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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씽크 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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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희 Nov 03. 2021

강하고 절박하거나, 어리고 예쁘거나

<극한데뷔 야생돌>, <방과후 설렘>이 보여주는 스테레오 타입

 연습생 서바이벌의 폭풍이 이미 한 차례 다녀갔다. 많은 시청자에게 생동감 있는 볼거리를 줌과 동시에 흔히 ‘돌판’이라고 말하는 아이돌 세계에도 커다란 변수로 작용하며 말이다. 경쟁 프로그램이 그려내는 그림에 질리거나 신뢰를 잃은 시청자들도 많은 2021년 하반기, MBC가 만드는 아이돌 연습생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둘이나 등장한다. <극한데뷔 야생돌>과 <방과 후 설렘>은 어떤 모습일지 살펴보았다.


<극한데뷔 야생돌>


#야생의 당위성


 현재까지 국내에 아이돌 데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다수였던 만큼, <극한데뷔 야생돌>만의 콘셉트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야생에서 본능을 깨우다’라는 포스터 속 문구처럼 출연자들은 조금 특별한 훈련을 받는다. 프로그램 초반인 현재는 그들이 마치 자연과 맞서 생존해야만 하는 임무를 받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연습생들이 외딴섬에서 몸무게 만한 돌을 들고, 던지고, 갯벌을 달리고, 통나무를 굴린다. 정작 아이돌 가수로서 필요할 더 우선적인 것들은 배제된 듯 보일 만큼 방송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말이다. 독특한 콘셉트로 이목을 끈 듯은 했으나 이렇게 그려내야 하는 당위성을 찾기는 어려웠다. 아이돌에게 체력은 필요하지만, 그 훈련이 프로그램 내내 메인이 될 필요는 전혀 없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법’, ‘약육강식의 철저한 서열 세계’, ‘먹이사슬’과 같은 말들이 계속해서 등장했다. 남자 아이돌에게서 강력한 신체와 힘, 서열 경쟁을 기대하는 모습은 ‘전형적인 남성성’을 찾는 것으로 보였기에 이 또한 구시대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

 차라리 몸의 건강뿐 아니라 건강한 마인드까지를 갖추는 과정으로 보여주는 방식이라면 어땠을까? 현시대 아이돌 가수에게 필요한 것은 신체와 체력을 극한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마음을 이끌고 특히 팬들과 진실되게 소통할 줄 아는 자세이기 마련이다. 또 컨셉 차별화에 집중한 나머지, 음악과 퍼포먼스처럼 무대를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의미를 잃은 듯해 아쉬웠다.



# 이름 앞에 순위를 놓을 때



 프로그램 속에는 거대한 탑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연습생들은 높은 탑 앞에 모여 미션과 순위를 공개받는다. 올려다보아야 하는 높은 탑은 다음 트레이닝에 영향을 미치는 곳이기도, 중도 포기하는 연습생의 마지막 모습을 보는 곳이기도 하다. 이 탑은 프로그램 전반에서 끊임없이 순위 경쟁임을 상기시키는 장치로 보였다. 그러나 순위가 곧 생존이라는 이 전제는 매우 위험하다.

 연습생들은 프로그램 속에서 가장 먼저 이름을 잃었다. 이름을 지우고 ‘n호’로 부르고 불리는 것은 곧 개인들의 정체성을 지우는 일이었다. “저 정도면 이름 끝 자라도, 초성이라도 얘기해줘야 되는 것 아닙니까?”, “이제 너 이름 있어.”, “드디어 번호가 아닌 이름으로 불릴 수 있구나!”라는 말들이 오고 가는 사이 의문이 들었다.



 서로의 이름, 나이, 과거를 알 수 없이 오로지 실력으로만 공정히 경쟁한다는 의의였으나 그 중심 잣대가 신체, 운동능력인 듯 보여 아쉬웠고, 그러니 과연 이 경쟁이 공정할지는 미지수였다. 앞으로의 회차에서 이 설정 덕에 편견을 지운 공정 경쟁으로 그려질 것인지, 또 과연 이 전제가 모두가 0에서 시작하는 조건이 맞는지 또한 지켜보아야 할 듯했다.

