. 그러나 그 판단은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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