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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영 Apr 30. 2024

친구에게 (운하를 따라서)

   친구에게 (운하를 따라서)

황사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던 시간 속에 함께한 친구여 평안하신지요?

멀리 바라보이는 잠실 타워에  몽마르트르의  언덕길이 떠오릅니다.

 무명의 작가가 그려준 나의 젊은 날의 초상을 놓고 왔던  그 언덕이 생각나는 시간입니다.

눈 속을 헤매며 다녀온 여행이 엊그제인데 어느새

초록이 새 입부리처럼 피어나  노래하며 피부를 깨우는 바람에 기분 좋은 날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요.

잠자듯 겨울을 지내다 밀치고 깨어나며 올라오는 초록의 잎새처럼

우리네 삶도 자연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아있는 듯싶군요.  

잃어버린 첫 초상화로

몇 년을 아쉬워하며 보낸 시간도

그 위에 덧칠해진 많은 일들로 가슴 저 밑바닥에 묻혀버렸네요,

하지만 가끔씩 그대가 생각나듯 묻힌 것이 잊힌 것은 아니더군요.


오늘은 잉글랜드 서부지역을 운하를 따라 여행하는 부부의 모습을 소개할까 합니다.

연극을 직업으로 평생을 함께 살아온 80의 노 부부는 수 십 년 전  신혼여행을 떠났던 곳으로 출발합니다.

영국 서부의 운하를 따라갑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수에즈 운하만을 떠 올리면 부부가 스치며 만나던 주변의 경관을 상상할 수가 없겠지요.

증기보트가 경적을 울리고 범선으로 힘차게 닻을 올리기도 하며  때로는 좁은 수로를 손수 노를 저어 빠져 나가는 그들의 곡예는 낭만과  사뭇 긴장감을 느끼게도 하더군요

 건너편 숲 사이로 젖소가 보이는 웨일스로 가는 여정에서 블랙베리 열매를 따며

 파이를 식탁에 올리겠다는 눈이 큰 아내의 모습에서 젊은 날의 미모가 엿보입니다.

노부부가 카메라를 아랑곳하지 않고

가끔 나누는 입맞춤으로 오래된 묵은지 사랑을 자연스레 표현하는 것을  보며

구들장에 퍼지던 온기 가 느껴지었지요.

세상이 고달파도 방으로 들어서면

모든 것 다 묻어놓고 파고들던 아랫목의 정서가 떠오르는 익은 사랑입니다.

어린 날 2차 세계대전에 폭격을 피해 고향을 떠나 잠시  머무르던  곳.  

다시 찾은 그곳에서 마을을 통틀어  단 한대의 전화가 있었던 것을 기억하며

재회의 기쁨을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은 견디며 살아남은 자의 기쁨과 승리가 있었지요.

 사진첩 속의 몇몇 친구들은 이미 폭격에 맞거나 병들어 떠났거나 했지만

그들의 미소는 영원히 살아있음을 압니다.


마음속의 불을 키는 듯한 시간 속에 나의 벗 그대가 떠오릅니다.

어린 날 폭격이 지나면 달려가 바라보던 바다는 여전히 그날처럼 파도가 치고 있지만 이제 소년의  눈길은 더욱 깊어지고  멀리 바라보는

80 후반의 생을 살아가는 노인입니다.


지금도 그 바다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 모험하고 싶다는 아내에게

남편은 말합니다.'그것이 내가 당신을 선택한 이유'라고.

아내가  말합니다.

'그이는 지루하지 않고 늘 나를 재미있게 웃게 해 주었다고'

친구여, 내가 생각하는 우리의 관계도 이와 닮아있음을 잘 압니다.

다시 소식드릴 때까지 평안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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