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여서 더욱 놀라운 '진짜 이야기'를 찾는 본격 실화 탐사 프로그램”이라는 문구를 내건 MBC의 <실화탐사대>는 2018년 9월,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첫발을 내딛었다. 그 이후로 3년 남짓한 시간 동안, <실화탐사대>는 인천 중학생 추락사, 영아 사망사건 등의 진실을 밝히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PD 수첩’의 명맥을 잇는 MBC의 대표 시사교양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실화 탐사대>를 감상하고 나서, 해당 프로그램만이 지닌 가치를 정리하고 개선하면 좋을 점도 제시하고자 한다.
최근 들어 ‘방구석 코난’이라는 표현이 인터넷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수사기관의 신뢰성을 부정하고 자신만의 가설을 세워 특정인을 범인으로 몰고 가는 네티즌들을 일컫는 표현이다. 많은 시청자들은 숨겨진 미제 사건, 대형 게이트에 분노하면서도 열광하며, 사건의 민낯을 스스로 속속들이 파악하고자 한다.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마치 드라마처럼 몰입해서 챙겨보는 사람들이 불어난다. 많은 이들의 관심은 사건이 잊히지 않도록 도와주기도 하지만, 피해자들이 흥미를 위한 요깃거리로 전락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화탐사대>는 세간의 화제가 되지 않은 소재도 다양하게 다룬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굵직한 ‘사건’들이 중심이 되는 다른 프로그램과 달리, <실화탐사대>는 ‘사람’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제보자가 겪은 이야기를 따라가며 시청자들에게 의미를 전한다. <실화탐사대>에서는 그동안 대형 게이트나 미제사건에 가려졌던, 나와 이웃에게 일어날 수 있는 소소한 이야기를 통해서 사회에 때로는 경종을 울리고, 때로는 울림을 전한다.
특히 동네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단순한 ‘해프닝’으로 지나갈 수 있었던 132회 ‘우리동네 Bee상사태’ 사연이 기억에 남았다. 퇴직한 중년의 부부가 주거지역의 옥상에 양봉장을 설치해 마을 주민들이 벌에 쏘이고, 아이들도 자유롭게 뛰어놀지 못하게 된 사건이었다. 구청에 양봉 관련 조항이 없었기에 공적인 제재도 불가능했다. 답답한 마음에 마을 주민들이 구청에 민원을 단체로 넣고 승리하는 시원한 결말을 생각했던 나는 마지막 장면을 보고 겸연쩍어졌다. 양봉업자가 피해 주민들에게 갓 나온 꿀을 선물하고, 그동안의 행동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를 한 후 시골로 떠났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미워하기가 점점 쉬워지는 사회이다. 사건의 밑바닥까지 파헤쳐 책임이 드러난 사람에게 시원하게 욕을 하고, 가해자는 파국을 맞는 ‘매운 맛’에 우리는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갈등의 잔해들을 하나둘씩 주워 담는 ‘순한 맛’도 필요하다. 앞으로 시민들의 소소한 ‘순한 맛’ 이야기가 <실화탐사대>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최근 유튜브에 “시험 기간 고등학생, 대학생 공감”이라는 제목으로,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척을 하며 <실화탐사대> 영상을 보는 대학생의 영상이 올라왔다. “나도 시험 기간에 실화탐사대 보는데 20분 뚝딱 지나감.”이라는 고등학생의 댓글에 가장 많은 추천이 달렸다. 교양 프로그램을 잘 보지 않는 청소년기의 학생들도 <실화탐사대>에는 어려움 없이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 생각할 수 있는 것들 중 하나로, <실화탐사대>는 하나의 소재를 다루는 데 짧은 시간이 소요된다. 45분의 방송 시간 동안 두 편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타사의 시사 교양 프로그램과 비교해 보아도 20분이란 시간은 단연 눈에 띈다. 짧은 시간 속에서 사건의 내용은 전문가의 견해보다는 제보자와 주변인들의 인터뷰로 알기 쉽게 전달되며, 그로써 일상 속에서 틈틈이 정보를 얻고 머리를 식히기에 부담이 없어진다.
