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씽크 4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주영 Nov 02. 2021

지금까지 이런 서바이벌은 없었다, <극한데뷔 야생돌>

  프로듀스 101 시리즈의 대성공 이후, 숱한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생기고 사라졌다. 이러다 전 국민이 데뷔하겠다는 농담까지 나올 정도로 서바이벌 포맷이 서서히 지겨워질 무렵, MBC에서 패러다임을 깨는 아이돌 서바이벌을 내놓았다. 바로 <극한데뷔 야생돌>. 45명의 연습생들이 외딴섬에서 데뷔를 위해 경쟁하는 프로그램이다. <극한데뷔 야생돌>이 다른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차별화되는 부분을 중심으로 리뷰를 남기고자 한다.    



첫째, 공정한 경쟁


  개인적으로 타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면서는 분량을 받지 못하는 '병풍'들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많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는 시청자들의 투표로 연습생들의 운명이 결정되는데, 시청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일단 화면에 잡혀야 한다. 그런데 연습생들이 굉장히 많다 보니, 아무리 열심히 해도 단독 분량을 받는 것은 의지와 노력이 아닌 ‘운’의 영역으로 들어서게 된다. 실력이 좋아도 화면에 거의 나오지 못하면 순위권에 들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운 좋게 분량이 많이 나가면 자연스레 데뷔에 가까워지곤 했다.

  반면 <극한데뷔 야생돌>은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순위를 뒤집을 수 있다. 참가자들은 이를 악물고 100번이 넘는 팔굽혀펴기를 버텨냈고, 물이 차올라도 포기하지 않고 질주했다. 그렇게 각 조에서 1등을 한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이름표를 붙이는 특권이 주어졌고, 영역 전체 1등은 그 혜택으로 두 배의 점수를 받았다. 마지막 테마곡 평가에서는 각 분야 심사위원들의 원픽으로 뽑혀 100점을 획득하고 20위권에서 순식간에 순위권으로 뛰어오른 사람도 있었다.

  이처럼 수많은 반전과 역전을 기회를 주고, 노력에 걸맞은 결과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극한데뷔 야생돌>은 특별하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두 명의 추가 합격자를 뽑을 때 시청자들의 투표나 심사위원의 선택이 아닌 프로그램 출연자들의 선택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었다. 과거 타 방송사의 추가 합격자는 시청자들의 투표로 결정되었고, 각 연습생들의 팬들은 '투표 이벤트'를 펼치고 인증한 사람들에게 커다란 선물을 주면서까지 참여를 유도했다. 그에 반해 <극한데뷔 야생돌>에서는 추가 합격자를 연습생 자체 투표로 결정함으로써 어쩌면 가장 간절하고, 데뷔에 어울리는 사람을 뽑을 수 있는 방법을 채택했다. 옆에서 동료들이 노력하는 과정을 생생히 지켜본 사람들이야말로 누가 올라갈지 평가할 자격이 충분하지 않을까.

추가 합격자를 참가자 투표로 결정하는 모습 (<극한데뷔 야생돌> 4화 캡처)



둘째, 솔직한 경쟁


  <극한데뷔 야생돌>은 전형적인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보다는 해병대 극기 훈련, 생존 버라이어티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사실 기존의 많은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은 시즌을 거듭할수록 재미가 반감되었다. 팀 프로젝트에서 적극적으로 나서거나 다른 출연자들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이면 ‘악마의 편집’을 당해 이기적인 사람으로 그려지기 쉽다는 걸 모든 참가자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출연자들끼리 경쟁을 하면서도 끝까지 서로 눈치를 보고 양보를 하는 모습은 시청자의 속을 답답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극한데뷔 야생돌>에서는 보다 솔직한 경쟁이 가능하다. 애초에 프로그램이 기르고자 하는 그룹은 빈틈없고 철저한 관리가 아닌, 야생에서의 본능적인 매력을 깨움으로써 태어나는 아이돌이기 때문이다. 흙먼지 나는 바닥에서 살아남으려 하는 과정에서, 참가자들은 자기 자신을 감추기보다 솔직하고 거침없는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어 4화에서는 팀별 미션 중간 점수가 나온 후 각 팀에서 한 명씩 다른 팀으로 팀원을 방출해야 했다. 팀 점수가 데뷔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점수가 높은 팀은 누구도 나가기 싫어했다면 점수가 낮은 팀에서는 서로 얼른 탈출하고 싶어 하는 모습이 빚어졌다.

