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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대리 Mar 20. 2022

우리의 사무실 공간은 안녕하십니까

스물다섯스물 하나의 주인공, 나희도가 고유림과 같이 운동장을 돌면서 했던 대사가 있다.


" 가끔 달리다가 저기 정문으로 나가는 상상을 "


그리고 5년차 직장인이자 어른이인 나 또한 가끔 사무실 문을 박차고 나가는 상상을 하곤 한다.



8시 출근.

간혹 일이 밀렸거나, 좋은 방향성이 떠오르지 않으면 야근을 때려치우고 커피 한 잔 들고 아침 일찍 출근한다.


제일 먼저 사무실에 도착해서 불을 켜면 사람이 없는 사무실 공간 안에 가득찬 자리가  눈에 들어온다. 네모난 공간안에서 마치 자로 잰듯 정확하게 T 형태로 배치된 책상과 의자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사뭇 숨이 막힌다.


그리고 이른 아침 출근의 승리감에 도취되어 아이스 아메리카노  잔을 손에 들고, 부장님  화분이 놓여진 탁상 옆에 서서 부장의 위치에서 나의 자리를 바라보면  느낌이  묘하다.


T 위에 놓여진 사람은 단연코 팀장이다. 그리고 팀장 너머 부장이 있다. 부장의 자리는 항상  팀을 아우르는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부장은 팀장과 팀원을 바라보고, 팀장은 팀원을 바라본다. 그리고 우리 팀원은 그 누구도 바라보지 않는다.


과연 이런 공간에서 우리는 어떻게 새롭게 생각하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최근 회사에서는 업무 개선에 대한 논의가 '핫'했다. 이사님이 업무개선에 대한 토론 화두를 던진 것인데,

실제 각 담당자들이 맡고있는 업무에 대한 개선안 또는 조직 문화 개선에 대한 안건을 논의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아이디어 회의에서 조직문화 개선에 대해 나는  흥미로운 의견들을 들었다.

타회사들의 "님"문화와 영어이름 부르기와 같은 호칭 개선이었다.


내가 속한 조직은 보수적인 곳이기 때문에(?() 호칭은 당연 직급 또는 간혹 예의 없는 상사분들은 누군가를 ~씨로 지칭하거나 자기야 혹은 반말을 일삼기도 한다.


그리고 이미 숱하게 많이 겪은 일임에도  0대리가 아닌 00씨로 부를 때마다 기분이  좋진 않다.

그런데 이렇게 경직된 곳에서 과연 님자를 붙인다한들 우리가 부장을 케빈이라 부른다 한들 달라질 것이 있을까.


회의에서 나는 그만 옅은 웃음을 내뱉고 말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회의에서 무의미한 대화와 부장들의 농담이 오가면서 나는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회의실 밖으로 나가는 상상을 숱하게 했다.



회사에서 동료를 부를  직급 대신에 님자라는 호칭을 부르고 영어이름으로 부르는  시도 자체는 좋지만, 우리는 여기서 간과하는 것이 있다.


- 상대방과의 대화에서 유연한 호칭을 떼고, 나머지  숱한 단어들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고 있는가?

- 대부분 상사와의 대화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주 일개 사원이 아닌 함께하는 동료라는 느낌을 받고 있는가?


이 두가지 질문을 던져보았을 때, 사무실에 있는 우리는 자주 고개를 가우뚱하게 될 것이다.


대신,

- 충고라는 빌미로 비난을 받고있진 않은지,

- 성장이라는 명목으로 업무 과부하에 시달리고 있지 않는지,

- 팀이라는 이유로 개인이 무시되고 있지 않은지,


살펴야만한다.


서로를 살피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 이 공간에서 직급 또는 씨자를 님으로 바꾼다한들

그 어떤 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아, 부장님 안녕하십니까 대신

케빈 안녕하십니까라는 단어 정도는 바뀔지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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