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배달의 민족’, ‘빨리빨리의 민족’이라는 표현처럼 우리나라 시청자들의 특징을 한 마디로 나타낸다면 ‘서바이벌의 민족’이지 않을까. <슈퍼스타 K>의 대성공 이후 수많은 아류작들이 쏟아졌고, <프로듀스 101> 시리즈로 연습생 서바이벌의 문이 열렸다. 일부 프로그램의 조작 논란 등으로 주춤한 건 사실이지만 그 열기는 아직 식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아이돌 데뷔 서바이벌’의 포맷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방과후 설렘>은 어떤 방향을 추구해야 할까. 3화까지의 방영분을 보고 난 후 리뷰를 작성하고자 한다.
대부분의 오디션 프로그램은 실력이 빼어나면 A등급에, 뒤처지면 F등급에 배정하는 등 실력으로 멤버들을 가른다. 반면 <방과후 설렘>에서는 1학년 (14세 이하) / 2학년 (15세~16세) / 3학년 (17세~18세) / 4학년 (19세 이상)으로, 나이를 기준으로 팀을 나눈 방식이 눈에 띄었다. 초등학생들이 큰 언니들 사이에 있으면 위축이 되기 쉬운데, 같은 연령대의 친구들이다 보니 퍼포먼스에 대해 더욱 자유로운 의견을 낼 수 있다. 더불어 평가도 학년별로 이루어져 상대적으로 실력이 부족한 1학년 친구들은 언니들과 경쟁할 때보다 성장 가능성에 초점을 둔 관대한 시각에서 평가가 가능하다.
또한 다른 프로그램에 없던 각 학년의 ‘담임선생님’들이란 특이한 제도가 인상적이었다. 원래는 같은 멘토들이 모든 등급에 돌아가며 들어가 피드백을 제공하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방과후 설렘>에서는 담임선생님이 본인이 맡은 학년에만 들어가 각 분야의 멘토이자 심사위원이 된다. 담임선생님은 열댓 명의 학생을 밀착해서 관리할 수 있으므로 그들에게 보다 적절하고 의미 있는 조언을 줄 수 있고, 참가자와 담임선생님 간 라포도 더 견고하게 쌓인다. 이러한 부분에서 <방과후 설렘>에서 특수하게 도입된 담임선생님 제도의 강점이 드러난다.
담임선생님이라는 제도 덕분에 많은 연습생들이 실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1학년 담임선생님인 댄서 아이키는 통통 튀는 밝은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을 지도한다. 각각 2학년· 3학년 담임선생님인 소녀시대 유리, 옥주현은 ‘걸그룹 대선배’로서 노련하고 프로다운 면모를 뽐냈다. 특히 부상 때문에 중도 하차한 조예주 연습생에게 옥주현이 보낸 장문의 위로가 마음을 울렸다. “좋은 기회, 다신 없을 기회. 이런 건 없어. 그렇지 않아 보이는 일들이 성실하게 쌓이는 것이 가장 중요해”라는 따뜻한 조언에는 진심이 꾹꾹 눌러 담겨 있다. 대선배에게 받은 격려를 양분 삼아, 이번 중도 하차가 조예주 학생에게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길 바란다.
담임선생님 제도로 끌어낸 신선함에 비해 약간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익숙한 ‘피디픽 서사’의 등장이었다. 계속해서 나오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시청자들이 공통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말 중 하나는 ‘피디픽’으로, 피디가 Pick한 (뽑은) 참가자라는 뜻이다. 화면에 더 길게, 많이 노출될수록 연습생의 이름이 시청자에게 각인되고, 이는 곧 투표로 이어지므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분량이 생명’이다. 그런데 뚜렷하지 않은 이유로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 많은 분량을 몰아 받는 참가자들에게 ‘피디픽’이라는 말이 쓰인다.
‘피디픽’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은 ‘서사 쌓기’이다. 사실 참가한 연습생 모두가 피나는 노력을 할 테지만, 분량이 많은 참가자들의 행동 하나하나에는 특히 더 깊은 의미가 부여된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처음이라면 ‘피디픽’ 연습생이 고초를 겪으면서도 노력해가는 서사가 재미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시청자들은 이미 오디션 프로그램 시청 경력이 5년째이므로, 프로그램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고초를 겪다가 친구의 도움으로 성장하는 서사는 이제 다소 진부하게 느껴지며, ‘이번에는 000이 피디픽 당첨이네’ 하고 꿰뚫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1회의 김윤서-이지우의 ‘Ice cream’ 무대에서 네티즌들의 이러한 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윤서 연습생 또한 외모가 빼어나고 실력이 출중했지만 방송 분량 대부분은 이지우 연습생이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도입부에서 두 명이 빠르게 번갈아서 부르는 장면에서 ‘지우의 파트에 높게 올라가는 점수’라며 한 명을 콕 집어 칭찬하는 자막은 시청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타 오디션 프로그램의 조작 논란으로 인해, 경쟁의 불공평함에 알레르기 같은 반응을 느끼게 된 시청자들이 많다. 따라서 특정 연습생을 계속해서 밀어주는 흐름은 프로그램에의 유입을 막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어 위험하다. 다양한 참가자들의 모습을 균형 있고 자연스럽게 담아내는 것이 어찌 보면 요즘 시청자들의 수요에 더 알맞을 것이다.
방송사와 소속사들의 유튜브 활용은 갈수록 더 활발해지고 있다. 해외 팬들을 사로잡고 새로운 시청자들을 유입시키는 데는 유튜브 만한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방과후 설렘>의 다양한 콘텐츠들도 빠르게 편집되어 올라가며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1화에서 <방과후 설렘>의 조회 수를 높인 1등 공신이 있다면 김예서, 김서진 연습생의 ‘살짝 설렜어’ 무대였다.
두 연습생은 불안정한 음정과 박자로 심사위원들에게 혹평을 들었고, 실제로 부족한 실력이 시청자들의 눈에도 띄었던 무대기도 했다. 이들의 무대를 보고 아이키는 ‘이게 유튜브에 올라가면 조회 수가 제일 높을 것 같다’라는 예언을 했고, 이는 그대로 적중했다. 방송 편집본뿐만 아니라 무삭제 영상까지 올라가 2021년 12월 13일 기준으로 조회 수는 130만 회를 돌파했고, 이들의 부족한 실력에 대한 댓글 또한 7천 건을 훌쩍 넘는다. 방송사의 입장에서는 프로그램을 알릴 기회였겠지만, 한편으로는 중학교 2·3학년에 불과한 아이들이 조롱거리가 되어 상처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이들의 부족한 실력을 보고도 예선 탈락을 시키지 않은 것이 혹시라도 제작진들의 의도는 아니길 바란다. 댓글 창에서의 필터링 없는 의견 교환이 프로그램의 홍보에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그 효과를 잘 검토해보는 동시에 어린 나이의 출연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는 고려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