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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대리 Jun 05. 2022

믿음, 그 모호함에 대하여

- 누군가를 온전히 믿는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걸까.

나는, 사람을 쉽게 믿지 않는다. 


예민하고 의심이 많은 편이기도 하고, 지금까지 쌓아온 나만의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해도 사람은 역시나 믿기 어렵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을 적대시하게 바라본다는 점은 아니다. 적 대신 친구를 많이 두자는 생각이기 때문에 불편한 관계는 원수로 돌아서기 전에 미리 그 주변에서 사라지는 것을 선택하는 편이다. 친구나 직장 동료 상사와의 사이도 마찬가지이다. 나 혼자 애쓰는 관계는 더 이상 애쓰지 않고, 한번 뒤통수를 얻어맞고 나면 그 사람에게 절대 어떠한 곁도 내어주지 않는다. 


사람에게 크게 데인 적은 사실 없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크게 데여도 그걸 그렇게 크게 치부하지 않는다. 크게 보는 순간 그 상처가 커져서 나를 집어삼킬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에게 찾아오는 불행에 대해서는 다소 잠잠하게 지켜보려고 하는 편이다. 그렇게 행동하는 게 정말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치부하는 게 나에게는 정작 희망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직장 내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성희롱이 아닐까 의심되는 발언들도 있었고, 사람들이 술자리에서 아슬아슬하게 경계를 타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인사 상 불이익이라고 느껴지는 일을 당한 적도 있었고, 나의 진심과는 다르게 행동이 왜곡되게 평가받기도 했다. 생각보다 기댈 수 있는 상사는 회사에 많지 않았고, 어쩌면 누군가가 나를 위해줄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과거의 내가 굉장히 순수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친절이 때로는 속내가 보이기도 했고, 나도 누군가에게 바라는 것을 속으로 품고 겉으로 친절을 베풀어야한다는 것도 배웠다. 그게 바로 알량한 사회생활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능숙하게 누군가를 구워삶아 먹을 줄도 모르고, 기분 나쁜 것을 티내지 않는 법도 모르는 나는 소소하게 균열을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균열들이 반복되면 쪼개질 거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쪼개지기 보다는 그 벌어진 틈들이 메워지면서 더 넓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온전히 믿을 순 없어도, 누군가를 그냥 좋아할 수는 있다. 사람을 믿는 것과 사람을 좋아하는 것을 별개로 두게 된 지금, 결국 내가 혼란스러운 직장을 버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나에게 물었다. 결국 그 좋아하는 사람들도 믿지 못하는 거 아니냐고. 그런데 나는 대답했다. 꼭 좋아하면 믿어야만 하냐고. 나에게 그 영역은 서로 별개의 범주라고. 


어쩌면 나를 적당히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결국 나를 지키기 위함이기 때문에 이렇게 다른 범주로 치부하는 것이 퍽 편하다. 오히려 이렇게 미지근한 온도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나에게는 스스로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을 주기 때문이다. 적당히 믿고 좋아하면 크게 다칠 일도 없고, 직장에서 오롯이 내 일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나만의 시간이 생긴다.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버틸 수 있는 힘을 길러낼 수 있는 그런 수련의 시간이 확보가 된다. 너무 슬퍼하지도 너무 기뻐하지도 않는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고 싶은 것이 나의 욕심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사람을 믿지 않는다. 


그 대신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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