 “꿈을 이루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나왔는데 왜 이렇게 화기애애해요?” 한 트레이너가 방송 안에서 했던 말이다.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지향하며, 독기와 패기만을 기대하는 곳이라 외치는 듯해 마음이 불편했다. 이미 여러 차례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출연자가 상처 받은 일들이 지나갔기에 더욱 그랬다.


 이제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더 절박할수록, 더 ‘생존’ 그 자체처럼 느껴질수록, 시청자들은 이를 온전히 즐길 수 없어졌다. 과도한 경쟁과 줄 세우기를 지양하길 바라며 보게 되어 아쉬운 점이 많았다.




방영 예정의 <방과후 설렘>


# 전문가를 통한 마인드 케어


한 편, MBC에서 11월 방영 예정인 아이돌 선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하나 더 있다.  향후 방영 예정인 <방과 후 설렘>을 선공개 영상을 통해 엿보는 중인데, 긍정적인 방향으로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오은영 박사의 투입이다.

유명 아이돌이 많은 대중 앞에 서서 여러 잣대로 비난을 받는 일이 많았고, 어린 나이에 데뷔해 활동한다는 특성상 건강한 자아를 확립하고 지키기 더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 <방과 후 설렘>에서는 오은영 박사를 연습생들의 엄마라는 이름의 ‘보호자’ 역할로 등장시킨다. 운전을 해 연습생들을 데려다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지켜봐 주며, 안아주기도 한다.


 

 현재까지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음악에 대한 코치나 멘토의 역할은 수없이 등장했으나, 출연자들의 심리를 돌보아야 한다는 점은 지적되지 않아 왔다. 때문에 분야에서 인지도와 전문성 모두를 갖춘 전문가를 통해, 아이돌계의 고질적 문제점인 ‘마인드 케어’를 가시화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의미 있게 느껴진다. 아이들을 잘 돌보는 방향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오은영 박사의 말처럼, 평가 전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인사가 “열심히 해보겠습니다”로 변화하는 데에 일조할 수 있다면 말이다.



# 여전한 고정관념의 연속


그러나 역시 이어지는 아쉬움이 있었다. 아이돌에게 주어지는 성별과 나이의 스테레오 타입을 뚜렷하게 따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극한데뷔 야생돌>과 <방과후 설렘>은 매우 다르다. ‘야생’이라는 당위성과 ‘생존 경쟁’을 지적했음에도, <극한데뷔 야생돌>은 출연자들이 어려운 환경 속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 편 <방과후 설렘>은 또 한 번 학교 속 소녀라는 클리셰의 여자 아이돌 경연 프로그램을 이어가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나오는 두 프로그램 사이 차이가 성 고정관념을 전형적으로 이어가는 듯해 아쉬웠다.



 또한 <방과후 설렘>에서는 여자 아이돌의 나이에 또 한 번 한계를 두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프로그램 속에서는 12세에서 14세, 15-16세, 17-18세, 19세 이상으로 1학년에서부터 4학년까지를 나이로 나눈다. 직접적으로 15-16세를 ‘데뷔 적령기’라고 언급한 점에서 의문을 느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아이돌,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는 것에서 생기는 문제가 바로 ‘마인드 케어’였다. 이를 고려하며 껴안는 듯하면서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설정으로 느껴졌다. 어떤 나이의, 어떤 모습의 사람들만 가능하다는 고정관념을 뒤집었다면 어땠을까 싶어 아쉽다.




 두 프로그램의 상반된 전형성을 지적함과 동시에, <방과후 설렘>에서는 이에 대한 변화의 물꼬를 찾기도 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더 이상 ‘진짜 생존’을 다루지도, 뻔하지도, 상처로 남지도 않기 위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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