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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희 Dec 25. 2021

공부 욕심이 부모 욕심이라는 말.

5세 한글 수업 1년 후 느낀 것들.


가만 생각해보면

동서양, 전근대를 막론하고 두뇌와 공부에 대한 관심사는 정말 끝도 없는 듯하다.


공부를 시키는 건 자식들의 꿈을 이루기 위한  도구인지, 부모의 욕망이 투여된 자아실현의 도구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참 변하지 않는 건 공부를 잘하면.. 그만큼 기대치는 커가고

기대치가 없데도 뭔가를 시키고픈게 부모의 맘. 내가 그 입장이 되어보니 이해가 간다.


과거에도 부모의 기대란 똑같았겠지.


우리가 알고 있는 부모의 희생양으로 가장 유명한 인물을 뽑아보라면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이한 사도세자가 아닐까 싶다.

사실, 사도세자는 태어날 때부터 뭔가 달랐다고들 하던데 찾아보니 실제로도 일반인의 범주를 벗어나 엄청 총명했었다고 한다. 지금 말하면 영재겠지. 우리가 3살 때는 기저귀 떼는 연습할 그 시기에 그는 소학과 천자문을 떼고 시조를 읊던 영민한 아이. 게다가 말도 잘하고 못 하는 게 없으니 왕의 눈에는 그 얼마나 애달프고 예쁜 아이였을까.


 아무리 영재라도 아버지 영조의 기대는 물론이고 세자 수업은 참 버거웠을 거다. 모성이 그리울 때 일찍이 투명 왕관을 이고 지고 사는 운명이라니. 어린 나이에 별 생각이 있었을까 싶다. 일찍이 배움의 길을 걷는 우리 아이 또래인데 말이다.


미치광이로 불렸지만 그의 성장과정을 본다면

일찍이 나타난 천재성이 어른들의 욕심으로  망가져버린 자아.  만약 평범한 인생을 살았음 똑똑함이 더 발현하지 않았을까 싶은 상상도 해본다.

출처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세 살되기도 전에 글을 떼고 말을 트는 모습은

지능 검사 따위 없던 조선시대에 감히 왕이 될만한 상이란 걸 점찍어 놓기에 충분한 자질이었다.
하지만 너무 일찍 "어른들이 반할 만한 똑똑한" 모습을 보여줬던 것일까. 오히려 글을 빨리 떼고 읽었던 영민함 때문에 사람의 빛을 바라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뭐든 일찍 발견하고 빠른 게 좋은 걸까?

부모들이 흔히 말하는 아이의 천재성은 무엇으로 판단하냐.. 를 가끔 생각한다.

'글을 빨리 읽어서.'

 '책을 혼자 읽고 숫자도 혼자 세서...'


그런 지표들은 아이의 재능을 일찍 발견하게 하고 좋은 사람이 되도록 이끄는 원동력이되기도 하지만,

배움의 빠르기로 판단한다면

섣부른 판단에서의 준비되지 않은 아이의 학습은 오히려 불안감과 거부감이 함께 올 수 있다.

이런 부모의 마음을 긁는 사교육들이 부모의 욕구를 끌어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그리고 또 그 속에 나도 속해 있는 그런 느낌.




나는 우리 딸에게 어땠을까?


지유는 4세 때부터 2가지 방문학습을 받았다.

정말 열심히 하는 친구들에 비하면 하는 것도 아니라지만 내 딴엔 많이 기대하고 심혈을 기울였던 바, 솔직히 1년이 지난 지금 실망도 크고 허탈함도 크고... 의외로 만족스러운 부분도 존재한다.

지유는 아직 배울 준비가 안되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마 내 욕심일지도 모를 일.




4세될 무렵 신기한 한글나라를 시작했고.

이제 1년이 훌쩍 넘었다.


지난 1년간 내가 진행한 지유의 한글 수업은 조금 이른 시기였었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아이가 아무런 흥미가 없는 상태에서의 학습은 그 어느 것도 얻기 힘든다는 점 때문이기도 했다.



3~4세 시기의 지유는 한글에 관심이 거의 없었다.

지나가다 한글 간판을 보여주며

"저건 가 글자야.. 그다음은 나 글자야" 알려줘도 눈길은 주지도 않았고, 색연필을 잡아서 글자를 따라서 써 본다던가 글자를 알아보려 한다던가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그리고 지유는 자존심이 세고 본인이 주도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엄마라는 어른이 자기에게 한글을 가르친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고 본인이 자꾸 선생님이 되려고만 했다.


