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피에르 엠마뉘엘 리에 글.그림, 한석현 옮김)
기억은 가끔은 사실과는 다를 수는 있지만 기억하고 있는 대상이나 상황은 진실일 가능성이 많다. 피에르 엠마뉘엘 리에의 ‘그날은’이라는 다소 평범한 제목의 그림책을 열었다. 맨 앞장에 ‘할머니에게’라는 헌사와 더불어 아름다운 색채가 책의 면을 가득 메운다.
내용은 할머니 장례식이 어색한 주인공 아이가 창 밖을 보다가 구름속에서 할머니를 발견하고 집을 나와 산으로 간다는 것이다. 아이는 그 곳에서 할머니를 기억할 수 있는 많은 것을 발견한다. 아이가 할머니를 사랑했기에 세상 모든 것에서 그녀를 발견한다.
하얀 눈에서는 보드럽고 새하얀 그녀의 머릿결을 떠올리고, 고운빛깔의 나뭇잎에서는 할머니의 치맛자락을 떠올리며, 나무등걸에서는 할머니가 아파하던 발목을 기억한다. 그러나 할머니의 마지막은 기억하지 못한다. 아마도 슬픈 기억이었기에 잊어버리지 않았을까? 그러나 아이가 성장해서 그 마음을 감당할 때쯤이면 아마도 그녀의 마지막을 떠올릴수도 있을 것이다.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았던 그 순간을 기억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후 할아버지가 아이를 찾아 산에 올라오고 할머니와 함께 셋이서 다 함께 산을 내려와서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서의 애도도 계속되겠지만 아이는 할머니를 그저 '사랑'으로 기억할 것이다.
이 그림책은 아이의 짧은 애도 과정을 잘 그려내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그에 대한 기억을 산에서 충분히 한 아이는 조금은 덜 힘들고 편안해질 것이다. 아마도 세상 모든 것에서 할머니를 느끼고 사랑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자연에 그리고 사람들에서 할머니의 흔적을 발견한 아이는 아마도 따듯하고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누군가와의 이별이후 우리는 그와 관련된 많은 것을 기억한다. 그 기억의 매개물을 만날때마다 우리는 세상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는 기쁨과 감사함을 갖게될 수도 있다. 얼마전에 노년에 병을 얻어서 편찮으신 한분과 이별을 했다. 그 분이 세상을 뜨셨는지 다시 조금은 건강해지셨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분의 이별방식을 잘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극히 그분다운 방법이었다. 마지막 대화때 그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없는 집에 태어나서 너 참 고생많았다.”
놀랐다. 많이.
그 말은 내 일생을 뚫고 내 가슴에 들어와 사랑과 감사의 씨앗이 되었다. 누군가와 이별을 한다는 것은 사랑의 끝맺음이 아닌 다시 살아가는 힘이되며 사랑의 시작이다. 물론 매우 아픈 일이기에 내 인생에 가급적이면 덜 보고 싶다. 그리고 사랑으로 맺을 수 있는 기억에는 거기에는 반드시 진실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이미지는 '그날은' (피에르 엠마뉘엘 리에 글.그림, 한석현 옮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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