  하지만 그런 경쟁이 과하거나 자극적인 것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눈치 보지 않고 목표를 좇는 분위기는 오히려 참가자들끼리 끈끈한 진심을 나누게 한다. 참가자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질주하는 모습뿐만 아니라 서로 협동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체력 훈련에서 넘어진 참가자를 일으켜 세워준 22호, 춤 평가에서 안무를 익히지 못한 2호를 위해 마지막까지 남아 호흡을 맞춰준 39호가 있었기에 이들의 경쟁은 더욱 빛을 발했다.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경쟁’과 ‘협동’을 이분법적인 관점으로 보여주었다. 하지만 <극한데뷔 야생돌>에서는 출연자들이 자신의 목적에 꾸밈없이 집중하면서도, 같은 꿈을 나누는 동료들 또한 소중히 여기고 있기에 경쟁과 협동은 함께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넘어진 참가자를 일으켜 세우는 모습 (<극한데뷔 야생돌> 2화 캡처)



  이처럼 <극한데뷔 야생돌>은 기존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새로운 감동과 재미를 빚어냈다. 그럼에도 물론 보완할 점은 존재한다. 아이돌은 팬들의 존재로 비로소 빛을 발하며, 시리즈의 대성공은 곧 팬들을 대거로 끌어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본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팬들을 모으기엔 한계가 있었다.

  첫째, 연습생들이 지나치게 빨리 탈락했다. 3회에서 이미 45명의 연습생 중 절반이 훌쩍 넘는 29명의 연습생이 탈락해버렸다. 연습생들의 이름이 하나하나씩 밝혀지고, 몇몇 연습생들이 눈에 익어 ‘투표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탈락해버리는 식이었다. 출연자들의 '코어 팬'이 형성되기엔 호흡이 짧게 느껴졌다.

  <극한데뷔 야생돌>은 타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비해 45명이라는 소규모로 시작을 했기 때문에, 간격을 두고 차근차근 탈락을 시키는 게 좋았을 것 같다. 프로그램이 4회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 연습생들이 16명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생존자들이 데뷔할 확률이 이미 50%에 가까워 긴장감이 다소 떨어졌다. 참가자 한 명 한 명이 눈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프로그램 중후반부에 가서 시작해도 늦지 않았을 것이다. 회를 거듭할수록 진가가 드러나는 참가자들의 급격한 상승 곡선 또한 서바이벌 프로그램 시청의 묘미인 만큼, 하위권의 참여자만 탈락시키고 최대한 많은 연습생들을 중반부까지 출연시키는 게 더 적절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1차 탈락 후 남은 16명의 연습생들 (<극한데뷔 야생돌> 4회 캡처)


  둘째, 편집이 다소 루즈하고 연습 환경이 열악하다. 1,2회에서는 체력 미션을, 3회에서는 실력 미션을 보여주었는데, 이미 찍은 방송분이니 실력 미션과 체력 미션을 섞어서 편집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다. 체력 미션은 3개의 조가, 실력 미션은 4개의 조가 차례로 진행했기 때문에 뒤로 갈수록 수행하는 사람만 달라질 뿐 비슷한 모습이 반복되었다. 시청자들이 프로그램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기보다는 실력, 체력 미션을 교차하는 탄력적인 편집이 필요해 보였다.

  마지막으로 프로그램의 핵심이 되는 ‘야생’이라는 콘셉트는 유지하더라도 최소한의 도구는 설치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마이크도, 동선을 확인할 수 있는 거울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미션을 진행하다 보니 실력이 아주 뛰어난 참가자들도 묻힐 수밖에 없다. 본능에 충실한 경쟁을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이 연습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야생돌’의 ‘야생’이란 이름에 어울리는 모습은 충분히 연출되고 있으니, 멋진 ‘아이돌’로 성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글날은 우리 다같이 ‘가나다같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