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고란의 소영배’라는 별명이나, 유튜브 ‘십란한 밤’을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것 같다. 고영배는 2010년 데뷔한 밴드 소란의 보컬이다. 동시에 ‘가수였어?’라는 말을 들을 정도의 입담을 가진 ‘방송쟁이(?)’이기도 하다. 그가 10cm 권정열과 유튜브 채널을 열기도 이전, 재밌는 사람으로 유명해진 곳은 바로 라디오이다. 그것도 MBC 라디오이다!
2013년부터 타 방송사 라디오 게스트로 출연하였으나, 2014년 2월부터 MBC FM4U의 <푸른밤 종현입니다>의 요일 고정 게스트로 발탁되며 그의 입담이 점점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고영배는 커피소년과 함께 2017년까지 3년 이상 요일 게스트로 역할을 했다. 당시 <푸른밤>은 자정 12시부터 새벽 2시까지 진행되는 프로그램이었다. 첫 청취 때에는 흔히 ‘새벽 감성’이라고 말하는 잔잔하고 센치한 감성으로 진행되기만을 예상했으나, 화요일만 되면 세 사람의 수다와 드립으로 오디오가 가득 찼다.
심야 라디오임에도 극강의 텐션을 보여주었던 <끝장토론>, <더라디오> 등 코너들은 청취자들에게 사랑받으며 3년의 시간 동안 오래 이어졌다. 그 안에서 고영배는 DJ만큼이나 자연스럽게 상황을 이끌어가며 역할을 했다. DJ인 종현이 스스로의 새 앨범에 대해서는 소개하기 부끄러워할 때 샤이니의 팬 역할을 자처하며 DJ 몫의 홍보를 센스 있게 챙기기도, DJ가 자리를 비웠을 때에 안정적으로 코너의 색깔을 지켜주기도 했다. 현재 고영배의 유튜브 채널 이름이자 가장 유명한 별명인 ‘고란의 소영배’가 여기서 처음 등장했기도 하다. (청취자와 소통하며 N행시 작품을 받는 <영춘문예>라는 코너에서 ‘쟈이니의 송현’, ‘서피코년’이라는 별명과 함께였다.) 프로그램에서는 세 사람의 케미스트리와 더불어 고영배의 부드러운 유머가 유독 돋보였다.
그는 푸른밤에서 역량(?)을 보여준 후, 계속해서 환영받는 라디오 게스트로 활약했다. KBS 2FM의 <볼륨을 높여요>에서 또한 DJ가 변화하는 동안 3년 이상 게스트로 고정되어 있기도 했으며, 앞서 언급했던 캐스퍼 라디오 <권정열 고영배의 십란한 밤>을 2017년부터 진행 중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방송사에서 DJ로 데뷔한 것은 2021년 하반기인 지금 처음이다. 말 그대로 ‘드디어’ DJ가 된 그는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을까?
‘이 방송은 아티스트에 관한 다양한 스포가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프로그램의 시작 문장이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그의 화려한 입담만큼 ‘스포쟁이’는 고영배의 특성인데, <스포왕 고영배>는 이를 잘 살린 프로그램명이다. 프로그램명을 따라 첫 방영 확정 소식 또한 <푸른밤 옥상달빛입니다>에서 스포일러 되었다. 옥상달빛이 고영배 본인도 모르게 “11월 7일 새벽 1시부터 2시까지 고영배 씨가 MBC 식구가 되었습니다~!”를 외쳤다는 에피소드를 알고 나니, 첫 방송을 듣는 재미가 더 커졌다.
첫방에서는, 첫 게스트로 나온 옥상달빛의 김윤주와 오랜 친구 같은 케미를 보여주었다. 고영배는 친분이 있는 사이인 점을 잘 활용해 옥상달빛의 음악에 대해서도, 김윤주 개인에 대해서도 세밀하게 질문했다. 두 사람의 소소한 삶의 에피소드들과 수다가 첫 방송임에도 자연스러웠다.
고영배의 오랜 게스트 경력 때문일까? 첫 방송임에도, 마치 오랜 경력의 DJ가 하는 녹방처럼 굉장히 안정적이었다. 그는 웃음을 주면서도 게스트의 말을 잘 정리해주고, 자신의 의견을 덧붙인 후에는 조심스레 되묻는 DJ였다. 자연스레 출연 게스트를 ‘사람’으로서 들을 수 있어 즐거웠다.
프로그램의 취지는 아티스트들이 나와 늘 하던 얘기를 하는 것보다, 개인적인 이야기, 그렇기에 어쩌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이야기를 편안하게 들어보는 것이라고 한다. 게스트가 직접 시작부터 편안했다고 말해주었기에, 우선 첫 방송에서는 이러한 취지를 잘 달성한 듯 들렸다.
한 편 <스포왕 고영배>는 오프닝 직후 이러한 문구와 함께 시작된다.
“오늘의 스포왕 고영배는 오직 지니뮤직 스토리G에서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
지금까지 mbc라디오의 다시 듣기는 늘 MBC mini에서 제공되었다. 또한 mini 애플리케이션에서 팟캐스트로 연결되어, 손쉽게 공식 라디오 외의 mbc 오리지널 오디오 콘텐츠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스포왕 고영배>는 오직 지니뮤직 스토리G에서만 다시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DJ 고영배는 프로그램을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 있는 아주 놀라운, 라디오 역사 상 전무후무한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했다. 편성 시간과 빈도도, 도입된 플랫폼도 실험적이라 느껴졌다. 최근 ‘유니버스’ 애플리케이션에서만 보이는 생방송을 진행하는 <아이돌 라디오>와 마찬가지로 <스포왕 고영배>의 지니뮤직행 또한 MBC가 시도하고 있는 플랫폼 다양화의 맥락에 있지 않을까 싶다. 청취자의 입장에선 ‘다시 듣기’의 경우에는 기존 라디오 애청자들이 쉽게 이용하는 플랫폼에서 제공되면 어떨까 싶었다. 그러나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더 많은, 또는 새로운 청취자층을 찾는 것이 필요한 시대이기에, 가감 없이 도전하고 있는 MBC 라디오의 모습이 기대되고 흥미롭다.
<스포왕 고영배>의 마지막 코너는 ‘아무거나, 개인적인 것이든 무엇이든 스포일러 하기’이다. 여기서 역시나 첫 게스트 김윤주는 “상대가 모르는 스포도 되나요?”라 묻고, 2022년 상반기에 고영배와 노래를 하기로 했다고 스포했다. 또 끝인사는 한 시간 동안 마음대로 떠들기 위해 ‘죄송합니다’라고 정했다.
첫 방송이 이토록 유쾌하고 편안했던 이유는 첫 게스트가 DJ와 친밀한 사이여서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DJ는 무해한 웃음과 세심한 진행 능력을 함께 갖춘 라디오계의 고영배이기에, 앞으로를 더욱 기대하는 프로그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