패널들 사이의 대화 또한 프로그램에 흥미를 가지고 몰입하는 것을 돕는다. 한 명의 사회자가 사건을 전하는 타 프로그램과 달리, 세 명의 방송인과 한 명의 변호사가 패널로 등장하여 경직된 분위기를 풀고 사건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 사회자 한 명이서 이야기를 끌어나갈 때는 딱딱한 분위기가 형성되기 싶지만, 패널들끼리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실화탐사대>는 좀 더 자유롭고 생생한 느낌이다. 또래 친구들에게 조건만남을 강요하고 이를 거절하자 폭행한 여중생들의 이야기가 다뤄진 129회를 보면 그러한 분위기가 가지는 장점이 더 눈에 띈다. 프로그램을 혼자 보다 보면 같이 분노하거나 감상을 나눌 사람이 없어 입이 근질근질해지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해자들이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후 노래방에 가자 “아니, 이 상황에 노래가 하고 싶나?!”라고 말하는 등 여과 없이 분노하는 패널들의 현실적인 대화는 프로그램의 몰입을 돕는다. 변명하기 바쁜 가해자의 말에는 “저 말이 이해가 안 됩니다.”라고 딱 잘라 말하는 단호함까지! <실화탐사대>는 적재적소에 의견을 나누어 시청자들도 프로그램에 몰입하도록 돕고 재미와 의미를 넓히고 있다.
이렇듯 <실화 탐사대>는 시민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접근하기 쉬운, 친근한 시사 교양 프로그램’이라는 장점을 갖추었다. 하지만 ‘친근한’ 장점을 가진 만큼, 이야기가 다소 ‘수다스럽게’ 전개되는 문제점을 지녔다. 이에 다음과 같은 개선점을 짚어보았다.
‘여기서 갑자기 다음 인터뷰로 넘어간다고…?’
짧은 시간 안에 이야기를 전달하기 때문일까. 프로그램을 보는 도중 주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지 않아 보이는 인터뷰가 산발적으로 나와 흐름이 끊기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136화 ‘나는 자랑스러운(?) 백수입니다’에서는 실업난 속에서, 청년 백수들이 이전과는 달리 용기를 가지고 앞으로 나와 유튜브 콘텐츠를 찍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많은 인터뷰 위주로 전개가 됐는데, 60대 정도 되는 어르신들을 불러 놓고 영상을 보여주자 “내 아이였으면 호적에서 파 버렸다.”, “부끄러워서 얼굴도 못 들고 다니겠다.”와 같이 대상을 비난하는 대화들이 주를 이루었다. 이렇게 백수 유튜버를 기성세대의 시선으로 한심하게 바라본 후, 마지막은 다시 유튜버의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빛나는 발판이 되었으면 한다.”라는 메시지가 전해지며 끝이 났다.
솔직히 인터뷰를 보는 내내 “왜 백수 유튜버를 기성세대한테 이해시켜야 하지?”란 생각이 들었다. ‘백수 유튜버’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속한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세상과 당당하게 소통하고자 시작한 것이지, 다른 이들에게 평가받고자 한 것이 아닐 것이다. 백수 유튜버들의 소통에 분명히 한계가 있을 테지만, 면담자들은 “자랑이냐”며 유튜버들의 존재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백수’에 대한 고정관념과 사회적인 압력을 고착화시키며 에피소드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모호하게 만드는 인터뷰였다. 같은 취업난을 겪는 대학생 또는 사회 초년생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했다면 보다 영양가 있는 비판이 가능했을 것이다. 관련 문제 인터뷰를 하기 전 ‘어떤 목적을 위한 인터뷰’인지를 명확히 잡은 후 면담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실화 탐사대’는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접하지 못한, 우리 주변의 이야기를 친숙하게 다루는 ‘순한 맛’ 프로그램이다. 앞서 지적된 점이 보완된다면 친근하고 부담 없는 특유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면서도 짜임새 있는 프로그램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