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인영 May 10. 2024

친구에게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늘 그리워만 하는 그대 어찌 지내시는지요?

 모두들 떠나버린 아파트를 혼자 지키는 호젓한 오후입니다.

모임에서 어느새 적지 않은 나이에 와 있는 자녀들의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살면서 우리가 그토록 원하고 바라던  것들이  결국  나이 듦과 함께 오는 것이라는 것.

인내와 기다림 속에서 만나게 되는 것도 깨우쳤답니다. 

자신들의 나이 듦에  상대적 허전함은 문제가 안 되고

오로지 자녀들의 행복을 진심으로 원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습니다.

             

 주차해 놓은 자동차위로 흐드러져 있던 백일홍 나무의 꽃잎이 떠오릅니다.

 밤사이 강한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시체로 변한, 한때는 너무나 소담스러웠던 그들입니다.

 떨어지며 아파했을 꽃잎을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아픔이 제게 전해져 코끝이 찡해지더군요.

우리 인간이라고 무에 그리 다르겠어요.

 강한 것에 밀리고, 세월에 스러져 언젠가 혼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요.


  전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더욱 이상한 것은 그러한 상황을 거부감 없이  수용하는 마음의 변화입니다.

 미소 짓는 그대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앞마당에 눈이 녹을 때면 동네에서 가장 먼저 튤립을 사다 심고,

 여름이면 바다에서 다시마를 건져 올려 말린다는 핑계로 

바위에 다시마와 함께 눕던 저를 기억하시지요?

가을엔 버몬트의 단풍을 구경 가고, 사과밭을 찾아 전전하고,

 겨울이면, 기억나세요? 털목도리 두르고 하염없이 걷던  뉴욕의 그 시절을요.


세월과 함께 저도 변해갑니다. ‘파바로치’와 ‘안드레아 보첼리’를 좋아하던 제가

  노들강변을 듣고 진도 아리랑에 장단을 맞춥니다.

 뒤늦게 백일홍을 좋아하게 되었듯, 이제야 우리 가락이 들리기 시작했어요.

 다시 한번 그대가 웃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그대를 위해 퍼 올린 가락을 올립니다.

 어화 세상 벗님네들이네 한 말 들어보소.

 인생이 모두가 백 년을 산다고 해도 병든 날과 잠든 날 걱정 근심

 다 제 하면 단 사십도 못 살 인생,

 아차 한 번 죽어지면 북망산천의 흙이로구나

 사후에 만반진수는 불여 생전의 일배주 만도 못 허느니라.

 세월아 세월아 세월아 가지 말어라.

 아까운 청춘들이 다 늙는다.

 세월아 가지 마라. 가는 세월 어찌할 거나.

 늘어진 계수나무 끝끝어리에다 대랑 매달아 놓고

 국곡투식 허는 놈과

 부모불효 허는 놈과 형제화목 못 허는 놈,

 차례로 잡어다가 저 세상 먼저 보내버리고

 나머지 벗님네들 서로 모여 앉아서

 한 잔 더 먹소 덜 먹게 허면서

 거 드렁거리고 놀아보세. (사철가)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 굽이야 굽이굽이가 눈물이로구나.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음 음 음 아라리가 났네.(진도아리랑)


 노들강변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에다가

 무정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서 메어나 볼까

 에헤야 봄버들도 못 믿을 이로다.

 푸르른 저기 저 물만 흘러 흘러서 가노라.(노들강변)


어때요? 고개가 끄덕여지고  눈물이 나기도 하고,

 어깨가 들썩거리지 않는가요?

 이것저것 다 제하면 사십도 못 살 인생이라네요.

 아까운 청춘이 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대를  다시 만날 때까지

 제 젊음은 언제까지나 유효합니다.

 편안한 밤 되시길 바라며 이만 적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님의 게시글 더보기 

성북 낙산여신 김인영






좋아요1

이 글을 '좋아요'한 멤버 리스트

 댓글0


작가의 이전글 친구에게 (운하를 따라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