그러다 보니 몇 권 샀던 한글 쓰기 노트도 낙서장이 되어버리고 말았고 너무 아까웠던 나는 내가 억지로 손을 잡아끌어 쓰는 시늉까지 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면서.. 회의감이 좀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인터넷 북카페에서 보이는 글들. 지유와 비슷한 나이인데 혼자 책을 읽는다던가.. 한글을 뗐다는 글들을 보면서. 내 자의적 판단이 시작되었다. 우리 아이도 될 거 같은 생각 말이다.




참고로 한글나라는 첫 단계는 총 3박스로 가격은 27만 원대에 수업 20분에 가격은 58000 정도다.

내기준 싼 가격도 아닌데..지나보니 이해없이

놀이만 해주고 가는 느낌이랄까.

20분은 선생님과 놀이하며 한글을 습득한다지만 쓰거나 반복하는 수업은 아니다.

한글 교구를 가지고 선생님과 놀이하는 정도. 즐겁게 한글이 나오는 교구로 놀다 보면 어느새 20분은 훌쩍 가버리고 만다. 그 후에 집에서 하는 숙제도 있지만 단어 찾아서 스티커 붙이는 정도.

한글나라 교재 자체는 너무 좋다. 퀄리티는 좋고. 내용도 좋고.


1년을 했지만 가나 다라마... 정도가 최대치이고 글자를 그림처럼 인식해서 아는 정도이다. 예를 들어 "구두 어딨어?"라고 물어보면 자기가 익숙한 글자인 구두를 보고 찾지만 따로 "구 "글자는 어딨지?"라고 물어보면 전혀 못 찾는 정도.(모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에 반해 한글나라 진도는 ㄱㄴㄷㄹ 낱글자로 진도가 진입된 상태이고 선생님마저 이 정도면 빠르진 않아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씀하셨기에... 나는 지유의 현재 상태와 벌어진 괴리감이 인정하면서도 섭섭한 감정이 들어버렸다. 괜스레 아이에게

"너 이거 배웠는데 왜 몰라?"

"이거 어떻게 읽는 건지 알아 몰라?"

라는 가시 돋친 말도 해버리고.


아이는 아직 한글이란 문자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있던 것뿐이다.

부모인 나의 자의적 판단이 오히려 효과도 없는 돈 낭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이의 성격을 파악한 학습

요새는 한글 수업 이외에 내가 집에서 한글 공부를 잠깐씩 해주고 있는데..

본인이 하고 싶어 했고 끊임없이 알 수 없는 단어들을 써댔다.


"아.. 이제야 시기가 온건가"


아는 글자 내에서 아이와 글쓰기 시합을 하는 것이다. 스케치북에 원들을 그리고 누가 빨리 저 원안에 아는 글자들을 쓰나? 하는 시합이다. 생각 외로 아는 것이 많지는 않아도 그날 배운 글자들을 미리 보여주고 시합을 하다 보면 의외로 아이가 얻어걸려 쓰는 날도 있었다.


그래. 속도만이 중요한 건 아니겠지.


지유는 아직.. 크게 한글실력이 늘었다거나 학습할 때 흡수력이 뛰어나다고는 말 못 하겠다. 방문학습을 시킬 때도 그 시기가 아니었던 것이고 나 또한 준비가 안되어있었다.

왜 막말로 어른되서 한글 모르는 사람 없다고들 하지 않나. 나도 이제는 생각을 바꿔야겠다는 판단이 선지 오래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방향에 의의를 둬야겠다는 생각은 수업을 하다 보니 점점 확신이 든다.

교재비와 수업료를 합치면 정말 비싼 깨달음이겠지만 말이다.


요새 한글을 읽으려 하고 스케치북에 끄적이는 걸 보면서 이제야 지유가 흥미를 보이는구나

 생각이 들긴 한다.
한글을 아는 것은 지유가 세상을 살아가며 장착하는 하나의 도구이니까. 보고 싶은 책을 읽거나 길거리에서 보이는 간판들을 읽고 싶을 때 거리낌 없이 읽고 가게에 들어갈 수 있는 판단.


길게 보면 이제 시작인데 너무 그 '시기'와 '속도'에 집착하진 않으련다. 자연스럽게 한글을 노출시키고 스스로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게 나의 숙제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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