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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민 Nov 02. 2021

이제 멈춰야 할 야생과 생존의 은유 '극한데뷔 야생돌'

MBC <극한데뷔 야생돌> 비평 콘텐츠

 MBC의 올해 하반기 화제작이었던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극한데뷔 야생돌>이 9월 17일 방송의 시작을 알렸다. 방영 전부터 “철저한 관리와 판에 박힌 정형화된 시스템 속에서 만들어지는” 기존의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과의 차별성을 강조해온 방송은, 아이돌 연습생들을 한 마리의 야생 동물로, 연예계를 약육강식의 세계로 비유하여 누가 사자, 즉 야생의 최강자가 될지를 다루는 ‘생존 경쟁’을 보여주었다. 이에 1회의 시작부터 연습생들은 벌판을 뛰고 또 뛰었으며 가혹한 체력 훈련에 참여했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은 방영을 거듭할수록 ‘아이돌’이라는 직업에의 연관성과 프로그램의 당위에 의문이 들도록 했다. 방송이 앞세운 차별성은 강점이기보다 취약점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야생 + 생존 = 아이돌?

 군기를 표방하는 폐쇄적인 가혹 훈련 시스템을, 젊은 세대 특유의 자유롭고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는 아이돌 분야에 적용한 것에 문제를 느꼈다. 데뷔를 위해 어린 나이에 인생을 바치는 연습생들에게 연예계라는 공간은 ‘야생’과 ‘생존’이라 비유되기에 마땅할 만큼 절박하고 힘든 현실이긴 하나, 그것이 단순 은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를 소재로 직접적인 방송 포맷을 구축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소위 군대식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인기를 끌었던 타 방송들의 영향인지, 이 프로그램은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에 그런 혹독한 체력 훈련을 그저 그대로 적용한 듯 보였다. 보컬과 댄스 등의 아이돌과 직결되는 능력치를 보여주는 일은 그것에 가려져 곁들일 뿐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을 자아냈다.

 무근하게 진행되는 체력 훈련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패널들의 입과 자막을 통해 정신력과 체력을 기르기 위함이라는, 이의 목적이 자주 언급된다. 하지만 체력 평가가 힘에 부치는 연습생들의 모습, 특히 그 과정에서 부상을 겪고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한 채 중도로 포기할 수밖에 없던 연습생을 보면서 그 목적은 점차 흐릿해진다.

 <극한데뷔 야생돌>에는 특이한 규칙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서로의 이름, 나이를 모른 채 과거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또한 위험하다. 야생의 경쟁을 강조하면서 자연스레 연대는 무너지기 마련인데, 이러한 규칙으로 오랫동안 오디션 프로그램의 문제로 지적되었던 ‘경쟁의 과열’을 필터링 없이 시청자에게 전달한다. 이는 1회에서 한 연습생이 자신보다 달리기를 앞서는 파마머리를 한 연습생을 ‘짜파게티’라고 지칭하는 등 불쾌감을 조성할 수 있는 발언의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이것이 더욱 극대화되는 것은 연습생들이 자신의 이름을 밝히기 위해 특정 영역에서 1등을 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흔히 오디션 프로그램은 ‘서사 전쟁’이라고 불린다. 무대 위의 매력만큼이나 연습생들은 대중에게 자신을 각인시킬 만한 서사의 전달이 중요한데, 그것의 부재는 연습생 개개인에게는 기회의 축소로 이어진다. 이름과 과거가 공개된 연습생들의 개인 인터뷰를 통해서 연습생들의 서사가 드러나긴 하지만, 이것을 어필할 시간이 거의 없다시피 부족한 것은 방송에 한계가 될 수밖에 없다.


경쟁이 아닌, 연대와 존중이 필요할 때

 일차적 가혹 훈련이 끝이 나고, 2회 중반부가 지나서야 연습생들은 보컬/랩/댄스/비주얼 평가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마저도 야생 한가운데에서 그리고 방송용 마이크만을 이용하여 반주 음악 없이 이루어지지만, 연습생들은 현재 활동하고 있는 아이돌만큼 매력적이고 각자 능력도 출중하다. 이에 심사 및 랩 지도를 맡은 래퍼 ‘타이거 JK 분’과 ‘비지 분’의 심사가 인상적이었다. 이들은 연습생들의 래핑이 미숙하더라도 목소리와 순발력이 좋다거나, 다른 분야에 두각을 보일 수 있을 것 같다는 등 각자의 장점을 적확하게 찾아 전한다. 연습생들의 랩이 끝날 때 비지 심사위원은 ‘감사합니다, 멋진 시간.’이라며 훈훈한 멘트를 남기기도 한다.

 또 랜덤 플레이 댄스에서 자신의 춤이 아름답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연습생에게, 댄스 영역 심사를 맡은 댄서 ‘리아킴 분’은 그의 자신감에 좋은 웃음으로 화답한다. 단체 곡 댄스 미션을 쉽사리 통과하지 못하는 한 연습생을 위해, 먼저 통과한 연습생이 같이 춤을 추는 모습 또한 연대의 감동을 전한다.

 이렇게 연습생들을 하나의 개인, 아티스트로서 인정해주거나 그들 서로 상부상조하는 행위는 무해하고 편안한 분위기로 프로그램의 반전을 이끌었다. 소위 ‘야생미’라고 부르는 것처럼 야성적인 매력을 가진 남성을 발굴하고 특정한 성별 관념을 규정지으려 하거나, 자극성을 위한 야생과 생존을 강조하는 일은 이제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연습생끼리의 ‘연대’와 세 심사위원이 보여준 ‘존중’의 태도가 국내 오디션 프로그램이 밟아야 할 다음의 행보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이돌 연습생들은 정신력과 체력을 길러줘야 하는 미완성의 야생 속 피실험자가 아니라, 미숙하더라도 한 명의 아티스트 혹은 그 꿈을 이루는 과정의 개인이니 말이다.     


철저한 관리와 판에 박힌 정형화된 시스템 속에서 만들어지는 아이돌. 하지만 여기, 자신의 본능적인 매력을 깨워 야생에서 태어나는 아이돌이 있다! '정글보다 험난한 연예계에서 사자처럼 강하게 살아남아라!' 야생에서 펼쳐지는, 치열한 아이돌 생존 오디션!


 <극한데뷔 야생돌> 공식 홈페이지에 명시된 프로그램 소개이다. 정형화된 시스템 속에서 마치 만들어지는 듯한 아이돌 분야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좋았으나, 마치 문제를 문제로 덮는 듯한 착오의 선택에 프로그램을 기대하고 응원했던 시청자로서 크게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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