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나 Guna Mar 27. 2022

해외에서 살면 0개 국어 가능자가 된다.

4개월간 독일어를 배운 결과


나는 어학 전공자로, 나름 언어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어떤 외국어를 배우든, 남들보다 빨리 습득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오만이었다.

고작해야 내가 구사할 줄 아는 언어는 모국어인 한국어를 제외한 영어, 중국어 정도고, 읽을 줄은 모르지만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한 일본어이다. 영어가 일상생활과 직장 생활을 하면서 크게 어려움 없는 수준이지만, 생각해보면, 영어는 어릴 때부터 10년 이상을 배워온 외국어임에도 불구하고, 의미 전달을 넘어서 뉘앙스의 차이를 전달하는 것은 아직도 쉽지 않다.


대학 전공으로 선택한 중국어는, 흥미롭던 한자 공부 덕에 그 의미를 유추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았고, 이 언어를 처음 접한 것은 엄밀히 말하면 대학 전공을 선택하기 전인 초등학생 때였기 때문에 일찍이 접한 편이다. 일본어 또한 음이나 의미 유추, 어순이 한국어와 비슷하기 때문에, 어휘 / 문장 응용이 힘들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어느 것 하나 마스터한 언어가 없는 상태로 독일어에 덤벼들었던 것이다.

이 정체 모를 자신감을 갖고, 마주한 독일어는 나에게 크나큰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더 이상, 어릴 적 말랑말랑하게 언어를 흡수하는 능력이 없는 나의 뇌는 der / die / das가 나올 때마다 데이터 저장을 거부하였다.


머리로 이해해보고자, 자료도 찾아보고 독일인에게 구분하는 기준이나 원리가 있는지 물었다.


그런 건 없다. 그냥 외워야 한다.

절망적이었다.


모든 언어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고 생각하고, 희망을 가져보려 하였다. 그러나, 변검술도 아니고 주어에 따라 변화하는 동사들, 생소한 어순 등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인터그라치온 수업을 4개월 정도 들은 지금도 나는 여전히 der / die / das에서 헤매고 있으며, 동사 변화는 늘 헷갈린다. 어설픈 독일어를 장착한 나는 이제는 제대로 구사하던 영어마저 실수를 빚는다. 쓰지 않는 한국어는 퇴화를 넘어 점점 외계어가 되어간다.


어색하게 배우면, 이렇게 0개 국어가 된다.


해외에서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이들에게,

독일어를 배우면서 좌절하고 절망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작가의 이전글 30살 나이에 독일어 선생님한테 혼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